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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국제시장’과 대비되는 어른스러움에 대하여
기사입력 :[ 2017-03-07 10:55 ]


‘눈길’의 노인, 1400만 흥행작 ‘국제시장’과 비교해보니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2년 전 2부작 삼일절 특집극으로 방영되었고 올해 삼일절부터 극장판 개봉을 시작한 이나정 감독의 <눈길>은 같은 위안부 소재의 영화인 조정래 감독의 <귀향>과 비교된다. 일반적으로 <눈길>은 <귀향>이 가진 소재착취적인 면이 없는 영화로 평가받는다. 보고 싶었지만 어린 배우들이 부당하게 이용당하는 영화일까봐 걱정하셨던 분들은 일단 마음을 놓으셔도 되겠다. <눈길>이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유사한 소재의 사회비판물을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가치 있는 모범이 될 수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고통을 재현한다면서 쓸데없이 ‘엑기스’의 재료를 주지 않는 것이 되겠다.

하지만 이번 칼럼에서 <눈길>과 비교하려는 영화는 <귀향>이 아니라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이다. 두 영화는 거의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다. 험한 시대를 겪은 노인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인 것은 같지만 이야기의 내용이나 전달 방식은 정반대이다.

많이들 보셨겠지만, <국제시장>은 현대 부산에 사는 북한 출신 남자 노인이 한국전쟁부터 1980년대 이산가족찾기 때까지 자신의 고생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눈길>은 일제시대 말기에 일본군에 끌려가서 위안부가 되었던 여자 노인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한 명은 남자이고 다른 한 명은 여자이다. 한 명은 자신이 그 개고생을 통해 쌓은 업적을 인정받으려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심지어 이름까지 바꾸고 숨기려 한다.

모두 힘든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눈길>에는 내가 <국제시장>을 보면서 느꼈던 짜증과 불쾌함은 없다. 무엇보다 <눈길>은 <국제시장>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영화이다.

어른스러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국제시장>이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이다. <국제시장>의 주인공은 미숙하기 짝이 없는 남자이고 나이가 든 뒤로도 그렇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는 자신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주는 젊은 세대에 대한 억울함, 자신의 노력을 필사적으로 인정받으려는 갈망이다. 그는 자기중심적이며 지금의 젊은이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한다. 영화의 논리를 따른다면 그의 정신세계는 1980년대에 못 박혀 있다.



<눈길>은 정반대이다. 물론 눈길의 주인공이 겪은 일들은 결코 남들에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비교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에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다. <국제시장>의 현재는 정체되어 있지만 <눈길>의 현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영화 <눈길>은 현재의 문제점들을 무시하지 않으며 주인공은 서툴지만 끊임없이 지금의 젊은 세대와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이야기는 노인이 젊은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젊은이로부터 진실과 마주할 자신감을 얻으면서 완성된다. 이 영화의 노인과 젊은이는 모두 같은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다.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현재를 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의 주인공은 <국제시장>의 주인공보다 훨씬 어른이다. <국제시장>의 주인공은 그에 비하면 주름투성이 어른아이다. 노인이 된 그가 죽은 아버지에게 징징거리는 <국제시장>의 결말은 최근 만들어진 충무로 영화의 결말 중 가장 퇴행적이다.

성숙이란 나이듦과 함께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와 소통이 불가능하고 지금의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노인은 이미 정신적으로 죽은 자이다. 그냥 발전하지 못한 과거의 인간인 것이다. 여기에 인정욕구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끔찍해진다. 어차피 세계는 다음 세대의 것이고 나이 든 세대는 잉여가 되고 사라진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끝까지 현대인으로 남는 것이다. 물론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인들에 대한 무심한 관대함으로 노인복지의 부족을 퉁치려는 이 나라에서는 더욱 더.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눈길><국제시장>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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