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공조-공감, ‘귓속말’이 담는 특별한 멜로 방정식

[엔터미디어=정덕현] 신영주(이보영)와 이동준(이상윤)은 과연 진정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찮다. 조폭들에게 추적당하며 죽을 위기에 처한 이동준과 그를 구하러 온 신영주. 자신을 놔두고 가라며 조폭에게 소리를 내려하는 이동준의 입을 막은 신영주의 입. 그것은 키스였을까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에 불과했던 걸까.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에서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 변화는 이 드라마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거대 로펌 태백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시소게임 속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있을 수 없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같은 편이 되었다가 또 다른 상황을 만나면 적으로 맞서게 되는 게 이 권력 시스템의 적자생존 구조다. 그것은 부모 자식 관계인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과 그 딸인 최수연(박세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그 태백의 권력 시스템 안에서 유일하게 다른 관계를 가진 이들은 강정일(권율)과 최수연이다. 그들은 단순한 이익관계나 살아남기 위한 선택에 의한 관계와는 다른 연인관계다. 어디서 어떤 배신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이 살벌한 시스템 안에서 이런 인간적 관계는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단순한 이익을 위한 선택 그 이상의 선택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는 대립관계로부터 시작했다. 즉 판사시절 소신을 버린 이동준에 의해 신영주의 아버지가 감옥에 가게 되었고, 신영주 역시 형사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신영주는 술 취한 이동준과 하룻밤을 보내고 그것을 영상으로 찍어 그를 협박한다. 대립관계지만 이동준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사면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는 신영주는 그래서 그와 각을 세우면서도 공조하는 입장이 된다.



이동준의 비서로 태백에 들어온 신영주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돕게 되고 또 그녀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두 사람 관계는 조금씩 바뀐다. 이동준이 자신이 판사시절 소신을 버렸던 일을 차츰 후회하게 되고 그래서 단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공조하던 관계를 넘어서 그는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속죄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폐암 3기를 판정받은 신영주 부친의 형 집행정지를 얻어내기 위해 스스로 사지에 들어가는 것. 이 선택은 이익이나 생존과는 상관없는 인간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자 신영주 역시 비슷한 인간적 선택을 하게 된다. 부친의 형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져 이미 자신이 얻을 건 얻은 상황이지만 이동준을 구하기 위해 그 위험한 곳으로 뛰어든 것. 칼에 맞아 피를 흘리는 이동준과 그 상처부위를 손으로 누르며 그를 지지하는 신영주. 그리고 그 순간 신영주가 한 키스는 그래서 단순히 상대방의 입을 막기 위함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신영주와 이동준의 이런 인간적 관계의 바탕이 되는 건 ‘공감’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인정하며 참회하는 이동준은 그녀가 처한 입장을 공감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이동준의 입장을 또한 신영주 역시 공감하고 그 위험에 같이 뛰어든다.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가 대립관계에서 시작해 공조관계 그리고 공감의 관계로까지 바뀌게 되면서 <귓속말>의 로펌 태백에서 벌어지는 권력 시소게임은 더 팽팽한 상황으로 접어들게 됐다. 강정일과 최수연의 관계와 이제 제대로 맞서게 될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귓속말>은 굳이 주인공들 사이에 이런 관계의 변화를 그려 넣으려 했던 걸까. 그것은 물론 그저 치고 받는 권력의 시소게임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들을 함께 잡아내려 하는 것이고, 또한 이 복마전 속에 그래도 인간적인 면을 만들어내는 멜로 관계 같은 걸 집어넣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그보다는 살벌한 생존경쟁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적 관계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내기 위함은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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