‘도봉순’ 현명한 전략과 영리한 배우, 그러나 괴력만으론 2% 부족한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tvN과 JTBC가 오랜 시간 공들여 개척한 시간대인 금토 드라마 시장은 어느 덧 포화상태다. 월화드라마와 수목미니시리즈 시간대에 이어,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퇴근길 무엇을 볼까 고민하는 시청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JTBC가 시간대를 옮겨 밤 11시에 편성한 새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은 이 새로 떠오르는 시간대에 제대로 승부를 걸어보려는 비장의 카드다. 같은 방송사의 <욱씨남정기>(2016)나 MBC의 <역도요정 김복주>(2016)에 이어 강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여성 중심의 작품이라는 점이나, 슈퍼히어로 판타지와 미스터리, 로맨틱 코미디를 버무려 복합장르로 완성한 장르구성, 공격적인 CG사용 등은 2017년의 드라마 시청자층이 바라는 지점을 영악하게 타격한다. 3회 방영을 앞둔 시점에, [TV삼분지계]의 세 사람이 <힘쎈 여자 도봉순>의 전략과 매력, 약점을 함께 살펴보았다.



◆ 전략: 매력적인 배우들과 함께 영리하게 끊은 스타트

첫 방송을 앞둔 드라마 홍보는 대개 배우들이 해당 방송사 연예정보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 나와 작품 얘기를 나누는 선에서 마무리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는 예는 별로 없다. 특히 토크쇼 출연은 오히려 마이너스인 경우가 태반이다. 동상이몽인 MC들과 출연자들의 불협화음으로 본방사수 다짐은커녕 자칫 잘못했다가는 홍보성 출연이라는 빈축이나 살 뿐이지. 그런 의미에서 JTBC <힘쎈 여자 도봉순>는 영리했다.



1회 방송에 앞서 드라마를 미리 즐길 수 있는 ‘0회 스페셜’을 편성했는데 작품과 배우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수많은 영화 제작발표회를 진행해온 박경림을 기용해 박보영, 박형식, 지수, 임원희, 김민교 등 출연진의 매력을 십분 끌어냈고 드라마에 대한 궁금증을 배가시켰으니까. 뿐만 아니라 박보영은 <한끼 줍쇼>에, 지수는 <걱정말아요 그대>에 출연해 호감지수를 급상승시켰다. 실제로 박보영의 인간적인 면면에 반했다는 이들이 속출했는데 배우 자체가 좋아지면 드라마에 관심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가 아니겠나.

이렇게 판을 잘 깔았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박보영, 박형식, 지수, 세 주역 배우에 대한 믿음이 있고 캐릭터가 살아 있는 봉순(박보영)이네 식구들이며 공비서(전석호), 백탁파 두목 백탁(임원희)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에 대한 기대도 크다. 부디 우리의 봉순이가 시청자들의 갑갑한 속내를 시원히 뚫어주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시작보다 끝이 더 찬란하기를.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매력: 무해해 보이는 이미지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영리한 배우 박보영

자신의 괴력을 꼭꼭 감춘 채 최대한 평범하게 살아간 탓에 힘을 어찌 써야 할지 모르던 주인공이 마침내 힘을 쓰는 삶을 시작하며 제 진짜 가치를 자각한다는 줄거리. 수많은 슈퍼히어로물의 기초적인 뼈대이자,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둑>의 토대이자, 새로 시작한 JTBC <힘쎈 여자 도봉순>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흔한 슈퍼히어로 플롯을 지닌 드라마가 같은 시기 두 편이나 나왔다는 건 시대가 슈퍼히어로물을 원한다는 의미일까?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든 촛불로 나라를 정의의 편으로 한 발 더 끌어당긴 직후에 등장한 이런 작품들은, 평범한 장삼이사들이 잠재력을 발휘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해서 두 작품 모두 주연은 한없이 평범하고 순진하고 무해해 보이는 인물들이 맡았다.



무해한 인상, 이 지점에서 박보영은 늘 흥미로운 선택을 해왔다. 큰 눈망울과 강아지 같은 인상으로 늘 시청자들을 무장해제시키는 인상을 지닌 박보영은, 그러나 그런 인상을 180도 배반하는 배역들을 자주 맡아왔다. <과속스캔들>(2008)의 말발 좋고 성격 있는 딸 황정남부터 시작해 <피 끓는 청춘>(2014)의 홍성 일진 영숙이나 <돌연변이>(2015)의 키보드워리어 주진, 자신을 억압하는 거대한 학교를 완파하는 <경성학교>(2015)의 주란 등은 대중이 순한 눈매의 젊은 여자 배우에게 기대하는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이미지를 박살낸다.

<힘쎈 여자 도봉순>의 봉순 또한 그 맥락 위에 서 있다. “무슨 여자가 겁도 없이 개기냐. 대통령 빽이라도 있느냐.”라고 물어오는 동네 불량청소년들의 말은 한국사회가 젊은 여성의 말을 - 그게 정당하다 해도 - 위력으로 막아온 역사를 정확히 보여준다. 그런 불량배에게 봉순은 환하게 웃으며 다가가, 상대가 신고 있던 신발을 맨손으로 찢어버린다. 이 영리한 배우의 선택에 믿음을 걸어본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약점: 강렬한, 그러나 괴력만으로는 2프로 부족한

“회사에 생리휴가는 있습니까? 없다고요? 열악하네요.” <힘쎈 여자 도봉순> 첫 회에서 여성 시청자들이 가장 속시원해했을 장면은 아마도 도봉순(박보영)이 조폭들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는 판타지 괴력쇼보다 입사 면접에서 깐깐하게 계약 조건을 따져 묻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어느 면으로나 ‘갑’의 위치에 있는 남성 고용주에게 여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주인공이라니. ‘도와줬으면 인사라도 하라’는 민혁(박형식)에게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자답게 사세요. 여자가 나설 동안 구경만 한 주제에. 남자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받아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 맞서 대놓고 할 말 다 하는 도봉순은 지난해 같은 방송사가 선보인 <욱씨남정기>의 슈퍼히로인 욱다정(이요원)을 잇는 인상적인 여성영웅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강렬함은 계속 이어지는 면접 장면에서 봉순이 ‘스톱모션’과 ‘스톡옵션’을 헛갈리며 민혁의 실소를 자아내는 순간 급격하게 빛이 바랜다. 기껏 남성을 압도하는 우월함을 보여준 뒤 한국드라마 여주인공 특유의 ‘어리바리한 허술함을 귀여움으로 포장’하는 묘사를 통해 캐릭터의 ‘무해함’을 애써 덧씌우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도봉순 뿐 아니라 ‘쎈’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작품들에서 꾸준히 반복되었던 한계다. 가령 슈퍼파워를 지녔으나 행동은 유치원생 수준에 머물렀던 인어(전지현)나 역도천재지만 ‘요정’으로 불리는 복주(이성경)처럼 슈퍼히로인들의 강인함은 ‘알고 보면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관습적 묘사 안에서 어김없이 순화되곤 한다.

두 남주인공의 ‘손목잡기 스킬’ 가운데서 어리둥절해하는 봉순의 모습으로 끝난 전형적 삼각구도의 2회 엔딩신은 이 같은 기존 작품들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더욱 배가시킨다. 기획의도에서 설명했듯 이 작품이 여성 전복의 서사를 보여주고 싶다면 봉순의 괴력은 지금보다 더 ‘불편해질’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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