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박형식, 차근차근 경력 쌓은 아이돌 출신 배우의 좋은 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 이후 준호는 더 이상 2PM의 힙한 힙으로 기억되는 아이돌 스타가 아니다. 그가 연기하는 <김과장>의 서율은 악역이지만 특별한 캐릭터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의 최민호(엄기준)처럼 무한악한에 속하는 악역은 아니다. 오히려 하는 짓은 밉살스러워도 연민이 가는 점에 있어서는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 쪽에 가까운 악역이다. 두 인물 모두 계속해서 음모를 꾸미지만 인물이 지니고 있는 여린 내면에 자꾸만 눈길이 가기 때문이다.

물론 <김과장>의 서율은 연민정처럼 파르르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은 아니다. 그는 냉소와 거만함을 무기로 사람들을 짓누르고 비웃는다. 하지만 그는 사춘기 소년 같은 불안감이나 외로움을 타인에게 혹은 시청자들에게 들키곤 한다. 그러니까 군것질에 몰두하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감을 가지게 된 여자 앞에서 반한 남자의 멍한 얼굴을 들킬 때 말이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이 덜 자라란 고교생 같은 악인을 사람들은 쉽게 미워할 수가 없다. 서율은 진짜 악인의 가면을 쓰려고 애쓰지만 그 가면이 착 달라붙기에는 아직 순진한 청년의 풋풋함이 너무 많이 남은 인물이다.

이처럼 이질적인 구석을 가진 악인이기에 서율이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다. 그런데 이 인물을 아이돌 출신의 배우 준호는 꽤 훌륭하게 소화한다. 더구나 풍자극답게 모든 인물이 1.5배는 공중에 뜬 것 같은 다소 과장된 <김과장>에서 서율은 좀 톤이 다르다. 다른 인물들이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발랄한 4분의 4박자 장조라면 서율은 단조의 4분의 2박자다. 그리고 다른 인물들과 대비되는 이 미묘한 리듬감을 운용하는 준호의 연기는 놀랍다.



<김과장>에는 종종이 독백이 많은 데다 서율의 경우는 그 독백의 감정을 대사로 프리하게 속사포로 내뱉기보다 표정으로 말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대사 없는 장면에서 준호는 선인과 악인, 혹은 점점 악으로 물들어가는 소년의 얼굴을 표정으로 잘 그려낸다. 꼭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 속 평범한 인물에 악한의 표정이 그려질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이처럼 준호의 호연은 코믹극으로 재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김과장>에 인상적인 방점을 툭툭 찍어낼 때가 많다.

아이돌 출신 배우라기엔 꽤 탁월한 텐션을 보여주는 준호의 연기는 하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영화 <감시자들>에서 젊은 경찰을, <스물>에서는 주인공과 대비되는 아르바이트생 친구를 연기한 준호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기억할 만한 인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tvN 드라마 <기억>에서 본인의 성격이나 기질과는 전혀 달라 보이는 진중한 로펌 변호사 정진을 성공적으로 연기한다. 특히 <기억>에서 준호는 주인공 박태석을 연기한 배우 이성민과 자연스러운 호흡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연기에서 뒤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김과장>의 서율을 통해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캐릭터 해석력을 보여준 느낌이다.



한편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의 주인공 안민혁을 연기하는 박형식 또한 더 이상 제국의 ‘아기병사’로 남지는 않을 것 같다. <상속자들>에서 철없는 재벌가 아들 조명수를 연기한 박형식은 이후 드라마를 통해 꾸준히 자신의 필모를 쌓아왔다.

하지만 귀여운 막내아들, 주인공의 친구 정도로 적역일 것 같은 이 스타가 달라 보인 건 SBS <상류사회>부터다. 재벌가의 아들이면서 가난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 유창수를 연기하는 박형식은 분명 이 드라마에서 서브 주연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주인공 커플보다 더 기억에 남는 서브커플의 매력을 발산했다. 그리고 이후 박형식은 로맨스물의 남자주인공에 어울리는 본인의 연기패턴을 발전시키면서 <화랑>에서 <도봉순>까지 넘어왔다.

어쩌면 박형식은 운이 좋은 배우이다. 새로운 트렌드의 로맨스에 어울릴 법한 마스크를 지녔다. 초창기 싸이월드 미니미의 눈, 코, 입을 닮은 친숙한 귀염성을 갖춘 그에게는 우리가 익히 아는 로맨스물이나 멜로물 주인공의 마스크에 감도는 크리미한 느끼함이 없다.



그렇기에 <도봉순>처럼 발랄한 로맨스가 사는 드라마에서 이 배우는 더더욱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같은 재벌가의 후손이지만 안민혁은 우리가 익히 아는 로맨스 드라마의 재벌2세와는 다르다. 벽으로 밀치며 사랑한다며 고함지르거나 이글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무조건 백화점으로 끌고 가 옷이란 옷은 다 골라주지도 않는다. 대신 체육관으로 괴력의 여주인공을 데려가 제대로 힘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뿐.

사실 안민혁의 첫인상은 백마 탄 왕자보다 틱틱거리는 고교 동급생이나 대학선배에 더 가깝다. 여주인공과의 관계 또한 서로 툴툴거리다 슬그머니 정이 드는 방식이다. 낯설고 갑작스레 다가오는 로맨스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감정을 함께 조립해나가는 방식의 로맨스다.

영리하게도 박형식은 이런 종류의 로맨스에서 남자주인공이 갖춰야 할 매력 포인트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로맨스의 주인공을 과장되게 치장할 필요 없이 젊은 남자의 친근한 매력을 보여준다. 물론 로맨스물 남자주인공의 마성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순간 또한 놓치지 않는다. 상대역인 박보영이 도봉순의 매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서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기대와 달리 <도봉순>은 어설픈 스릴러와 느슨한 이야기 전개 때문에 갈수록 김이 빠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박형식과 박보영 두 젊은 배우가 보여주는 이 생기 넘치는 로맨스 덕에 드라마가 지닌 달콤함만은 힘을 잃지 않는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JT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