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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발광’ 고아성, 무채색 연기가 이렇게 설득력 있다니
기사입력 :[ 2017-04-18 16:18 ]


동화 같은 도봉순은 해피엔딩, 현실 같은 은호원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가상의 도봉구 도봉동에 사는 20대 여성 도봉순(박보영)은 힘이 세다. 체구가 작고 귀여운 그녀를 만만하게 보는 불량배나 양아치들은 모두 한방에 나가떨어진다. 하지만 도봉순은 대대로 내려오는 이 괴력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짝사랑하는 남자 국두(지수)에게 혹시나 그 힘이 들킬까 노심초사 걱정이 많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날 무렵 도봉순은 여전히 괴력을 지닌 소녀지만 왕자님 같은 CEO 안민혁(박형식)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 왕자님인 민혁은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곱고 힘도 센 도봉순을 너무나 사랑하니까.

달달한 용두사미의 플롯을 지닌 JTBC 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은 당연히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동화가 아닌 현실에 보다 가까운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의 여주인공 은호원(고아성)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같은 20대지만 힘쎈 여자 도봉순과 달리 기죽은 여자 은호원은 차라리 힘이라도 세기를 바랄지 모르겠다. 그녀는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힘없는 젊음을 지닌 여주인공이니 말이다. 그녀는 대학시절 내내 학점관리에 아르바이트까지 해내면서 미래를 준비한다. 더구나 그녀는 ‘문송’, 문과라서 죄송한 국문과 학생이어서 공대, 경영대 강의까지 듣는다. 하지만 졸업이후에는 아흔아홉 번 면접에 탈락하는 내내 여러 알바를 전전하면서 겨우 깨금발을 들려 애쓴다. 바로 한 칸 위의 조금 더 나은 평범한 삶으로 어떻게든 올라서려는 깨금발. 물론 그녀의 노력은 면접관 서우진(하석진)에게 시시한 것으로 취급받을 따름이다.



“학점만 좋네요. 열심히를 4년만 일찍 했으면 출신학교가 달라졌을 테고, 열심히를 학점 말고 딴 데서도 했으면 이력이 달라졌을 텐데.” (서우진)

<자체발광 오피스>는 여주인공 은호원이 가구회사 하우라인의 대졸 계약직 직원으로 입사해 겪는 사건들을 다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3개월 계약직인 은호원은 자신이 어쩌면 3개월 시한부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병원에서 우연히 엿듣는다. 직장인으로도 시한부, 진짜 인생에서도 시한부일지 모르는 여주인공인 것이다.

드라마는 자신의 삶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은호원의 좌절을 처참하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 여주인공이 점점 당당해지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허나 기본적으로 코믹한 오피스물인 <자체발광 오피스>는 이 은호원이 쓸쓸히 내뱉는 한숨과 눈물조차 쉽게 배지 않는 울먹한 표정 때문에 뭔가 보는 이를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 은호원의 인간적인 매력을 서서히 알게 된 서우진과의 꽃길 데이트 장면이 그러하다. 하우라인의 봉사활동으로 광양으로 내려간 은호원은 그곳에서 서우진과 매화가 핀 꽃길을 함께 걷는다. 활짝 핀 매화꽃에 감탄하던 은호원은 매화나무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부럽다. 이렇게 예쁘게 피어봐서.”(은호원)

이런 은호원의 모습들이 드라마에서 현실감 있게 그려지는 데는 배우 고아성의 연기도 한 몫 한다. 고아성은 은호원의 슬픔이나 기쁨을 드라마틱하게 포장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극 초반에는 왜 이렇게 여주인공의 극한 감정을 무채색으로 연기할까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감정을 겉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은호원의 성격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더불어 고아성은 평범한 인물인 은호원이 지닐 법한 미묘한 말투나 표정을 잘 그려낸다. 특히 내성적인 성격의 이십대 여성이 사회생활을 위해 작위적으로 드러내는 비굴하게 귀여운 말투나 표정 같은 것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반대로 포장된 목소리가 아닌 진짜 감정이나 목소리가 나올 때의 말투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내는 영리함이 있다. 인물이 지닌 사회적 페르소나와 진짜 얼굴의 간극을 이해하고 각기 다르게 보여주는 셈이다.

진솔함은 느껴지지만 색다르진 않은 <자체발광 오피스>가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가 빛이 나는 데는 이런 고아성의 영리한 연기에 기댄 바가 크다. 그런 까닭에 <자체발광 오피스> 속 은호원의 감정에 공감하며 그녀에게 진정한 해피엔딩이 있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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