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배틀·YOLO. 여행 예능을 정의하는 각양각색의 키워드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여행 프로그램들이 뜨고 있다. 심심한 문장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전통의 강자인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부터 tvN의 <꽃보다> 프랜차이즈, JTBC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불러온 여행 프로그램의 바람이 점점 더 세분화되고 다변화되어 불고 있는 것이다. 인구의 9할이 도시 생활자가 된 오늘날, 도시의 삶을 떠나 뭐라도 새로운 곳에서 일상이 아닌 것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이 자꾸만 먼 나라의 풍광이나 자연의 모습을 TV 화면 속으로 호출하는 것이다.

TV삼분지계 또한 마감에 묶여 훌쩍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여행 예능 프로그램들을 리뷰해 보았다. 김선영 평론가는 패키지 여행의 한계를 역이용하는 JTBC <뭉쳐야 뜬다>를, 정석희 평론가는 방송 1주년을 맞은 KBS2 <배틀 트립>을, 이승한 평론가는 이제 막 첫 발을 뗀 OtvN의 ‘YOLO’ 콘셉트 여행 예능 <주말엔 숲으로>를 리뷰했다. 아, 우리도 떠나고 싶다!



◆ <뭉쳐야 뜬다> ‘또!’ 아재들의 여행인데 왜 거부감이 덜할까?

“여행프로 너무 많지 않아?”, “색다른 걸 해야 돼”, “남자들만의 힐링 여행이 필요해.” <뭉쳐야 뜬다>에서 첫 여행에 앞서 출연자들이 나눈 대화는 이 프로그램에 선뜻 눈길이 가지 않았던 이유를 정확히 짚어준다. 가뜩이나 여행예능 홍수시대에, ‘40대 가장들’의 힐링을 표방한 또 하나의 ‘아재예능’이라니, 이보다 더 식상할 수 없는 조합이다. 아니나 다를까, 첫 회부터 김용만의 복귀를 중심에 놓고 그의 과거사를 농담거리로 만드는 장면은 아재예능의 대표주자 JTBC <아는 형님>의 주된 유머코드를 떠올리게 했고 ‘옛날식 진행’을 놀리는 장면은 여행예능 <신서유기> 시즌1의 ‘강호동몰이’를 연상시켰다. 이 진부한 조합에 ‘색다름’을 주기 위한 전략으로 내세운 패키지여행 콘셉트도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첫 회에서 꽉 차인 일정을 소화하며 볼거리를 담아내기에 바빴던 화면은 ‘사진만 찍고’ 이동하는 패키지여행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지만 <뭉쳐야 뜬다>의 재미는 ‘아재’ 출연진이 이 패키지여행의 한계를 역이용하면서부터 살아나기 시작한다. 가령 기존 ‘아재예능’이 가장 불편했던 지점, 즉 목소리 큰 중년 남성들이 이야기를 주도하고 독점하는 꼰대식 진행 스타일은, ‘단체 여행의 일원’이 되어 ‘대장’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프로그램 안에서 더는 통하지 않는다. 멤버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가이드의 안내를 귀담아 들으며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거나 가이드의 예능감에 감탄하는 ‘리액션’ 역할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색다른 재미가 발견된다. 싱가포르 여행 때 화려한 헤나 기술 앞에서 연신 예쁘다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정신을 뺏기는 모습이나 스위스에서 자신들끼리 추억의 마니또 게임을 하며 수줍어하는 모습 등은 ‘아재예능’의 유해성을 경계하던 이들에게도 마음의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장면들이다. 차태현이 출연한 최근 방송에 대한 호평은 이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셀카캠의 자기중심적 앵글을 풀샷으로 확대해 주변인과 어우러졌던 차태현처럼, <뭉쳐야 뜬다> 역시 아재 중심의 화법을 벗어나 새로운 풍경을 발굴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배틀 트립’, 김숙이 보여준 공감과 소통

맛 프로그램은 모름지기 보는 순간 먹으러 가고 싶어야 성공이겠고 여행 프로그램은 당장 떠나고 싶어야 성공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배틀 트립>이 1주년 기념으로 기획한 진행자 김숙의 제주도 편은 소장가치가 있는 성공작이었다. 먹으러 가고 싶고 떠나고 싶은 마음은 기본이고 평소와 달리 홀로 떠난 조촐한 여행임에도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으니까. 지금껏 혼자 나서 본 일이 없는 나조차 방송 직후 항공편을 검색해봤으니 두 말하면 잔소리가 아닐는지. 두서넛이 함께 하는 기존 일정이 남의 여행을 구경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김숙과 시청자가 함께 떠난 느낌이었다. 공감과 소통이 존재한 김숙의 승리로 MC 대결이 마무리 되었는데 연륜과 경험에서 앞선 결과이지 싶다. <배틀 트립>이 지향해야 옳을 롤모델이기도 하고.



40년 전통의 제주 보리빵, SNS를 통해 경관이 좋은 해안가 도로에 위치한 푸드 트럭 찾기, 바다가 예쁜 카페에서의 차와 디저트. 전통과 트렌드가 두루 어우러진, 혼자만의 여행에 적절한 선정이었다. 아무리 호가 난 맛집이라고 해도 복닥거리는 인파들 사이의 혼밥은 민망함을 넘어 민폐 상황이 아니겠나. 교통과 숙박을 제외한 비용이 43,500원이라 한다. 저가 항공 이용과 경차를 빌린 당일치기 일정이라면 10만원 안쪽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햇살이 좋은 오늘, 떠나볼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주말엔 숲으로>, 조금 더 천천히 걸어도 좋다

YOLO(You Only Live Once) 트렌드와 슬로우 라이프에 대한 비전을 담아 만든 <주말엔 숲으로>는 첫 몇 회만 해도 기실 YOLO와 슬로우 라이프와는 큰 연이 없어 보였다. 제작진의 태도가 제주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들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기 보다는 제주의 풍광이 얼마나 절경인지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는 게 급해보였기 때문이다. 예능에 임하는 의욕이 늘 충만한 주상욱이나, 아직 예능에서 인상적인 활약상을 남기지 못한 손동운은 ‘힐링’에도 ‘전투적으로’ 임하는 태도를 보였다. 보통의 예능이라면 더 없이 바람직한 모습이었겠지만,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삶을 떠나 주말만이라도 한 템포 쉼표를 찍자는 프로그램의 취지와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분히 바빠 보였던 발걸음은 3회에 등장한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 ‘비’씨와의 대화에서 비로소 그 템포를 늦춘다. 게스트하우스 소개 정도를 마치고는 훌쩍 나가며 알아서들 쉬시라고 자리를 비워버린 비씨의 자유방임 덕에, 할 일 없이 붕 떠버린 세 사람이 마침내 한가하게 시간을 죽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또한 이미 부를 어느 정도 축적한 상태에서 제주에서의 삶을 선택했던 첫 번째 출연자와 달리, 제주에서의 정착 또한 쉽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며 다른 건 삶의 조건이 아니라 삶의 태도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해준 비씨의 존재는 프로그램이 빠질 수 있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위화감을 많이 완화해줬다. 비씨가 아닌 다른 ‘YOLO족’과 함께 해도 앞으로도 이렇게 천천히, 충분히 고민하며 걸을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프로그램이 어떤 속도로 걷고 싶은지 명확하게 하는 게 급선무인 듯 하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JTBC, KBS, O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