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말’, 이상윤에 대한 몰입감 왜 이렇게 떨어질까

[엔터미디어=정덕현] 한때는 부모의 요청마저도 거부했던 공명정대한 판사였다. 하지만 로펌 태백이 그 자리를 흔들고 심지어 그의 선의를 법을 어긴 사적 욕망으로 뒤집어씌워 그를 밑바닥으로까지 추락시키려 손을 뻗자 그는 결국 소신을 꺾었다. 증거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고한 이를 죄인으로 만든 것. 하지만 그가 한 번 꺾은 소신은 계속해서 그를 더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무고하게 옥살이를 하는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해 성관계 동영상을 찍어 그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딸의 등장은 그로 하여금 더 비정한 짓들을 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의 이동준(이상윤)이라는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다. 결코 악하다고도 또 그렇다고 선하다고도 할 수 없는 인물이고, 궁지에 몰린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소신을 포기하는 선택을 한 인물이지만 또 어떤 행동을 보면 그리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라 대단히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박경수 작가의 <추적자>에 등장하는 백홍석(손현주)이나 <펀치>의 박정환(김래원)과는 사뭇 다르다. 이들은 권력자에 의해 당하는 인물이었지만, 이동준은 본인의 선택으로 권력자가 된 후 그 상황이 몹시도 힘겨운 선과 악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이 부분은 시청자들이 쉽게 이동준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귓속말>에서 오히려 시청자들이 몰입해야 할 대상은 이동준이라기보다는 신영주(이보영)다. 바로 이동준이 소신을 꺾고 유죄판결을 내린 무고한 이의 딸. 그런데 드라마는 신영주가 어떤 위기상황에 빠져 더 간절하게 진실을 원하게 만드는 것으로서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동준이 태백의 사위로 들어오게 되면서 그 회사 내에서 경영권을 두고 벌어지는 암투의 희생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담는다. 결국 라이벌인 강정일(권율)에 의해 이동준은 상습마약복용자로 검거될 위기에 몰린다.



그런데 이 이동준을 구하러 달려오는 유일한 인물은 신영주다. 즉 신영주는 아버지를 감옥에서 꺼내줄 유일한 동아줄이 이동준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를 구해내야 자신의 아버지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이처럼 이동준과 신영주의 관계는 권력 관계에 의해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니 감정 선도 단순할 수가 없다. 미워하는 감정이 있지만 동시에 구원을 희망해야 하는 마음도 저버릴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자꾸만 당하는 캐릭터로서 이동준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지만 그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몰입은 잘 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는 갈수록 서민의 편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니라 권력의 쟁투 한 가운데 놓여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또 다른 권력욕의 인물이 되어간다. 그러니 저 <추적자>의 백홍석이나 <펀치>의 박정환처럼 지지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복합적인 캐릭터가 가진 몰입하기 쉽지 않은 인물의 문제는 이를 연기하는 이상윤의 문제 또한 드러낸다. 너무 단선적인 연기가 아니냐는 연기력에 대한 지적이 나오게 된 것. 심지어 이전 작품이었던 <공항가는 길>이 자꾸 떠오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물론 몰입이 쉽지 않은 캐릭터가 만든 문제일 수 있지만, 연기력에 대한 이런 지적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이동준이라는 캐릭터가 앞으로 시청자들을 더욱 몰입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귓속말>이라는 드라마의 성패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펀치>가 그랬던 것처럼 <귓속말> 역시 치고 받는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충돌을 그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만으로는 게임적인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다. 거기에 어떤 감정적 지지를 얹게 해주는 일. 그것이 이동준이라는 캐릭터가 덧붙여줘야 할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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