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통증> 속에 숨겨진 우리 사회 이야기[인터뷰]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생생인터뷰] 사람을 오랜 기간 두고 만나다 보면, 인터뷰라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곽경택 감독이 딱 그런 경우다. 이제 그를 알만큼 안다. 곽경택 감독은 지금까지 11편의 작품을 찍었다. <태풍>처럼 블록버스터도 있었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장르영화도 있었으며 <친구>처럼 빅 히트를 한 영화도 있었지만 <닥터K>처럼 흥행에 참패한 영화도 있었다.

지난 과정을 찬찬히 반추해 보면 그가 왜 이번에 새로운 영화 <통증>을 찍었고, 그걸 어떻게 찍었으며, 무엇을 아쉬워 하고, 무엇을 만족해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과정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그래서 그에게 전화를 했을 때, 서로 인터뷰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저 밥이나 한번 먹자고 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주말,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 들어 갔을 때 그는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처음엔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못보는 사이 그의 머리가 하얗게 됐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뭘 그러냐는 표정을 지으며 그는, 그 동안 투자를 받는데 문제가 있을까 봐 머리를 염색해 왔다고 농을 쳤다. 그런데 그게 꼭 빈말처럼 들리지만은 않았다.

그의 새영화 <통증>을 잘봤다고 얘기했다. 곽 감독이 장난스럽게 눈을 흘긴다. “영화가 좋았다는 말, 그거 그쪽 연령대에서나 느끼는 뭐 그런 거 아니죠?”란다. 만약 그렇다면 흥행은 물건너 갔다는 얘기가 되니까. 그의 얘기에 나도 모르게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이 영화를 20대 관객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감이 없다. 영화는 20대들이 좋아해야 흥행에 성공한다. 40대와 50대가 좋아하는 건 쓸모가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 둘 다 각각 40대 중후반이다.

변화무쌍한 트렌드에 뒤처진 나이가 됐든 말든, 그래도 할 얘기는 해야 한다. <통증>은 20대 관객들을 겨냥해, 마치 권상우와 정려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포장됐지만 기실 그것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 영화다. 그보다는 사회적 진실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다. 둘의 사랑 이야기는 재개발 철거 과정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사건을 향해 달려간다. 철거 용역원의 죽음을 놓고, 곽경택의 이야기는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빙글빙글 우회로를 택한다.

영화는 먼저 이 용역원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어릴 때 당한 교통사고로 정서적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철거 용역원이 되기 전에 악랄한 채권추심업체 직원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그가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여자는 혈우병을 앓고 있어 조그만 상처를 입어도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녀는 치료비로 사방천지에 빚을 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채권추심을 하는 상대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맞아요. 결국 이 러브 스토리는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되고, 거기에 방점이 찍혀 있는 얘기죠. 흔히들 재개발 철거 사고에서 피해자에게 시선이 가 있다면, 이 영화는 가해자 혹은 가해자로 오인받는 남자에게 눈길을 두고 있어요. 그런데 그 철거용역원은 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에게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그 사연에 우리사회의 어떤 어둠과 그늘이 깔려 있는 걸까. 바로 그 점을 얘기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왜 그걸 드러 내놓고 얘기하지 않았을까. 그는 뻔한 얘기를 왜, 알만한 사람이 묻느냐는 표정이 된다.

“대놓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더군요. 영화에 어떤 생각이 담겨 있는지를 알게 되려면 일단 먼저 보는 게 먼저니까. 마케팅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솔직히 영화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는 관객들의 몫이에요. 내가 얘기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다, 난 맞다고 봐요.”

곽경택 감독이 조금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주장을 강하게 밀어 붙이지 않는다. 눈빛도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1995년 단편 <영창 이야기>로 데뷔해 지난 16년동안 열 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면서 그도 나름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 꼭지점을 칠 만큼 오르기도 했고 밑으로 떨어져 보기도 했다. 그도 이제 하나의 산을 넘었다. 다음 산을 오를 차례고, 그러다 보니 다시 밑에서 시작하게 된 셈이됐다. 그가 웬지 초심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은 건 그 때문이다.



“<통증> 개봉 한참 전에 이미 새로 촬영에 들어간 작품이 있어요. <미운오리 새끼>란 작품인데, 사람들이 좀 놀랄 거에요. 첫 작품 <영창 이야기>를 장편으로 개작하는 겁니다. 전체 제작비도 4억여원짜리로, 저예산입니다. 그동안 생각 많이 했어요. 이럴 때가 됐다. 이제 새로운 뭔가를 시도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제2의 영화인생이 시작되려나 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블록버스터급 상업영화를 포기한 건 아닙니다. 그런 작품도 현재 기획중에 있어요.”

사실 이번 영화 <통증>도 곽경택에게는 의외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원안 작가가 따로 있고 시나리오 작가가 별도로 있다. 만화가 강풀의 17페이지 원안을 토대로 한수련 씨가 시나리오를 썼다. 곽경택 감독이 자신의 오리지낼러티가 없는 영화를 찍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그가 꽤나 신축적이고 탄력적이 됐다는 얘기다.“작가들이 만들어 놓은 두 주인공의 설정이 정말 끝내준다고 생각했어요. 통증을 잃은 남자와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자. 내가 쓰지 않았지만 두말없이 이 영화를 선택한 건 그때문입니다.”

추석 연휴 동안 개봉된 <통증>의 흥행성적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아직은 잘 모른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지, 못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감이 서지 않는다. 곽경택 감독도 ‘흥행수치는 늘 염려되지만, 그렇다고 안달복달한다 해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이제 알 만큼 안다’고 말했다. <통증>은 주인공의 육체적 통증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한때 잃어 버렸지만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되찾게 되는 사회적 통증과 그 의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영화다. 근데 그걸 사람들이 얼마나 알아줄까? 이 영화의 흥행 수치는 우리 스스로가 사회적 통증을 올바로 앓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보여주는 잣대가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레몬트리, 영화 ‘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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