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말’ 본래 하려던 이야기는 왜 잘 보이지 않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애초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이 하려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애초에 이동준(이상윤)이 무시했던 힘없는 서민들의 그 낮은 목소리가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신영주(이보영)가 억울하게 살인죄를 뒤집어쓴 아버지가 무고하다는 걸 입증할 수 있는 그 증거자료를 가져왔을 때, 그것을 파기하지 않고 증거로 사용해 공명정대하게 판결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거대 로펌 태백에 들어온 이동준은 그 끝없는 권력다툼의 복마전 속에서 그런 후회 섞인 한탄을 한다. 그 때의 귓속말에 귀 기울였다면...

하지만 이러한 <귓속말>이 본래 하려던 이야기는, 끝없이 치고받는 상황들 속에서 점점 흐릿해져간다. 오히려 상대방의 귀에다 슬쩍 갖다 대고 그를 조롱하거나 약을 올리는 귓속말들이 대신 이 드라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동준은 송태곤(김형묵)에게 귓속말로 협박을 하고, 강정일(권율)은 과거 연인이었지만 이제는 원수지간이 된 최수연(박세영)에게 귓속말로 분노에 가득한 속내를 드러낸다.

사건 전개는 거의 LTE급이다. 보국산업의 강유택(김홍파) 회장이 태백의 대표인 최일환(김갑수)을 궁지로 몰자, 최일환은 오히려 강유택을 살해하고, 송태곤은 신영주의 차에 강유택의 시신을 옮겨 실음으로써 그녀에게 살인자 누명을 씌운다.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 이동준은 그 차를 찍었을 일반인 차량의 블랙박스를 찾으려 하지만 그 영상은 강정일의 손에 들어가고, 그것이 신영주의 누명을 풀 수 있는 증거자료라는 걸 확인한 후 강정일은 신영주의 아버지를 찾아가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살인을 딸을 위해 뒤집어쓰라고 거래를 제안한다.



<귓속말>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쉴 틈이 없다. 어느 정도 상대방이 궁지에 몰려 더 이상 빠져나갈 곳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뒷통수를 치는 반전에 의해 대신 이 쪽이 위기상황에 몰리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반전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여지없이 승기를 잡은 쪽이 상대방의 귀에 대해 협박성 ‘귓속말’을 던지는 장면이 들어간다.

물론 이런 반전의 반전과, 순간이지만 상황을 뒤집어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 전개가 예상을 계속 깨며 이어진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 반전의 반전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게 되면 흥미보다는 너무 복잡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나중에는 누가 누구를 어떤 방법으로 제압했는가 하는 과정들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고 대신 결과만 보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게다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신영주의 상황은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 그녀가 제 몸을 던져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태백에 들어와서 무엇을 얻었는가를 떠올려보라. 결국 아버지는 위기에 처한 딸을 위해 하지도 않은 살인을 인정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 않았는가. 아버지 앞에서 오열하는 신영주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아버지 살아생전 무고를 입증하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그 뜻은 물 건너가 버렸다.

물론 <귓속말>이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진 싸움을 보여주는 이유는 있다. 권력의 쟁투라는 것이 결국 영원한 아군도 적도 없는 복마전이고, 거기서는 진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것이 진실이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청자들 입장에서 너무 복잡하고 너무 답답한 상황은 자칫 그 복마전의 흥미로움까지 상쇄시킬 수 있을 게다. 이제 끝없이 상대방의 귀에 대고 조롱하는 귓속말에 빠져들 것이 아니라, 진짜 하려던 그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서 진실이 이기는, 그 본래 하려던 이야기를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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