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위의 집’, 단순히 귀신들린 집이 아니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시간 위의 집>은 김윤진이 주연을 맡고 <스승의 은혜>를 찍었던 임대웅 감독이 연출을 맡은 하우스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검은 사제들>을 만든 장재현 감독이 베네수엘라 영화 <하우스 오브 디 엔드 타임즈>(2013)를 리메이크하여 극본을 썼는데, 종교적인 색체가 잘 살아있다.

<시간 위의 집>은 ‘귀신들린 집’을 소재로 하는 오컬트 호러물로 출발하지만, 반전을 거치면서 독특한 시공 개념을 품은 고유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영화는 공포영화로서의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유지하면서, 신비한 세계관과 진한 감동을 전하는데 성공한다. 영화의 성공은 김윤진의 호연에 크게 빚지고 있다. 김윤진은 영화를 원톱으로 끌고 나가면서 젊고 평범한 미희와 늙고 반쯤 미쳐있는 미희를 오가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 귀신들린 집?

<시간 위의 집>은 쓰러져 있던 미희(김윤진)가 일어나, 피투성이의 남편과 눈앞에서 사라지는 아들을 목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미희는 남편과 아들을 죽인 혐의로 감옥에서 25년을 보낸 뒤, 후두암에 걸려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흰머리에 쉰 목소리를 지닌 미희는 흡사 마귀할멈 같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누명까지 쓴 미희는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셈인데, 미희에게는 억울함보다 어떤 결연함이 묻어난다.

미희가 끔찍한 사건을 겪었던 집으로 다시 돌아온 까닭은 25년 전 누군가의 손길에 낚아채진 아들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미희의 무죄를 믿는 최신부(옥택연)는 미희를 찾아와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는다. 미희는 횡댕그렁한 집에서 25년 전의 기억을 복기하며, 영화는 미희의 현재와 과거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시간 위의 집>은 25년 전 미희가 집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의 정체를 알기 위해 지관을 부르고 영매와 의식을 벌이는 장면을 보여주며, 공포의 계단을 밟아 오른다. 눈을 감으라는 영매의 말에 따르는 미희의 감각에 관객을 일치시키고자, 영화가 암전을 한 채 소리로만 공포를 느끼게 한다. 이 장면은 공포의 백미인데, 어두운 상태에서 속살거리는 소리로만 느껴지는 존재들이 진정으로 오싹하다. 미희가 공포와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존재들! 그 순간 영화는 공포의 정점을 찍는다.



영화는 단순히 감각적으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귀신이나 악령 같은 존재를 맥락없이 내세워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영화는 미희가 본 존재들이 무엇이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최신부는 수십 년 동안 미희의 집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의 퍼즐을 맞추어나간다. 1940년대부터 25년을 주기로 의문의 실종사건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 최신부는 미희에게 당장 집을 떠나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미희는 아들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집에서 그 시간을 맞고자 한다. 미희가 공포를 견디며 결정적인 시간을 맞는 모습은 팽팽한 긴장과 더불어 기묘한 감흥을 자아낸다. 드디어 차원의 문이 열리면서 알게 되는 진실은 어쩌면 당혹스럽다. 그러나 시간을 한 방향으로 균질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개념으로 본다면 이해가 가능하다. 미희가 겪은 사건을 오묘한 시공의 맞물림에 의해 다시 보는 것은 진귀한 사고 체험을 안긴다.



◆ 독특한 시공 개념

하우스 호러물의 방식을 취하며 관점을 뒤바꾸어 ‘타자성’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영화가 <디 아더스>라면, <시간위의 집>은 하우스 호러물의 장르의 활용하여 미래가 과거의 시간에 틈입하는 다차원적인 세계관을 펼쳐놓는다.

<시간위의 집>이 보여주는 시공 개념은 다소 낯설지만, 완전히 새로운 상상은 아니다. 가령 <터미네이터>에서 미래의 주인공이 과거로 보낸 남자가 주인공의 아버지가 된다거나, <인터스텔라>에서 차원의 벽에 갇힌 주인공이 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이때 과거와 미래는 자기 꼬리에 무는 뱀의 형상으로 맞물려 있다. 이때 시간 속에 놓인 인간들은 일종의 ‘운명’이나 ‘신의 섭리’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터미네이터>의 시간은 신이 주재하는 예정된 운명의 형태로 영화를 관통하고, <인터스텔라>에서 딸은 책장너머의 존재가 던지는 메시지를 신의 암시로 여긴다. <시간위의 집>에서 마치 귀신처럼 보였던 미지의 존재들도 시간을 달리한 채 틈입하고 공존하는 존재임을 생각하면, 무섭다기보다 경이롭다.

요컨대 영화가 취하는 다차원적 시공 개념은 <터미네이터>나 <인터스텔라> 등에서도 보았던 것이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우주적인 스케일의 영화가 아니라, 가장 일상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집에서 벌어지는 차원의 교차가 더욱 경이롭게 느껴진다. 영화의 원작인 <하우스 오브 디 엔드 타임즈>는 남미문학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전통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런데 <하우스 오브 디 엔드 타임즈>와 할리우드 SF 영화들이 공유하는 것은 기실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만물을 주재하는 신의 관점을 상정한다면, 인간이 경험하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거나 교차, 틈입, 간섭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즉 모든 것은 신의 관점에서 예정 조화되어 있으며, 우주는 신의 시간으로 가득 차있다고 보는 것이다.



◆ 일본식 가옥과 가미카쿠시

<하우스 오브 디 엔드 타임즈>를 한국을 배경으로 옮겨오면서, 독특한 색채가 덧입혀진다. <시간 위의 집>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집은 매우 중요하다. 원작에서는 30년을 간격으로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리메이크가 되면서 25년으로 바뀌었는데, 그 결과 ‘1940년대에 일본인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진 외딴집’이라는 출발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왜 영화는 의도적으로 일본풍의 건물과 일제강점기라는 시간을 끌고 들어오는가.

미희의 집은 충남 논산의 채산리에 있는 적산 가옥을 캐스팅 한 것이다. 일본식 목조 건물이 뿜어내는 고풍스러움과 이국적인 느낌이 상당하다. 또한 집에 사는 의문의 존재들이 입은 일본식 복색과 어우러져 더 큰 이질감과 음산함을 자아낸다.

영화의 일본식 분위기는 단지 시각적인 장치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일본의 전통 민담에 등장하는 가미카쿠시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가미카쿠시는 일본어로 ‘행방불명’을 뜻하는 말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행방불명’이 원어로 가미카쿠시(神隱 : 신은)이다. 초자연적 존재(神:가미)에 의한 숨겨짐(隱:카쿠시)이란 뜻으로, 단순한 잠적이 아닌 원인불명의 실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흔히 아이들이나 젊은 여성이 감쪽같이 사라졌을 때 신이 감추었거나 ‘신들의 영역’으로 간 것으로 믿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너의 이름은.> 등에서 주인공이 경계 너머의 세계로 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곳에서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거나 꼬여있다. 일본 콘텐츠들 중에는 이런 모티브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꽤 많다. 일상의 시공간에 신들의 시공간이 맞닿아 있거나 겹쳐있으면서, 차원의 경계를 넘어서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서사가 전개되는 것이다.

<시간 위의 집>은 베네수엘라 영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일본 민담 속 가미카쿠시의 느낌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영화가 적극적으로 차용한 일본식 건물과 옷차림 등 시각적 이미지가 가미카쿠시의 개념을 더욱 강하게 끌어들인다. 감독이 이를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940년대 소작쟁의에 의해 지하실에 숨은 일본인의 실종’에서 비롯되는 신비한 이야기는 매우 그럴듯한 문화적 맥락을 획득한다.

이것은 분명한 성공인데, 일상의 공간에서 시간의 틈새를 유영하는 판타지를 풀어보려 했던 또 다른 영화 <가려진 시간>과 비교하면 그 성공이 더욱 뚜렷하다. <가려진 시간>은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소아성애적 멜로에 한눈을 팔게 하면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실패한 반면, <시간 위의 집>은 장르에 충실하게 긴장과 공포를 자아내면서 독특한 시공개념을 정합적이고 감각적으로 납득시킨다. 놀이동산 ‘귀신의 집’이 아닌, ‘다차원 시공 체험의 집’을 즐기며, 먹먹한 모성애도 느껴보시길.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시간 위의 집>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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