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밥쇼’ 최승돈·현주엽·최욱, 이 조합 정규에서도 만나려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KBS1 TV에서 오랜만에 매우 흥미롭고 에너지 넘치는 파일럿 프로그램이 나왔다. 시사교양으로 편성되어 있으나 같은 채널의 <이웃집 찰스>와 마찬가지로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예능이라 해도 될 만큼 편하다. 이름 하여 <트루밥쇼>. 태어날 때부터 30여 년간 대형 돔 스튜디오에서 모든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생중계된다는 사실을 오직 자신만 모르고 살던 트루먼(짐 캐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트루먼쇼>에서 제목을 채용했다. 1998년 개봉했으니 벌써 20여 년 전일인데, 당시 출현이 예고된 리얼리티 쇼에 대한 호기심과 매스미디어의 폭력적인 본질에 대한 성찰 등이 맞물려 크게 흥행했다. 최고의 코미디 배우였지만 늘 평단의 혹평에 시달렸던 짐 캐리에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기도 하다.

제목을 차용한 만큼 <트루밥쇼>는 CCTV형 몰카를 기반으로 한다. 3부작 파일럿으로 노량진 경찰공무원 고시생과 퇴근 후 푸드트럭을 하는 투잡 직장인,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생 등 한 주에 한 명 씩 우리 주변의 평범한 누군가의 하루를 ‘중계’한다. 스포츠 중계 형식은 긴 시간 누군가의 삶을 엿보기를 위해 찾은 장치라 할 수 있다.

‘당신의 일상을 중계합니다.’ 이 기획의도에 걸맞게 스포츠 캐스터와 해설자로 분한 출연자들은 관찰대상의 치열한 하루를 지켜보면서 이런저런 추측과 수다를 떨고, 일정 시점에서 주인공 앞에 나타난다. 그리곤 한 끼 식사를 함께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활력과 위로를 건넨다.

그런데 <트루밥쇼>에는 한 가지 명백한 불안(불편)과 한 가지 굉장한 호기심(에너지)이 공존한다. 우선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 명단을 살펴보자. 최승돈, 현주엽, 최욱이다. 그 흔한 예능 선수들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가장 방송 경력이 높은 사람은 최승돈 아나운서다. 다만 전현무, 조우종 등 후배들에 비해 예능 노출이나 대중적 친밀도가 높지 않다(이 점을 함께 출연한 최욱이 계속 건드린다).



웃음을 담당해야 한다는 최욱은 딱 봐도 연예인 티가 나서 언더커버 촬영이 어렵다는 본인 주장과 달리 리얼 언더그라운드 방송인이다. 팟캐스트와 지역 방송에서 활동해온 인물로 데뷔 16년 만에 첫 공중파 입성이다. 가장 인지도 높은 인물은 현주엽인데, 최욱이 짚은 대로 대형 예능에만 출연하는 서장훈과는 분명 다른 커리어를 쌓는 중이다.

그런데, 이 셋이 발산하는 에너지가 의외로 대단하다. 늘 보던 얼굴들, 익숙한 캐릭터가 아니라서 신선한데 조합도 참신하다. 넉살 좋지만 먹는 것만큼은 민감한 현주엽과 여기저기 치이는 중년 직장인 캐릭터 최승돈 아나운서 옆에서 궁여지책 캐스팅이란 제작진의 푸념에도 자칭 연예인이라 우기는 최욱은 시종일관 깐죽거리며 얼토당토않은 허언증에 가까운 ‘드립’을 남발한다. 그러면서 현주엽과 티격태격하고 서로의 역할이 뭐냐며 의구심을 품다가 먹는 것이나 촬영장 복지와 관련해서는 대동단결해 제작진을 타박하거나 떼 쓰거나 KBS를 탓한다.



최욱은 흥미롭다. 언더 출신답게 기존 방송인들과는 달리 선을 정해놓고 방송하지 않는 신선한 캐릭터다. 박명수가 스스로를 거성이라 불렀던 시절을 보는 듯하다. 주눅들지 않고 최순실, KBS, 담당 PD, 출연자, 스텝, 일반인 주인공 등등 거침없이 불평하고 깐족거린다. 최승돈 자리에 다른 아나운서 데려와야 한다고 안타까워하고, 현주엽은 계속 서장훈과 비교하며 매를 번다. 주인공들에게는 한번만 울어달라고 억지 감동을 주문하고, 제작진에게는 스타 대우를 바란다. 그러면서 셋의 수다는 활기를 띠고 웃음꽃이 피어난다.

그의 영향으로 다른 출연자들도 KBS 프로그램이란 걸 잊을 정도로 투닥거린다. 실제 여건이나 제작진의 마인드도 언더그라운드 방송에 가깝다. 최욱을 캐스팅할 수밖에 없었던 피치 못할 경제적 사정을 계속 자막을 통해 어필하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입었던 중계복이 겨울 촬영 중인 프로그램의 공식 유니폼이니 말 다했다.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과거 <라디오스타>나 지난 대선의 <나는 꼼수다>, 최근의 <썰전>처럼 관계망이 형성되는 토크 속에서 출연자들끼리 실제로 웃고 즐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른바 이곳저곳에서 언더그라운드 특유의 생동감이다. 그동안 못 보던 인물들이 만든 조합에서 이런 에너지가 느껴지고 웃긴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롭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쇼는 토크쇼가 아니다. 우리 주변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다큐성 프로그램이다. 보다 정확한 방점은 오늘도 수고하며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위로를 건네는 데 있다. 명백한 불안은 여기서 피어난다. 관찰대상을 어떻게 선정하는지, 그의 사생활은 어떻게 보호받는지, 과연 선동의 없이 누군가의 일상을 하루 종일 몰래 관찰하는 것에 윤리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확실치가 않다. 트루먼이 자신의 모든 삶이 방송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필사적으로 스튜디오를 탈출하려 했던 것처럼,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음은 아무리 방송 이벤트라 해도 전부 다 웃음으로 승화되긴 어렵다.

이를 테면 혼자 있을 때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든가, 몰래 하는 루틴들이 있을 수도 있다.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처럼 특이한 사건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을 관찰하는 CCTV 방식의 몰카 프로그램이 선한 기획 의도를 무리 없이 잘 전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3주차에 편성된 푸드트럭의 경우 가짜로 다큐멘터리 촬영을 한다고 협조를 구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했다. 하지만 어떻든 방송임을 인식하다보니 리얼한 일상을 포착하는 데는 실패했다. 중계의 질이 높아지려면 일상을 몰래 관찰해야 하는데 20년 전 트루먼이 보여줬던 것처럼 이 콘셉트는 웃음 속에 불편함이 침전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트루밥쇼>는 근래 5년 동안 본 KBS 파일럿 중 가장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특히 캐스팅은 전위적이라고까지 할만하다. 최근 채널과 프로그램은 늘어나면서 예능 프로그램도 범람하지만 늘 비슷한 예능 선수들이 돌아가며 등장해서 새롭지가 않다. 그런데 무려 KBS1에서 최근 보지 못한 에너지를 가진 조합을 탄생시켰다. 솔직히 감명 받았다. 하지만 정규편성 혹은 더욱 더 많은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큰 숙제가 있다.

일상 속에 느닷없이 마주한 연예인, 방송은 흥미로울 수 있지만 알고 보니 카메라가 있었고, 누군가 계속 날 지켜보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는 건 다른 문제다. 또한, 몰래 관찰 카메라를 통해 중계할 때와 주인공과 앉아서 대화를 나눌 때의 급격한 온도차도 꼭 해소해야 할 문제점이다. 사실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어떤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셋의 수다와 호흡, 방송을 꾸려가는 에너지가 요즘 시대에 너무나 신선했던 만큼 꼭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불편함을 덜어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다시 돌아오길 기다려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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