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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지성의 연기력이 주는 착시효과에 속고 있다
기사입력 :[ 2017-03-14 10:22 ]


‘피고인’,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막장의 기술

[엔터미디어=정덕현]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답답하다’는 것이다. 아니 ‘답답하다’는 걸 넘어서 ‘해도 너무한다’는 것.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드라마 전개가 끝없는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흘러온 구성을 보면 지독하게 당하는 박정우(지성)가 그걸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지만 번번이 차민호(엄기준)에 의해 그게 좌절되는 상황의 무한반복이다.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신이 아내를 죽인 범인이 아닌가 하는 그 충격적인 상황에서 간신히 기억을 찾아 벗어나고, 차민호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딸이 살아있다는 걸 알고는 스스로 칼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어 딸을 만나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감옥으로 돌아오고, 그래서 결국 탈옥한 후에는 어렵게 딸을 만나 자수함으로서 반전의 기회를 갖지만 차민호가 결정적 증거를 조작하고 심지어 박정우를 돕기 위해 자수한 성규(김민석)마저 죽음을 맞이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무한 도돌이표. 게다가 그 이야기 전개는 거의 막장에 가깝다. 차민호의 부친인 차영운 회장(장광)이 힘을 써서 박정우의 무고를 증명할 결정적 증거인 칼에 대한 국과수의 조사를 조작하는 이야기는 그게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차회장은 그런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게 이 드라마가 던지는 설명이다. 또한 자수한 후 진실을 밝히려던 성규가 구치소에서 살해당한다는 것에도 그다지 그럴 듯한 개연성 있는 설명은 없다. 다만 차민호라면 그 정도 힘은 당연히 발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처리되어 있을 뿐이다.

즉 이런 개연성 없는 마구잡이식의 반전을 노리는 전개는 사실 시청자들을 낚기 위한 작가의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끊임없이 박정우의 반격을 저지시키고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그래서 뒷부분에 이어질 사이다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키려는 의도. 이건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막장의 기술이다.

하지만 이렇게 막장 전개가 가속화될수록 <피고인>의 시청률은 갈수록 치솟는다. 25% 시청률을 넘긴 이 드라마는 이제 30%를 넘기지 않을까 조심스런 예측을 내놓고 있다. 시청자들은 어째서 이런 막장드라마가 이렇게 시청률이 높을까 이야기하지만, 해답은 그것이 바로 막장드라마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개연성을 무시하고 드라마의 충실한 이야기 전개보다는 시청자들을 잡아끌기 위한 낚시에 몰두함으로써 당연히 가져가는 수치. 그게 막장드라마의 유일한 존재의미가 아닌가.



<피고인>은 여기에 일종의 위장술 같은 걸 사용한다. 그건 실체인 막장드라마를 가리기 위한 방법이다. 그 첫 번째는 연기에 있어서 믿고 보는 연기자인 지성을 주인공으로 세워 몰입도를 높여놓았다는 점이다. 설마 지성이 저런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는데 막장이겠어, 하는 착시효과가 이 드라마의 초반 몰입을 만들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지성의 존재감이 드라마에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막장드라마들이 흔한 가족드라마의 변형으로서 불륜과 출생의 비밀이 덧붙여진 가족복수극을 그려냈던 것과는 달리, <피고인>은 장르물에 막장드라마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시청자들로서는 미드에서나 많이 봐왔던 소재인 감옥이야기라는 장르적 외피를 보며 이 드라마가 주는 몰입감이 막장드라마의 기술 때문이라는 걸 부인했을지 모른다.



<피고인>이 만들어낸 막장 장르극이라는 새로운 형태는 그래서 시청층의 외연을 넓혀놓았다. 막장드라마의 주 시청층이었던 중년 여성들에게는 익숙한 전개를 제공하면서도 이 드라마는 그간 막장드라마에 시큰둥했던 중년 남성시청자들마저 장르의 외피로 위장된 막장드라마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피고인>의 성공은 막장드라마와 장르극의 혼합이라는 새로운 막장드라마의 시대를 예고하게 한다. 장르물이 갖는 미드적인 세련됨에 막장드라마가 갖는 빠른 전개,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함으로써 몰입감을 높이는 방식. 그래서 높은 시청률을 가져가지만 시청자들로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는 어딘가 작가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있는 듯한 불편함을 주는 드라마. 과연 이러한 변칙적인 드라마의 탄생은 괜찮은 일일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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