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예린 몰카안경 대응, 비난 받을 이유 전혀 없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지난 3월 31일에 있었던 여자친구 팬 사인회 현장 영상이 어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그 영상에서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남자팬이 사인을 받기 위해 멤버인 예린 앞에 멈췄고 예린은 그 팬과 이야기하다가 안경을 벗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 안경은 알고 보니 렌즈 사이에 카메라가 달린 소위 몰카 안경이었던 것이다.

이 상황은 여러가지 면에서 오싹하다. 일단 그 자리는 촬영이 가능한 행사였다. 이 사건이 노출되었던 것도 그 상황을 찍은 현장 영상이 온라인에 떴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앞에서 멤버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리에서 굳이 몰카 안경을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변명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걸 다 이해해주거나 믿을 필요는 없다. 몰카 안경과 같은 것을 이용해 무방비 상태의 남을 찍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해야 할까? 아니, 그런 몰카 안경을 샀다는 것부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더 오싹한 것은 예린의 입장이다. 눈앞에서 몰카범을 적발했으니 화를 내도 뭐랄 사람 없지만 예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손함을 유지한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면서 깔끔하게 상황을 통제하는 예린의 태도는 노련하고 쿨하기 짝이 없었으며 굉장히 멋있었다. 하지만 예린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예찬한다고 해서 아이돌 직종의 이 오싹한 환경에 대한 공포를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증폭된다. 이런 것은 결코 일상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익숙해져서도 안 된다.

오싹함은 점점 도를 넘어선다. 예린은 거의 교과서적으로 완벽하게 대응하며 자신을 보호했지만 인터넷 여기저기엔 이 태도를 욕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예린이 과잉반응을 했고 그 자칭 ‘팬’과의 만남 이후 얼굴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이중인격적이라고 한다. 여기에 점점 말도 안 되는 반응들이 추가되는데, 이것들을 다 소개하며 내 정신건강을 까먹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왜 세상에서 가장 쿨한 태도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맞선 사람이 비난을 받는 상황이 형성되는 걸까? 결국 지금 대한민국에서 젊은 여성 연예인들이 소비되는 방식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자친구와 이 팀의 이미지 메이킹에 대해선 전에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케이팝의 기준으로 보면 이 팀의 이미지와 퍼포먼스는 준수하다. 과도한 애교도 없으며 가사의 주체성도 뚜렷하다. 논란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방향성도 좋다. 결코 만만한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개별 팀의 콘셉과 성격이 이들의 직업 환경에 과연 얼마나 영향을 주는 걸까? 의외로 큰 영향은 없다. 아무리 뮤직비디오에서 장총을 들고 날아다녀도 퍼포먼스 밖의 환경은 비슷하다. 대한민국 연예계가 젊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기대하는 안전한 수동성의 함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수동성은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의무가 된다. 이들이 여기에서 우아하게 피할 수 있으려면 엄청난 경험과 기술이 필요하며 그 기술 역시 대부분 시연되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아무리 무대 위에서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선보여도 이들은 모두 같은 기대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기대는 기괴하며 변태적이다. 모 커뮤니티에 속한 몇몇 자칭 팬들이 예린의 완벽한 대응에 비난을 퍼부었던 건 그 정도도 그들이 생각하는 ‘어린 여자 연예인’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몇몇 몰카범들을 잡아내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화 전체의 문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성 연예인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남성 문화의 문제다. 최근 몇몇 여성 아이돌 그룹의 남성팬들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그 문화의 위험성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번 소동도 그 연장선에서 보아야 한다.

당연히 교정이 필요하다. 일단 기초적인 하한선을 그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건 회사의 일이다. 팬들에게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연예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와 함께 더 큰 그림도 보아야 한다. 이 그림들은 여러 크기로 존재할 수 있는데, 결국 문화를 바꾸고 이미지를 바꾸어야 한다는 답으로 귀결된다. 지금까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태도들에 대한 적극적인 수정을 요구할 때가 된 것이다. 이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모두가 중장년남자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생활의 덫에 갇혀 있는 이 나라에서는 더더욱. 이 문화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과연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기는 할까? 하지만 그들을 바꾸지 않고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할까? 문제는 점점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그래도 그들에게 목소리를 내고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마치 허구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아 말하기 조금 주저하게 되는데, 이번 소동을 담은 영상 클립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우스꽝스러운 동물 모자를 쓰고 귀엽고 동글동글하고 무해한 행사용 이미지를 유지하며 일하고 있던 연예인이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아까 그 장면이 지극히 멋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멋짐보다 더 중요한 건 그런 통제를 했던 것이 다들 익숙해 있던 무해한 연예인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정예린이라는 자연인 성인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자칭 팬들은 그게 오싹했다고 징징거린다. 무슨 이유인지 알겠지만 비웃고 싶다.

멋짐 뒤에 숨겨진 의미를 읽자. 이미지 뒤의 자연인을 보자. ‘어린 여자애’ 대신 동등한 프로페셔널을 보자. 그것만으로도 우린 많은 걸 바꿀 수 있다. 적어도 자기가 직접 적발한 몰카범 앞에서 표정이 굳은 것까지 비난하는 사람들이 나중에라도 스스로를 창피해 할 정도는 바꿀 수 있다. 그게 상식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이번 소동을 제대로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든지 그 길로 갈 수 있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유튜브 캡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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