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 스토리 ‘피고인’의 대중적 성공이 남긴 명과 암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잘 되는 드라마는 운도 따른다. 21일 막을 내린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의 마지막회는 온 국민의 시선이 검찰청에 쏠려 있을 때 방영됐다. 검찰이 그간의 역사를 걷어내고 부정한 권력을 엄벌해 법과 정의를 바로 세워주길 바라는 마음과 에스코트, 호칭, 녹화 포기 등 온갖 특혜 의혹에서 시작되는 불안이 공존하는 뉴스를 본 시청자들에게 바르고 강직한 검사의 정의구현 사법 액션 활극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과 묘한 대구를 이뤘다. 시청률은 TNMS기준 전국 26.6%, 수도권 30.3%를 기록하며, 첫 회 기록한 전국 11.9%, 수도권 13.9%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사실상 극의 진행은 이미 지난주에 끝난 터였다. 차민호(엄기준)의 존재가 드러나고, 마지막에 쥔 패가 갈리면서 12회를 전후로 팽팽하게 이어오던 대결의 긴장감은 이미 어느 정도 해소됐다. 차민호는 마지막까지 법을 피해가려고 정신감정을 의뢰하고 관련 판사와 의사를 매수하는 꼼수를 부렸지만 너무나 명백한 증거가 차고 넘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도저히 대세를 거스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시청자들은 이런 결과를 미리 짐작하고 있음에도 박정우가 법정에서 차민호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통쾌함을 즐기며 권선징악의 정의구현의 스토리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피고인>은 <시그널>에 이어 대중적 성공을 거둔 웰 메이드 장르물로서 그간 우리 드라마 판의 이런저런 클리쉐와 공식을 한 번 더 무너뜨렸다. 우선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해도 사랑에 빠진다는 우리 드라마 공식을 거부했다. 소녀시대의 유리가 출연하긴 했지만 로맨스 라인은 아예 없었다. 검사 박정우와 수감자 3866을 오간 지성의 원맨 드라마라는 구성도 생소했다. 법정물과 교도소물을 오가는 배경 속에 <테이큰>의 리암 니슨 같은 부정과 액션은 극의 재미를 높이는 정서와 볼거리였다. <7번 방의 기적> 같은 우리나라 교도소물 특유의 가족적인 정서와 코미디는 윤활유로 쓰였다. 우연과 오해로 점철된 극본이나 인과관계를 한 방에 탈출하는 국면전환용으로 주로 쓰이던 기억상실증이 극에 꼭 필요한 중요 장치로 쓰인 것도 <피고인>이 거둔 성취 중 하나다.



이처럼 <피고인>은 극본과 연출, 캐스팅 등 모든 면에서 몇몇 조연 배우의 연기를 제외하고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였다. 하지만 중반부 이 드라마가 치고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정의구현 스토리라는 동시대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는 장르나 연기톤은 전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인생역전 스토리를 쓰고 있는 <김과장>의 인기에서도 엿볼 수 있는 현상이다.

마지막 회, 최민호는 박정우에게 우리나라에서 돈과 권력으로 안 되는 게 뭐가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가을까지 우리나라에서 돈과 권력으로 안 되는 게 없었다는 것이 MBC와 KBS를 제외한 시사매체의 경쟁적 보도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시민들은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와 같은 법적 절차를 통한 탄핵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검찰청으로 눈이 쏠렸다. 검찰에 대한 당연하고도 깊은 불신과 이번만은 다르길 바라는 기대가 하루 종일 피어오른 하루, 드라마에서라도 검사가 정의구현을 하는 스토리, 법과 원칙과 정의가 돈과 권력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 있다는 희망을 즐겼다.



하지만 현실적 고민과 관계는 <피고인>도 피해갈 수 없었다. 교도소물로 전환되고, 정신 차린 박정우의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시청률이 급등했다. 이 기회를 조금이라도 끌고 가고 싶은 SBS는 2회 연장 카드를 꺼냈고, 얼마 전 종영을 앞두고 확대 편성되어 아쉬움을 남긴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처럼 눈에 띄게 지리멸렬해졌다. 부성애를 제외하곤 쫀쫀하고 알이 꽉 찬 전개와 긴장감으로 진행되던 극이 8시대 일일드라마처럼 방백이 난무하고, 모든 관계나 사건에 매듭을 짓는 해피엔딩이 긴 사족으로 붙었다. 결국 마지막 4회는 지난 12회와 완전히 다른 결의 일일 드라마화가 됐다. 연장을 하는 대신 내어준 대가는 클라이맥스였다. 팽팽하게 마주보고 달려온 박정우와 차민호의 결투 하이라이트가 깎여 나갔다.

<피고인>은 정의구현이란 시의성과 웰메이드한 장르물이 만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제 예전처럼 스타에 의존하거나, 뻔한 전개나 구도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하나 증명하며 발전해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극복해야 할 과제도 남겼다. 현실논리에 취해 무리한 연장 편성은 지양하고 맞서야 할 악습이다. 한 주 더 돈을 벌자고 좋은 평가를 받은 드라마에 오점을 남기는 것은 채널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도 슬기롭지 못하고, 극을 즐겨온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처사다. 원칙과 정도를 넘어선 편법과 견물생심은 우리가 현실의 검찰청을 불안하게 쳐다보게 된 근본적인 원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