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쥐고 뱃고동’의 항해가 어려운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김병만은 백종원과 함께 존재 자체가 예능 콘텐츠화 되는 유이한 인물이다. SBS 예능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을 장수 대형 예능으로 이끈 족장 역할은 김병만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실전에서도 ‘달인 개그’에서 보여준 신체적 능력과 다부진 몸놀림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그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이제 김병만에게 웃음을 기대하는 시청자는 없다. 대신 그가 또 얼마나 놀라운 도전을 감행해 완수해낼 것인지, 몸으로 하는 온갖 ‘노동’과 ‘운동’에 특화된 그의 능력은 어디까지인지 지켜보며 재미를 찾는다.

이국적인 풍광 속에서 문명사회의 생활 법칙이 아닌 맨몸으로 모든 걸 새롭게 일궈가는 그의 놀라운 생존 능력은 캠핑 열풍과 맞물리며 일상을 벗어나고픈 로망을 자아냈다. 또한, 집을 짓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크래프트 정신을 자극했다. 이처럼 손으로 하는 일, 몸으로 느끼는 육체적 활동이 다시금 조명 받게 된 시대적 흐름과 그의 장기가 맞물리며 색다른 볼거리와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라는 김병만 표 예능이 완성됐다. 같은 패턴의 반복과 리얼리티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김병만식 예능이 계속해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다.



SBS 예능 <주먹 쥐고 뱃고동>도 마찬가지다. <자산어보>를 비롯해 장황한 의미부여가 있지만 요는 김병만이 조업이란 새로운 노동에 도전하는 거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정규 편성된 <주먹 쥐고 뱃고동>은 명절 파일럿으로 등장했던 <주먹 쥐고> 시리즈가 아니라 <정글의 법칙>에 훨씬 더 가깝다. 조업의 완수라는 큰 미션이 있다. 배를 타고 고되지만 보람찬 조업활동을 하고, 거기서 얻은 달콤한 수확물로 쿡방과 먹방을 갖는다. 함께 촬영하는 멤버들과는 김병만을 꼭짓점으로 삼은 안정적인 트리형 가족관계도를 구성한다. 홍일점으로 참여한 경수진은 ‘정글 여신’들이 모두 그러했듯 여자 연예인이란 선입견을 깨고, 민낯 공개는 아무렇지 않도록 털털하고 맡은 일에는 투정 없이 열심히 한다.

설정, 구도, 캐스팅까지 이른바 국내판 <정글의 법칙>인데, 문제는 모든 면에서 <정글의 법칙>보다 매력이 심하게 떨어진다. 우선 볼거리가 매력적이지 않다. 김병만 콘텐츠는 일단 호객할 수 있는 후크가 필요하다. <정글의 법칙>의 경우 그것이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로망은 여기서부터 싹텄다. 그런데 연안 조업만으로는 김병만 콘텐츠의 핵심인 볼거리 창출이 어렵다. 설렘 가득한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정글과 달리 연안 어업은 그리 특별한 방송용 볼거리가 아니다. <극한직업> 류의 다큐는 물론 우리 식문화나 지역 문화 관련 다큐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그림이고, 6시대 정보프로그램에서는 거의 매일 등장하는 장면들이다. 싱싱한 해산물로 끓인 라면부터 근사한 제철 지역 음식상까지 차려내 먹는 먹방은 리포터들의 전매특허 분야다.



안 그래도 볼거리의 매력이 낮은데 노동과 예능적 장치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정글의 법칙>에서 펼쳐지는 모든 이야기는 생존을 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나 <주먹 쥐고 뱃고동>은 순전히 프로그램을 위해 뱃일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조업 현장에 깍두기처럼 투입되는 조건이다. 따라서 조업을 돕는 상황에서 자기들만의 미션에 몰두한다든가 리얼 버라이어티의 핵심인 캐릭터들의 관계를 집중하는 촬영 환경을 갖추기 어렵다. 함께 무언가를 완수하며 성장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내기에 제약이 많다. 그 때문에 방송은 극한 노동이 중심이 되어야 함에도 쿡방과 먹방과 복불복 퀴즈쇼 등으로 파편화된 볼거리를 따로 따로 나열한다. 이를 엮어주는 것이 <자산어보>지만 시청자들을 설득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연결고리다.

볼거리와 예능적 장치의 불완전함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주먹쥐고 뱃고동>에는 김병만 콘텐츠에 있어야 할 로망이 모호하다. 뱃일을 로망으로 삼을 사람도 적을 것이고, 노동의 보람을 <자산어보>와 연결시키는 점은 시청자 입장에서 받아들이기에 거리가 멀다. 볼거리도 밋밋한데, 노동의 보람을 시청자들의 로망과 연결할 길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흡입력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콘셉트가 시청자 입장에선 매력적이지도 않고, 김병만의 콘텐츠에 어울리지도 않는다.



역시나 반응은 바닷바람처럼 차다. 주말 프라임타임에 편성됐음에도 4%대의 낮은 시청률로 시작해, 한 주 만에 3%대로 내려가며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관련 이슈가 전무하고 습관적으로 TV를 켜는 주말 오후 타임에 이 정도 수치가 나왔다는 점은, 사실 이 글을 볼 사람조차 거의 없을 거란 우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김병만표 예능의 겉모습만 가져온 결과다. 김병만표 예능은 경이로운 퍼포먼스가 전부가 아니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로망을 자극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그런데 아쉽게도 항해를 시작한 <주먹 쥐고 뱃고동>에 이 로망은 실려 있지 않은 듯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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