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타올 미남 하석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데뷔한 지는 꽤 시간이 흘렀지만 배우 하석진의 캐릭터가 만들어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맥주광, 뇌섹남, 그리고 까칠한 미남이 이 스타의 캐릭터다. 사실 데뷔 이후 몇 년 동안 그는 주말드라마의 잘생긴 남자에 어울리는 역할들만 소화했다. 그건 잘생긴 남자들이 거쳐 가는 바비인형의 남친 같은 무난한 코스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JTBC <무자식 상팔자>에서 김수현 작가 가족극의 장남 안성기를 연기하면서 이 배우에게는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보통 김수현 가족극의 막내는 툴툴대는 응석받이면서도 은근히 착하고 누나들에게 몇 대 얻어맞는 그런 역할이다. 반대로 맏이는 대개 순종적이며 책임감이 강한 남자로 그려진다.

하지만 큰 누나와 막내 동생 사이에 낀 장남 안성기는 조금 달랐다. 안성기는 무언가 파르르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손해 보는 건 죽도록 싫어했다. 이런 까칠하고 이기적인 개인주의자 역할에 냉미남 하석진은 꽤 잘 어울렸다. 사실 하석진은 그때부터 까칠함의 재능이 돋보였다. 김수현 작가의 바늘 돋은 대사를 이렇게 뾰족하게 소화하는 남자배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으니까.

이후 하석진은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다시 김수현 작가와 인연을 맺는다. 이 드라마에서 하석진은 여주인공 은수(이지아)의 두 번째 남편 김준구로 등장한다. 김준구는 김수현의 대표 멜로극인 <불꽃>에서 차인표가 연기했던 캐릭터와 흡사한 인물이다. 여주인공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냉정하고 이기적이다. 이 드라마에서 하석진은 여주인공을 코너로 몰아넣는 인생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김준구의 치켜 뜬 눈, 타인에게 모멸감을 주는 빈정대는 말투, 싸늘한 비웃음에 이르기까지. 나중에는 여주인공이 어서 남편과 이혼하기를 바랄 정도로 그는 리얼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여주인공이 더러워서 두 손 털털 털고 나가게 만드는 최고의 남자주인공인 셈이었다.



하석진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잘생긴 젊은 배우답지 않게 로맨틱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자를 정말 잘 소화하긴 했다. 이태리 미남처럼 잘생긴 남자가 이태리 타올처럼 까칠까칠한 남자로 변하는 순간을 이만큼 잘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게 배우에게 득이 될지 안 될지는 조금 애매한 지점이기는 했다. 한국 드라마의 특성 상 독살스러운 미남은 부드럽고 달콤한 미남에 비하면 설 자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로맨스 드라마의 경우 초반 남자주인공들이 까칠하게 묘사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남녀의 적당한 툴툴거림을 위한 매콤한 양념에 불과하다. 그래야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반전이 일어날 경우 그 달콤함이 배가되니까.



하석진은 이 까칠함의 경우가 양념으로 봐주기에는 너무 리얼한 면이 있다. 표정과 말투, 비웃음으로 여주인공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는 느낌이 들 정도다. 더구나 하석진의 경우 이후 이어진 드라마들에서 달콤한 남자의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에서는 종종 톱밥 같은 텁텁함이 드러나곤 했다.

하지만 이런 하석진에게도 2016년 본인의 캐릭터에 딱 들어맞는 로맨스의 주인공을 연기할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tvN <혼술남녀>의 스타강사 진정석이 그 인물이다. 머리 좋고, 혼술 좋아하고, 거기에 까칠하기까지한 이 남자는 딱 배우 하석진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와 어울리게 이 드라마에서 하석진은 평소 몇몇 주말극에서 보여준 것처럼 뻣뻣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꽤 유연한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달콤한 대사에는 쉽게 감정을 싣지 못하던 이 배우가 술과 고독에 대한 독백에서는 꽤 울림 있는 감정을 싣기도 했다. 그의 감수성이 남녀 간의 사랑 아닌 맥주와 고독에 방점이 꽂혀 있는 듯 보일 만큼.



<혼술남녀>의 성공 이후 MBC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하석진이 선택한 캐릭터는 역시 비슷하다. 매너 좋고 사랑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늘어놓은 이태리 미남이 아닌 냉정하고 여주인공을 까칠하게 빡빡 몰아세우는 이태리 타올 미남이다. 다만 <자체발광 오피스>의 마케팅팀장 서우진은 <혼술남녀>의 진정석과는 다른 부분들이 꽤 있다.

지금까지의 진행 상 서우진은 진정석보다 더 까칠하고 냉정하다. 반면에 반전 이후 캐릭터가 변할 여지 또한 충분해 보인다. 여주인공이 지닌 진솔함을 알아보고 그 이후 로맨스가 이어지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갑과 을 사이에 미묘하게 껴 있는 인물인 서우진은 로맨스 말고도 복잡하고 미묘한 지점을 끌어낼 여지가 충분하다. 특히 이 캐릭터의 까칠함은 을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어서 조직에서도 당당하게 입바른 소리를 한다.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서우진은 ‘개저씨’스러운 직장 상사들의 꼰대짓을 묵은 때처럼 박박 밀어내는 속 시원한 역할도 도맡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체발광 오피스>은 배우 하석진에게는 꽤 중요한 작품이 될 것 같다. 까칠한 캐릭터 배우로 남을지 하나의 드라마를 끌어가는 자체발광 남자주인공이 될지 결정되는 판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JTBC, 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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