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타자기’, 문단의 아이돌 소설가가 비현실적인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의 주인공은 유명 소설가 한세주(유아인)다. 저작권 황제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한세주의 저택에는 사슴들이 여유로이 노닌다. 그런데 사슴을 보는 순간 남녀주인공인 소설가와 열혈팬이 치고받는 이야기에는 잘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건 꼭 이 드라마의 전개가 사건 위주가 아닌 느릿느릿한 입 전개로 이어져서만은 아니다. 신선하게 포장하려 애쓴 독특한 상황들이 히트한 작품들의 익숙한 코드라서 따분하게 다가와서만도 아니다.

자꾸만 <시카고 타자기> 속 상황보다 엉뚱하게 사슴과 소설가에만 더 관심이 쏠려서다. 넓은 저택에서 애완용으로 사슴을 기를 수 있는 한국의 소설가가 있을까? 텃밭에서 상추 정도 기를 수 있는 소설가야 많겠지만 마당에서 사슴까지는 좀 무리 아닌가?

더구나 한세주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광팬과 파파라치까지 등장하는 순간에 이르면 <시카고 타자기> 속 나라는 같은 역사와 같은 언어를 쓰는 나라지만 내가 사는 땅이 아닌 거다. 문단의 아이돌이 케이팝 아이돌에 맞먹는 인지도를 갖춘 코리아라니. 나름 현실 속 문단 아이돌로 여겨지는 정지돈, 오한기, 이상우를 생각하면 더더욱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들의 소설이 아무리 스타일리시해도 후장사실주의자인 그들에게 수많은 독자들이 “후장!” “후장!” 외치며 열광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힘든 광경이다.



물론 과거 한국문학사를 되짚어보면 대중들의 열광적인 관심을 오롯이 받은 소설가들도 있기는 하다. 대표적으로 백여 년 전 춘원 이광수는 장편소설 <무정>으로 문맹률 구십 퍼센트가 넘는 나라에서 1만부의 책이 팔리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시절의 이광수는 잡지에 집이 소개되고, 그의 남녀상열지사까지 대중의 관심대상이었다.

하지만 당시 문단의 아이돌인 춘원 이광수와 지금의 젊은 소설가들의 삶에서 공통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공통점이라면 국내소설 1만부의 판매량이 지금도 쉽지 않다는 점 정도다. 이제 문맹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경성부의 인구가 25만이었던 때와 달리 서울의 인구가 1천만에 가까워졌는데도 말이다.

그런 까닭에 일제 시절 전생이 아닌 지금 현재의 소설가 한세주는 드라마 속 변호사나 의사, 검사, 판사와는 달리 보인다. 드라마 속의 다른 직업들만큼 과장되어 있으나 더 공허하다. 다른 직업군들이 아무리 과장되었다 한들 드라마 내에서 희미한 리얼리티의 그림자는 남아 있다. 예를 들어 검사는 타락한 개라거나, 의사는 수술의 성공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존재라거나, 재벌2세쯤은 당연히 어이가 없는 놈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하지만 소설가인 한세주에게서 현실에서 드리워졌을 법한 희미한 그림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작가는 머리뿐 아니라 손, 발, 엉덩이로 글을 씁니다.” (한세주)

그의 입으로 내뱉은 대사는 물론 현실의 소설가들도 늘 하는 말이다. 방탄소년단이 <피, 땀, 눈물>을 부르는 동안 많은 한국의 소설가들은 <손, 발, 엉덩이>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지금 어딘가에서 기민하게 움직이는 한국의 소설가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쓰고 있는지 관심이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핫한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카고 타자기> 또한 마찬가지다. 한세주는 당연히 현실의 소설가가 아니다. 그는 기나긴 시간 동안 통용되어온 얄팍한 예술가의 신화에 기대 유령처럼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렇기에 한세주는 비현실적이면서도 묘하게 어디서 본 듯한 식상함이 느껴진다. 대중들의 머릿속에 익히 그려진 잘나가지만 괴짜인 예술가의 틀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는 천재적이다. 그는 괴팍하다. 그는 까탈스럽다. 그는 잘생겼다. 그는 지극히 섬세한 취향을 가졌다. 그는 거의 신에 가까운 집중력과 창조력으로 쓰고 또 쓴다. 그렇게 한세주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소설을 써내 전 세계 각국의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딘지 19세기 영국의 걸작을 대표하는 찰스 디킨스와 19세기 영국의 댄디즘을 대표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짜깁기 같은 조합이지만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무언가 붕 떠 있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 <시카고>만 봐서는 한세주가 어떤 독창성을 지닌 소설가인지 짐작조차 힘들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철학자를 좋아하고, 삶 속의 어떤 충돌들이 그를 소설가로 만들었는지 알 도리가 없어서다. 또한 그가 쓰는 소설의 어떤 면이 독자를 사로잡았는지도 짐작하기 힘들다. 더구나 최고의 작가인 한세주가 라이벌 소설가 백태민(곽시양)에게 충고해주는 말은 고작 이런 정도다.

“미용실 들락거릴 시간에 나처럼 글 써. 미친 듯이.” (한세주)

그러고서 그는 왁스로 세팅한 백태민의 헤어스타일을 가리키며 자신의 빡빡머리가 얼마나 글을 쓰는 데 유용한지 일장 연설을 한다. 심지어 백태민은 한세주의 충고에 고개를 푹 숙이며 왁스로 공들여 세팅한 헤어스타일을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현실의 소설가 중에서 미친 듯이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사실 화성학적으로 웅장하게 미치면 모를까 얄팍하고 단순하게 미치면 궁극적으로 논리적 거짓말의 세계인 소설을 쓰기도 힘들다). 당연히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위해 머리를 밀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의 젊은 소설가들은 질서정연하고 평온해 보이는 세계가 미쳤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무언가를 쓰는 것 같다. 진지하거나, 비웃거나, 다독이거나, 스스로를 허물어뜨리면서. 그게 밥은 안 되지만, 어쩌면 사슴은 될 수 있는 작업인지도 모르니까. 돈으로 산 사슴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뛰어노는 그런 사슴.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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