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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도봉순’, 이 엉뚱한 영웅들에게 열광하는 까닭
기사입력 :[ 2017-03-14 13:31 ]


21세기판 아기장수 김과장과 도봉순의 시원하고 따뜻한 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대하사극 <역적>에는 아기장수 설화의 주인공인 길동(윤균상)이 등장한다. 아기장수는 미천한 집안에 태어난다는 괴력의 영웅이다. 하지만 아기장수는 그 존재를 들킴과 동시에 지배층에 의해 싹이 잘린다. 길동의 아버지 아모개(김상중)은 아기장수로 태어난 아들이 위험해질까봐 늘 워워 길동이 힘을 쓰지 못하게 만류한다. 그런 까닭에 성인이 된 길동은 그만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물론 여동생이 납치되는 위기의 상황에서 길동은 다시 헐크 같은 괴력을 발휘하며 아기장수로 변신한다.

한편 같은 시기 방영 중인 JTBC와 KBS의 드라마에도 현대판 아기장수로 불릴 법한 영웅들이 등장한다. <힘쎈 여자 도봉순>과 <김과장>의 도봉순(박보영)과 김과장(남궁민)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이 시대의 금수저가 아니다. 한 명은 매번 취업에서 탈락하는 취준생이고 나머지 하나는 장부 조작을 일삼는 회계사다. 하지만 한 명은 엄청난 괴력을 가졌고, 또 한 명은 엄청난 머리 회전력과 그에 맞먹는 또라이 기질을 겸비하고 있다.

<도봉순>과 <김과장> 모두 영웅들이 난세에 등장해 판을 뒤집어가는 것이 드라마의 주요 줄거리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두 영웅들은 옛 이야기 속 영웅처럼 이상화된 존재는 아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너무 깨끗하거나 형광등 다다다 켜놓은 아우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특별한 머리와 특별한 힘을 지녔을 뿐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봉순은 힘은 천하장사지다. 허나 평소 모습은 짝사랑에 빠져 혼자 괴로워하고 혼자 까르르 웃는 귀여운 이십 대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과장 김성룡은 장부 조작의 달인이지만 인간미라고는 하나도 없는 천재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그저 우리가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한번쯤 만나봤을 법한 전형적인 나사 빠진 인간형이다.

하여간에 아우라는 없지만 특별한 힘을 지닌 친근한 영웅 덕에 드라마는 특별히 힘을 주거나 <사임당, 빛의 일기>처럼 주인공을 미화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두 인물 모두 적당히 허술한 존재라 굳이 존경 받을 법한 인물로 포장할 필요가 없어서다. 그 덕에 이 평범한 영웅을 주인공으로 드라마는 가벼운 걸음으로 앞을 향해 흘러간다. 두 드라마 모두 부담 없이 시간이 흐르는 대로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그러면서도 <김과장>과 <도봉순>은 영웅서사 드라마가 지닌 매력을 놓치지 않는다. 영웅 서사의 매력은 바로 나는 할 수 없는 큰일을 누군가 시원하게 대신 이뤄주는 것이다. 현실은 무릎이 나가게 힘들지만 그 답답한 현실을 뻥 뚫리게 만드는 소화제 역할을 해주는 이들이 바로 영웅들이다.



도봉순과 김과장은 겉보기에는 허술한 영웅이지만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나간다. 두 인물 모두 시간이 흐를수록 본인이 지닌 힘을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쓰기 때문이다. 도봉순은 여자로서 여자가 지닌 괴력을 조금 불편해한다. 천하장사 여자는 시대가 요구하는 모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봉순은 그저 여자라고 만만하게 보고 덤비는 남자들을 혼내줄 때만 살짝 괴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드라마 속 도봉구에서 벌어지는 여성 살인사건이 미궁에 빠지면서 봉순은 처음으로 자신의 힘을 대의를 위해 쓸 기미를 보인다.

한편 회계사 김과장은 자신의 재빠른 두뇌회전력을 오로지 덴마크를 위해 써왔다. 그의 꿈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인 덴마크로 이민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는 그 이민을 위해 군산의 조폭 아래에서 장부를 조작하며 돈을 꿍친다. 그리고 후에 큰 꿈을 품고 TQ그룹에 들어가 크게 한탕 해먹을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어이없게 이 남자는 TQ에서 가장 안 좋은 사무실에 가장 지질한 인간 군상들만 모여 있는 곳 같은 경리부에 들어가면서 가치관이 달라진다.



<김과장>에서 TQ그룹 경리부 직원들은 희한하게도 회사원이지만 아직 조직생활에 빠삭하게 농익은 회사원들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눈치보다는 뻣뻣함, 서로에게 투덜거리지만 힘든 일 앞에서는 뭉치는 연대의식, 깍듯한 매너는 없어도 인간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김과장은 이 조직생활의 허술한 경리부 직원들과 투닥투닥거리다 보니 어느새 그들을 위해 싸우는 투사로 변해 있다. 그리고 어느새 TQ그룹을 비인간적인 기업으로 만들어가는 갑을 향한 통쾌한 복수를 감행한다.

수많은 판타지드라마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도봉순>과 <김과장>은 그 규모가 작은 드라마에 속한다. 시간여행도 없고, 가상의 존재도 없으며, 쓸데없이 주인공들을 무인도로 보냈다가 정신병원에서 끝을 맺지도 않고, 아이돌 외모의 화랑이나 왕자들을 대거 등장시켜 과거의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하지도 않는다. 그저 평범하고 조금은 엉뚱한 영웅들을 내세워 답답한 우리 일상의 보글보글 시원한 탄산 역할을 해주는 판타지드라마일 따름이다. 하지만 이 두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건 그 작지만 시원한 힘에 있다. 최소한 이 두 드라마는 우리를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를 꼬집으면서도, 잠시나마 토닥토닥 위로해 줄 수 있는 가벼운 웃음과 따스한 손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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