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이 저변에 깔아놓은 꽤 섬뜩한 문제의식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해빙>은 <4인용 식탁>을 만든 이수연 감독의 차기작이다. 장르는 스릴러로 나와 있지만, <4인용 식탁>과 마찬가지로 심리호러에 가깝다. 영화 <해빙>은 주인공의 관점에서 착실하게 긴장을 쌓아가다가 중반이후 급격히 긴장이 무너진다. 이는 반전을 염두에 둔 전개로 인한 것이다. 영화는 반전을 기점으로 관점을 달리한 장면들을 보여주지만, 장르적 쾌감은 적은 편이다. 퍼즐이 정확히 맞는 정교함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해빙>은 에필로그처럼 또 한 번의 반전을 제시하는데, 이는 영화의 구조적 정합성을 더욱 헤치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두 번째 반전을 곁들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영화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 의식의 결빙이 녹으면 떠오르는 무의식적 진실

<해빙>은 한강물이 녹으면서 떠오르는 시체를 비추며 시작된다. 결빙되어 있던 진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 이는 영화가 비추려는 무의식의 풍경과 일치한다. 단단하게 봉인해둔 기억이 시간이 지나고 의식이 풀어짐에 따라, 서서히 떠오르는 것. 영화는 이를 수면내시경 도중 의식이 풀어진 틈을 타고 진실을 누설하게 되는 사태와 일치시킨다.

강남에서 개업했다가 폐업한 내과의사 승훈(조진웅)은 황량한 신도시의 의원에 3개월 계약직 의사로 취직한다. 과거 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시골로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된 그 지역에는 내시경 검사를 하는 의사가 드물다보니, 의원에는 꽤 환자가 몰린다. 승훈은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 내려와 좁은 원룸에 살며 단조로운 생활을 한다. 원룸의 집주인이자 1층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신구)가 수면내시경을 받는 중 잠꼬대 같은 말을 한다. “몸통은 한남대교 밑에, 팔다리는 동호대교 밑에....머리는 아직 냉장고에...” 이후 승훈은 정육식당 부자에 대한 의혹으로 악몽에 시달린다.



영화 <해빙>은 반복해서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고, 잠에서 깨는 승훈을 보여주며, 그 장면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승훈의 꿈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기법을 활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다소 식상하게 느껴지지만, 연쇄살인사건의 결정적인 증거인 시체의 머리를 두고 벌이는 신경전이니 만큼, 긴장이 꽤 쫄깃하게 유지된다. 정육점이라는 장소가 주는 그로테스크함도 잘 살아있고, 속을 알 수 없지만 기분 나쁘게 죄어오는 성근(김대명)의 의뭉스러운 태도가 잘 연출되어 있다. 게다가 대단히 성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는 간호조무사나 정육식당 안주인, 전처 등이 영화에 끈적끈적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럭저럭 잘 유지되던 긴장감은 전직수사관을 자처하는 조경사(송영창)이 등장한 이후 급격히 무너진다. 그의 행동은 미묘하게 비상식적인데, 이는 물론 반전을 통해 드러나듯 그가 승훈의 망상과 결부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는 지금까지의 장면들이 모두 승훈의 망상에 의한 것이었으며, 사실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조경사를 둘러싼 승훈의 망상이 진실이 드러나려는 순간 억압되는 상황의 미묘함이나 경찰의 취조를 받는 장면의 승훈이 이전의 장면의 인격과는 달리 다분히 마초적인 것 등은 재미있는 묘사이다.



◆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

반전을 통해 드러나는 영화의 진실이 그리 놀랄만한 것이거나, 이런 식의 반전기법이 새롭지는 않다. 영화가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가기 때문에 그를 정직한 화자로 믿기 십상이지만 얼마든지 주관적 오해일 수 있다는 것은 장르영화의 익숙한 결말이다. 기법의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반전을 통한 전복이 깔끔하지 못한 편이다.

<해빙>은 깔끔한 뒤집기가 본질이 아니라는 듯이, 두 번째 반전을 통해서 다시 여분의 진실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말하는 것은, 진실은 처음에 본 것(A)이나 반전을 통해서 알게 된 것(B)이 아니라, 그 사이 어딘 가(C, A
진실이 두 개의 대립 항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견해이다. 진실이 단 한 번의 반전에 의해 완전히 역상으로 뒤집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일말의 진실이 여분처럼 남아서 완전히 폐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하는데 꽤 중요한 인식이긴 하다. 즉 그가 미친놈이긴 하지만, 그의 말이 모두 미친 것은 아니며, 진실은 A 혹은 B 중에서 취사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A도 아니고 B도 아니지만 A와 B가 일부의 진실을 품은 채 중첩되어 있다는 인식이다. <해빙>은 두 개의 반전을 통해 이러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과 더불어 영화가 풀어놓은 문제의식을 확산시키려 한다.



◆ 계층추락의 공포

<해빙>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약물중독에 의한 망상이나 연쇄살인이 아니다. 영화가 품은 공포의 핵심은 계층추락에 대한 공포이다. 승훈은 강남의 개업 의사였지만, 빚을 지고 지방으로 밀려난 사람이다. 이혼까지 겹쳐 그는 무기력한 상황에 빠져있다. 그가 원룸에서 골프퍼팅을 해보고 골프채를 바깥에 내버리는 행위나 골프장 회원권을 파는 장면은 유표적이다. 좁은 방에 수북이 쌓인 채 정리되지 않은 짐들, 모처럼 만난 아들과 나누는 캐나다 연수에 대한 말 등이 모두 그가 놓인 계층의 낭떠러지를 보여준다.

그는 중산층에서 밀려난 인물이지만, 그를 둘러싼 욕망은 여전히 중산층적인 삶이다.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의 괴리. 영화의 배경인 개발 직전의 신도시 역시 이러한 괴리와 무관하지 않다. 연쇄살인사건의 악몽을 품은 낙후된 지역이지만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채비가 한창인 곳. 그곳 역시 강남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다.



영화는 승훈이 처한 괴리와 망상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앓고 있는 것이 승훈만이 아님을 말한다. 간호조무사는 진짜로 약물을 빼돌려 명품백을 산다. 승훈은 처음부터 그것을 알아봤다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데, 이는 자신도 약물을 이용해 사채 이자를 갚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육점 부자는 진짜로 살인자이다. 그런데 그의 잠꼬대 같은 말에 토막 살인을 구체적으로 연상한 것은 승훈이 토막 살인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영화가 말하는 바가 꽤 섬뜩하다. 약물을 빼돌리거나 남용하고, 사람을 죽이거나 사체를 처리하는 일이 뭐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닌 것이다. 암암리에 너도 하고 나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의 단서를 보고도 금세 눈치 챌 수 있는 어떤 것이다. 할아버지가 승훈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뭔가 안다는 듯이 “처음해보면...”이라 말하는 장면은 굉장히 오싹하다.

<해빙>이 진심으로 제시하는 공포는 이런 것이다. ‘사회적 추문이긴 하나, 아주 만연해 있어서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지는 것.’ 영화에서는 약물과 살인이 그려졌지만, 부정부패나 성추행이 대입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악이긴 하나 만연해 있는 어떤 것, 이것이 진실로 무섭지 않느냐는 반문이 숨어 있는 것이다.



영화가 두 번의 반전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도 이것이다. 너도 하고 나도 하는 그 어떤 것. 너도 느끼고 나도 느끼는 중산층적인 삶에 대한 욕망과 계층추락의 공포, 이러한 긴장을 이기기 위해 빠져드는 중독과 가해. 그리고 무의식 차원에서 벌어지는 완강한 부인과 함정에 빠졌다고 느끼는 피해의식. 자기 성찰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에, 어떤 각성도 불가능하다. 사건이 일부 밝혀진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교정되지 않고, 만연한 사회적 악은 그대로 계속된다.

<해빙>은 장르의 차원에서 평가했을 때, 그리 높은 완성도를 지니지는 않는다. 조진웅, 김대명, 신구 등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서사를 조율하는 연출의 틈새가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가 주제를 위해 깔아놓은 저변은 꽤 섬뜩하고 문제적이다. 만듦새가 아닌 문제의식의 측면에서 영화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고픈 이유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해빙>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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