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 우리에게도 맥스 같은 편집자가 있는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사실 안타깝게도 문학의 시대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다. 그러니 영화 <지니어스>에 등장하는 천재적인 소설가 토마스 울프의 소설 구절구절들이 우리네 관객에게 어떤 울림을 주기는 쉽지 않다. 물론 <동주>의 윤동주처럼 우리 관객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이라면 또 모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름은 알아도 그 소설은 낯설기 이를 데 없는 토마스 울프가 아닌가. 삶에 대한 상징들로 가득 채워져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져버리는 그 순간을 무려 몇 십 장에 걸쳐 묘사해내는 토마스 울프의 넘쳐흐르는 문학성은 지금의 대중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로 그런 낯선 정경과 정서가 주는 기묘한 느낌 같은 것이 <지니어스>에는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 점점 구술시대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그 묘미를 버리고 있는 문자의 마술 같은 것이다. 의미는 모호하지만 단어와 단어의 이질적인 조합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감흥 같은 것이 <지니어스>에는 전편에 흐른다. 그것은 1929년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시간적 공간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그 정도의 시간을 되돌려야 문학이라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나.



영화 <지니어스>는 토마스 울프(주드 로)라는 천재와 그는 물론이고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전설들을 대중들 앞에 발굴해낸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라는 또 다른 천재 사이에 벌어진 실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천재를 알아보는 천재의 이야기. 그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 교감해가며 그것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우리가 최종적으로 접하는 명작이 그저 한 천재에 의해 우발적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제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그 가치와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전하기 위해 아낌없는 헌신을 다하는 맥스 같은 또 다른 천재가 없다면 그 천재가 꽃을 피우지 못할 거라는 것.

마치 속 안에 써내지 않으면 폭발해버릴 것처럼 끝없이 쉬지 않고 글을 써내는 토마스 울프. 맥스는 무려 5천쪽에 달하는 그 글들을 울프와 함께 정제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갈등이 생긴다. 맥스는 결국 편집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울프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난도질을 당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울프는 맥스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기꺼이 그 편집을 허용한다. 한편 맥스 역시 늘 작품은 작가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때때로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두 사람은 마치 불과 물 같은 서로 다른 성향을 보인다. 울프가 불처럼 천재성을 마구 뽑아내는 인물이라면 맥스는 물처럼 차분하게 아무 곳으로나 뻗어나가는 불길에 물길로 균형을 맞춘다. 완전히 다를 것 같지만 어떤 소통을 통해 합일점이 가능하다는 걸 영화는 두 사람이 재즈바에 음악을 듣는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재즈에는 관심이 없는 맥스가 재즈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곡을 선곡하지만 그 곡이 변주를 통해 재즈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맥스와 울프는 한 마음으로 음악을 즐기게 된다.

<지니어스>가 특히 주목하는 건 맥스라는 편집자다. 영화의 첫 장면이 비 내리는 뉴욕 거리 한 귀퉁이에 비를 쫄딱 맞고 자신의 원고가 출판될지 안 될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토마스 울프의 발에서 시작하는 건 이런 영화의 주목점에 대한 암시다. 낮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이는 수없이 많은 발들 속에 토마스 울프의 발을 잡아내는 일. 영화는 자주 많은 뉴요커들이 쏟아져 나온 거리 속에서 맥스와 토마스 울프가 서로를 발견하는 장면을 반복해 집어넣는다. 천재를 찾아내고 그 천재성을 제대로 끌어내게 하기 위해 헌신하는 편집자 맥스라는 존재의 위대함.



많은 이들이 작품은 온전히 예술가의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혹은 1920년대의 뉴욕이나 2017년의 한국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예술가 뒤편에서 책이 대중들 앞에 도달할 때까지 헌신하는 편집자라는 존재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이국적인 영화가 우리에게도 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

우리에게는 과연 맥스 같은 편집자가 있는가.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작가가 쓴 것인지 아니면 편집자가 쓴 것인지 알 수 없는 책들이 나오는 건 우리네 출판가에 그리 낯선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그것 역시 편집자의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자칫 상업적인 선택들에 의해 책이 난자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맥스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경계했던 것. 작품은 결국 작가의 것이어야 한다는 그 질문에 담긴 고민은 그래서 지금의 편집자들에게 적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지니어스>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