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순’의 마무리가 개운치 못한 까닭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힘쎈 여자 도봉순>(도봉순)의 마지막은 모두가 행복한 완벽한 해피엔딩이었다. 연쇄 납치범이자 살인마인 김장현(장미관)은 붙잡혔고, 도봉순(박보영)과 안민혁(박형식)은 임국두(지수)와의 삼각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한 다음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쌍둥이 딸까지 낳으며 행복으로 꽉 찬 닫힌 결말로 마무리됐다. 드라마 밖에서도 행복은 흘러넘쳤다. 첫 회 시청률부터 제작발표회 당시 내걸었던 시청률 공약 3퍼센트를 가볍게 뛰어넘더니 결국 3배가 넘는 9퍼센트대로 마무리됐다. 덕분에 제작진은 발리로의 포상휴가를 떠나게 됐고, JTBC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드라마국은 5년 만에 처음으로 체면을 세웠다.

주요 배우들이 느낄 기쁨도 크다. 박보영은 캐릭터 한계에 대한 의구심을 한방에 날렸다. 그리고 로코퀸이란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몇 단계는 더 높였다. 파트너 박형식은 이 드라마를 통해 차세대 남자 주인공 대열에 합류할 자격을 얻게 됐다. 최근 연기자 전문 소속사로 둥지를 옮기는 등 활발한 연기 활동을 위한 준비도 마쳤다. 사실상 후반부를 책임진 김원해는 최대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그는 <김과장>부터 <도봉순>까지 이어지는 신들린 코믹연기 퍼레이드를 통해 가장 핫한 신스틸러로 우뚝 섰다. 특히 대부분의 신스틸러급 조연들이 특유의 캐릭터로만 웃음을 유발하는 것과 달리 비슷한 시기에 각기 다른 세 가지 캐릭터를 맛깔나게 보여주면서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냈다.



그런데 드물겠지만 몇몇 행복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 이 드라마가 가졌던 실험정신과 시대정신에 흥미를 느꼈던 시청자들이다. <도봉순>은 귀엽고 사랑스런 박보영의 애교를 내세운 로코물인 동시에 여성이 주인공인 히어로물이었다. 한마디로 익숙한 듯 신선했다. 구도자체는 수학 공식 수준인 삼각관계를 동반한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데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그 속에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 즉, 정의 구현, 청년 실업, 페미니즘 의식 등이 촘촘히 깔려 있었다. 또한 장르적으로도 연쇄 납치와 안민혁의 비밀스런 가정사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스릴러 설정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겉보기에는 외모도 집안도 학력도 별 볼 일 없는 고졸 여성이 히어로가 되어 자신의 쓰임과 자존과 사랑을 찾아간다는 설정은 현실적인 공감과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제공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중반 이후, 긴장과 기대는 모든 전선에서 무너졌다. 시청자들이 연쇄 납치범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데 별반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서 스릴러의 긴장은 일찌감치 증발됐다. 게다가 일방적인 게임이었다. 김장현은 세 주인공을 혼자 상대하기에 능력과 처지가 너무 부족하고 외로운 악당이었다. 연쇄 납치의 실마리라거나 무언가 큰 틀에서 줄거리와 연결고리가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안민혁 협박 관련 스토리라인은 정작 주인공들의 노력과 무관하게 알아서 해결됐다. 러브라인도 그렇다. 삼각관계는 균형이 맞아야 감칠맛이 나는 법인데,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첫사랑과 갑자기 등장한 백마 탄 왕자 사이에서의 갈등의 승부가 너무 쉽게 빠르게 결정됐다.



그후 드라마는 박형식과 박보영의 러브라인에 집중했다. 재벌가의 복잡한 암투극과 도봉동의 연쇄 사이코패스 납치 사건이란 스릴러 코드가 코믹 발랄한 러브라인 옆에 흐르는 기묘한 드라마인 줄 알았지만 포장지만 요란했을 뿐, 박보영에 의한 박보영을 위한 드라마였다. 이 과정에서 여성 히어로 도봉순을 내세우면서 기존의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포부는 로코물의 클리쉐와 달달함에 녹아버렸다. 결과적으로 행복하다고 보여준 그림은 재벌이자 직장 상사(대표)인 남자가 베푸는 사랑으로 인한 특혜로 회사 생활을 하다 그에게 시집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박보영과 박형식의 매력이다. 기존에 준비된 줄거리가 일찌감치 무너지면서 생긴 듬성듬성한 빈 공간은 이 계절에 어울리는 사랑스런 커플의 ‘꽁냥꽁냥’ 데이트 하는 장면과 조연들의 코믹 연기로 매웠다. 사족이나 다를 바 없었던 최종회는 청혼에서 결혼, 육아로 이어지는 주연 커플의 연애 이야기였다. 도플갱어로 분해 분량을 대폭 확대한 김원해와 다소 무리하게 등장한 권혁수 등 조연들은 극의 진행과는 별 상관없는 별책부록 같은 무대를 펼치며 시청자들을 즐겁게 했다.

결국 새로운 여성 캐릭터, 새로운 로코물의 탄생이라기보다 실험의 실패에 가깝다. 박보영의 힘과 로코물이 갖는 대중성 등 기존에 인정받은 공식을 재확인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도봉순>의 마지막 회를 지켜보면서 그들의 행복과 성공에 함께 박수를 보내면서도 조금은 개운치 못한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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