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클라스’, 유시민 작가가 첫 단추는 잘 끼웠지만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작년 봄 도올 김용옥과 함께 <차이나는 도올>을 선보였던 JTBC 제작진이 새 강연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 질문 있습니다>를 선보였다. 첫 연사로는 같은 방송사 <썰전>에서 고정 패널을 맡고 있는 유시민 작가가 나섰는데, 지난 시즌 격인 <차이나는 도올> 때와는 사뭇 그 분위기가 다르다. 도올 김용옥이 특유의 카리스마로 자신의 의견을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전형적인 교수의 태도였다면, <차이나는 클라스>는 아예 처음부터 ‘모든 질문은 옳다’는 서약으로 연사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함께 뒹굴 것을 권장한다. 지난 일요일 첫 방송을 탄 <차이나는 클라스 - 질문 있습니다>를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가 함께 들여다봤다.



◆ 보는 이도 함께 배우고 싶어지는 교실의 마력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요?” JTBC <차이나는 클라스 - 질문 있습니다>의 첫 질문이다. 오랜 주입식 교육의 산물인 나. 선뜻 답을 적지 못했다. 여러 문장과 단어들이 떠올랐으나 딱 이거다 싶은 정답은 없었다. 어디서 들어봄직한 말들을 기억 저편에서 끄집어내 조합을 해봤지만 공허한 지식의 나열에 불과할 뿐. 하긴 내 인생 첫 선거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였다. 그러니 민주주의에 대해 뭘 제대로 배웠겠으며 알고 느꼈겠는가.



홍진경이 이런 말을 했다. 18세까지는 우리나라 모든 아이들이 동일한 조건의 교육을 받으면 좋겠다고. 그 이상의 교육비는 쓰지 못하게 규제하면 좋겠다고. 아마 생생한 경험에서 나온 의견이었을 게다. 나도 한때 농담 반 진담 반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나치 교육관의 기반을 만든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의 이론과 흡사한데다가 바로 그런 생각들이 사회주의 사상의 출발점이라는 유시민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저 자리에 앉아 묻고 싶고, 듣고 싶고,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싶다. 이제라도 제대로 배우고 싶다. 딘딘처럼 “이 수업은 민주주의인가요?”라는 질문도 해보고.

프로그램의 성공은 시청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시청자의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시간 관계상 편집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점. 누군가의 말은 자르고 어떤 말은 살리고. 예능의 필요악이라는 갈등도 살짝 추가한 것으로 보이고. 혹시 제작진의 의도에 따라 흐름이 바뀌는 건 아닐까? 부디 괜한 걱정이기를.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창피함과 불화를 감수하고도 질문하는 법을 알려주기를

저마다 다른 지적 기반과 인생 경험을 가진 이들이 함께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손을 들었다가 나보다 더 영리한 이들에게 면박을 당할까 두렵기도 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과 격한 의견 대립으로 얼굴을 붉힐까 싶어 내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하기도 한다. 목구멍까지 나온 의견을 조용히 안으로 밀어넣고 수업만 듣고 끝내게 되는 것, 질문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마침내 손들고 질문하는 학생을 튀고 싶어하는 별종 취급하는 것. 그것이 내가 기초교육 12년간 경험해 온 교실이었다. 불행히도 이 전 시즌 격의 프로그램 <차이나는 도올> 또한 큰 흐름에서 그런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렵게 모신 중국의 권위자 도올의 카리스마에 눌려, 그가 시진핑에 대해 일방적인 찬사를 보내도 별 이의를 제기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뛰어난 내용도 질문을 통해 검증되지 않으면 생명력이 오래 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첫 연사 유시민이 “질문을 제대로 만들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운을 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차이나는 클라스>는 그 내용뿐 아니라 형식 또한 민주주의적인 교실을 지향한다. 물론 첫 수업답게 덜컹거리는 부분들은 적지 않았다. 조승연이나 이용주, 강지영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거나 다른 학생의 의견을 반박하는데 활발한 학생들이 있는 반면, 그에 주눅이 들어 자연스레 제 의견을 펼치지 못하는 딘딘과 같은 학생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창피할 수도, 얼굴을 붉힐 수도 있음에도 여전히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프로그램의 취지라면, 이들이 보다 용기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해주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유시민처럼 말의 기회를 고르게 배분해주는 선생들을 모셔오는데 성공한다면, 그래서 홍진경처럼 제 의견을 사후에 정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용기있게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어쩌면 <차이나는 클라스>는 지난 시즌과는 사뭇 다른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차이나는 유시민’을 뛰어넘어라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면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없다. 주권자로서의 각성을 가진 시민이 많아야 민주주의가 발달한다.’ 첫 번째 주제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 중 특별히 강조했던 유시민의 저 말은 <차이나는 클라스>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그동안 JTBC는 <썰전>, <비정상회담>, <속사정쌀롱> 등과 같은 다채로운 토론 프로그램들을 통해 지식 전달 위주였던 기존 교양 프로그램 계에 꾸준히 소통의 지평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질문과 토론 형식을 전면에 내세워 강연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차이나는 클라스>도 마찬가지다. 유시민이 서두에 “이 프로그램은 강연이 아니고 함께 공부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기획의도를 정확히 환기해준다.



하지만 막상 방송 첫 회는 소통보다 강사의 존재감으로만 꽉 채워졌다. 패널들은 ‘동료 지식 탐구자’라기보다 수동적인 ‘학생’에 가까웠고, 질문을 해야한다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과시적인 발언으로 튀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함께 공부하는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선생 뿐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유시민의 당부가 미리 앞을 내다본 우려 섞인 조언이었던 셈이다. 결국 토론의 공백과 질문의 산만함을 모두 조율하는 것은 고스란히 유시민의 몫이 됐다. 첫 질문에서부터 샘 오취리의 남다른 사회적 조건을 염두에 두고 가나의 역사에 대한 발언을 이끌어낸 것이나 마지막 시점까지 거의 말이 없던 지숙에게 발언 기회를 주는 모습 등은 ‘소통하는 지식소매상’으로서 그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럼에도 유시민의 존재감이 두드러질수록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특출난 지도자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유시민의 저 문장이 프로그램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차이나는 유시민’을 뛰어넘을 것, 앞으로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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