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드문 여성 버디물 ‘비정규직 특수요원’을 응원하는 세 가지 이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강예원, 한채아 주연의 코믹 액션물이다. 영화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침투한 상반된 성격의 두 여성이 우정을 쌓으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유쾌한 시선으로 그린다.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다소 뻔한 흐름을 갖고 있지만, 영화가 드러내는 현실의 모순이 결코 녹록치 않다. 또한 두 여성이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의외의 웃음을 던진다. 특히 <검사외전><공조><더 킹> 등 남성버디물이 넘쳐나는 가운데, 여성버디물이라는 흔치 않은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 국가안보국이 보이스 피싱을 당하다

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2003년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장영실(강예원)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그는 편의점, 인형 탈, 택시 운전 등등 온갖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한편 꾸준히 구직활동을 해나간다. 하지만 번번이 낙방이다. 35살이 되어서 드디어 합격통지를 받지만, 2년 계약직이다. 그래도 “나라 일 하는 곳”이라는 자부심으로 국가 안보실에 들어가 댓글작업을 하던 장영실은 1년 3개월 만에 정리해고 된다. 해고통보를 하는 박차장(조재윤)은 장영실의 이름을 계속 틀리게 부른다. 영화는 명찰에 손으로 썼다가 반쯤 지워진 그의 이름처럼 조직 내 그의 존재가 희미하며, 까다로운 홍채인식장치의 명령처럼 직장이 그에게 요구한 것들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장영실이 해고되는 순간, 국가안보실 박차장(조재윤)이 보이스피싱으로 5억 원의 공금을 날렸음을 알게 된다. 차장은 장영실에게 보이스피싱 조직에 잠입하여 5억 원을 회수하면 정규직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장영실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취업하여, 피싱 업무를 해나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형사(한채아)가 잠입수사 중임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공조수사를 해나가며 점차 친해진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피싱 조직에 적응해나가며 비밀을 캐내고, 발각될 위험에 처하는 과정은 그다지 특이하지 않다. 예컨대 언더 커버물 장르의 <무간도><신세계>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다. 하지만 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의 재미는 다른 곳에 있다.



첫째는 장영실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친근감과 매력이다. 이는 강예원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개와 대화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15년간 비정규직을 전전한 노동자에게 이입되는 짠한 감정이기도 하다. 장영실은 22개의 자격증과 무수한 직업경력을 지닌 능력자이다. 사회는 그에게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면 계속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다”며 냉대하지만, 오히려 그는 만능의 실력을 갖춘 존재이다. 그의 다채로운 능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 그들의 신뢰를 얻거나 위기상황에 빠졌을 때 모면할 수 있게 해준다.

장영실에 대한 묘사는 마치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미스김(김혜수)이 그러했듯이, 전복적인 인식을 품고 있다. 그는 좀 허술해 보이긴 하지만, 택시 기사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능력을 활용하여 특수요원 못지않은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박차장은 그를 속이고 그의 성과를 가로채지만, 그런 자에 대한 장영실의 복수가 호쾌하다.



둘째는 재미난 상황들이다. 국가안보국이나 국방부가 보이스 피싱 조직에 허술하게 뚫리는 상황자체가 우습다. 더욱이 장영실이 댓글을 다는 요원이라는 설정이나, 출세에 줄을 대느라 공금 5억 원을 날려먹는 한심한 짓거리도 헛웃음이 나온다. 더욱이 조재윤, 김민교의 맛깔나는 연기가 우스운 상황을 극대화한다. 양실장(김민교)이 국방부에 전화를 걸어 시범을 보이면서 손으로 낚시하는 시늉을 하는 장면은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의 정확한 의미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영화는 이러한 피싱 조직의 직원들이 죄의식을 느끼거나 무뎌지는 것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장면들을 할애한다. 이들은 뚜렷한 피해자가 있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안정된 생계를 위해 눈을 감는데, 이따금씩 죄의식이 살아나는 갈등의 선상에 놓인다.



◆ 여성버디물로서의 가치

셋째, 두 명의 여성이 티격태격하며 친해지는 과정에서 기존의 남성 버디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가령 두 사람이 수사에 대해 속닥이는 모습을 보고, 친한 동료가 “언니들, 나 따돌리는 거야?” 하며 끼어들고 연애 상담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장면도 특유의 여성성이 느껴진다. 또한 둘이 함께 도망치다 카체이싱을 벌인 다음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장면은 여성들 사이에 교류되는 묘한 정서를 품는다.

장영실은 처음 박차장에게 “(나형사가)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아요. 무서워요”라고 보고할 만큼 이질감이 컸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가면서 믿음과 의리가 쌓인다. 나형사의 호의에 그를 꽉 껴안은 다음 어색해하는 장면이나, 두 사람이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타투를 새기는 장면 등은 자매애적인 정서를 물씬 풍긴다.



두 사람의 자매애적인 분위기 못지않게 이들을 둘러싼 남성들에 대한 영화의 태도도 의미 있다. 나형사는 입이 거칠고 다혈질인 여성으로, 연정을 표하는 후배형사의 감정을 무시하고, 음흉한 눈빛을 보내는 양실장(김민교)를 역겨워한다. 하지만 나형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뻣뻣한 관능의 춤을 추며 그를 유혹하는데, 결말은 그의 남성적 섹슈얼리티가 손상되는 것이다. 이는 이성애 관계에 대한 영화의 희화적 태도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한편 장영실은 박차장을 오빠라고 부르다 거부당하고, 사장(남궁민)을 통해 이성애 판타지를 느끼지만 부질없는 짓이 되어버린다. 영화는 결말에서 두 사람의 허리에 새긴 문신을 재차 강조한다. 이성애의 판타지가 아니라, 여성들 간의 우정과 연대가 더 중요함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도 <노랑머리><파란대문><싱글즈><피도 눈물도 없이><미쓰홍당무><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도희야><차이나타운><아가씨><우리들><비밀은 없다> 등 여성들 간의 관계에 주목한 영화들이 있어왔다.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굉장한 문제의식을 지닌 영화는 아니지만, 오락 기능에 충실한 여성 버디물로서 썩 괜찮은 시도와 성취를 보여준다.

남성들 간의 관계를 그린 영화들이 마치 보편인양 여겨지고, 심지어 <프리즌>처럼 여성은 그림자도 등장하지 않는 영화가 과히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작금의 한국영화계 풍토에서 여성을 중심에 둔 영화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 조금이라도 균형추가 이동해야 된다는 당위가 이 영화를 응원하게 만든다. 흥해라, 여성 버디무비!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