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인 당신께 TV삼분지계가 추천합니다. ‘아내의 자격’, ‘추적자’, ‘어셈블리’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보궐 선거가 이제 불과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공동체의 5년을 판가름할 중요한 선거이고, 주권자로서 국민 개개인이 지니는 정치적 지향을 밝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선거를 코앞에 둔 지금, [TV삼분지계]는 ‘대선 전에 보면 좋을 만한 작품’들을 골라보았다. 혹 글에서 어떠한 지향이 읽힌다 해도 그건 글 쓴 이의 지향일 뿐, 당연히 독자들에게 어떤 선택이 옳다고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다만 오는 5월 9일에는 대한민국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확인하자는 다짐을 함께 하고자 할 뿐이다.

그리고 투표 참여는 그 사실을 모두에게 확인시켜줄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혹 투표 당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투표를 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2017년 5월 4일~5일 양일 간 전국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사전투표를 진행한다. 투표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내게 가까운 사전투표소가 어디인지 궁금한 분들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사전투표소’로 검색해보자.



◆ <아내의 자격> - 다음 세대를 위해,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대치동의 한 초등학교 교실, 비어있는 책상 위에 국화 한 송이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검은 옷을 입은 담임교사의 ‘묵념’ 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다. 잠시 동안의 묵념이 끝나고 교사는 ‘방송국에서 나온 어른들이 말을 걸어도 모른다’고 대답하라는 주의를 준다. “자 107페이지 펴세요.” 이어진 말에 아이들은 조용히 책장을 넘긴다. 곧 장면이 바뀐 뒤, 교실에서 유난히 어두운 표정이었던 아이 하나가 엄마에게 안겨 울먹인다.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선욱이네 아빠가 엄마를 때렸대. 그래서 선욱이는 자기가 없어지기로 했대...”

종영된 지 5년이 지났지만 한 아이의 부고를 알리는 JTBC <아내의 자격>(2012)의 한 장면은 아직도 가슴을 찢는다. 대한민국 사교육시장의 중심인 대치동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속물근성을 날카롭게 해부했던 작가는 마지막 회에 이르러 그 폐해의 가장 참혹한 풍경을 그려내며 냉철하게 유지하던 시선을 눈물로 적신 채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투표라도 제대로 하자’고.



이 발언은 극 중에서 사교육광풍의 제일 큰 수혜자였던 입시학원원장 지선(이태란)의 입을 통해 나온다. 민주적인 세상을 위해 열정을 바친 운동권 청년에서 어느새 어린 초등학생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괴물로 변절했던 지선은 끝내 구속되고 나서야 부끄러움을 깨닫는다. 그리고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짐한다. 자신은 이미 속도형 인간이 돼버렸지만 공멸을 막기 위해 투표는 제대로 하겠다고.

몹시 씁쓸하게도 <아내의 자격>이 방영된 해 치러진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은 ‘세월호 세대’의 비극을 방조했고, 곧 치러질 대선의 지지율 2위를 다투고 있는 후보는 초등학교 무상급식 반대를 강조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아내의 자격>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동안 부조리한 현실은 한 치도 더 나아지지 않았으나 이제라도 그 폐해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일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추적자> -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는 우리의 선택이 결정한다

“힘 있는 자와 타협하지 않고 힘없는 사람들한테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위를 바라보지 않고 아래를 살피겠습니다. 가난이 자식들한테 대물림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서민들의 친구가 되겠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겠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을 저 강동윤이 여러분과 함께 만들겠습니다.”

2012년 화제작 SBS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2012)의 대선후보 강동윤(김상중)의 연설문이다. 내용 면에서 보자면 이번 19대 대선 후보들의 발언과 다를 것이 없다. 아내 서지수(김성령)의 죄를 덮고자 생때같은 누군가의 딸을 무참히 살해한 강동윤이 대선출마 연설에서는 힘없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겠다고 외쳤던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이번 후보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삐딱한 시선을 던지게 된다. 힘없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겠다고? 힘이 없어 본 적이 없는데? 힘없는 이들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



<추적자 THE CHASER>는 정계와 재계의 야합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무서울 정도로 잘 파헤친 드라마다. 위증과 조작을 서슴지 않는 법정, 힘 있는 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 우리는 강동윤 패거리의 천인공노할 악행에 분노했고 홀로 외로이 싸우는, 이 시대 서민을 대변하는 백홍석(손현주)을 동정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설마 사람의 탈을 쓰고 그렇게까지? 실제로는 그 정도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들이 권력을 위해 못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건 <추적자 THE CHASER>가 보여준 유권자의 힘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국민들의 삶은 계속되겠지만 어떤 삶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잊지 말자. 힘없는 사람의 진짜 희망이 누군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자.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어셈블리> - 국가가 의무고 국민이 권리입니다

KBS 드라마 <어셈블리>(2015)는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아프게 쑤시는 장면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한국수리조선 정리해고자 투쟁을 이끌던 배달수(손병호)가, 보수정당의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직에 출마하게 된 후배 진상필(정재영)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크레인타워를 오르는 장면을 2회에 배치한 것이다. “네가 사람들한테 박수 받는 의원이 되면 그때 내 내려올게.” 불행히도 다리에 장애가 있던 달수는 발을 헛디뎌 세상을 떠난다. 달수의 유언을 내내 심중에 품고 있던 상필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실직·파산자의 두 번째 기회지원법’을 국회에 제출한다. ‘배달수법’이라는 이름을 달아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아온 법안을 재통과시키기 위해, 상필은 국회의원직 사퇴를 걸고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연설로 호소한다.



더 긴 말 할 것 없이, 상필의 마지막 연설을 인용한다. 이 안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국가의 비전이 모두 담겨있다. 모든 후보가 저마다 서민의 삶을 안정시키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5월 9일 누가 당선되든, 진상필의 연설 마지막 문장을 기억하며 약속을 지켜주길 바란다.

“배달수 씨도 그래요. 평생 뼈 빠지게 배만 만들고, 군대도 갔다 오고, 갑근세도 꼬박꼬박 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느 날 갑자기 길거리로 내팽개쳐졌어요. 그 사람 누가 도와줍니까? 그 사람 누가 일어서게 도와줍니까? 국가입니다. 국가예요.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국가의 의무니까. 국민들이요, 호구도 아니고, 물주도 아니에요. 국민들은 이 국가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저는요. 국민들에게 믿게끔 해주고 싶어요. 국가가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고. 국가가 내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준다고. 그래서 나는,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내가 지금도 앞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저요, 이 딴청계 대빵 진상필, JSP, 제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했을 때는 국가가 의무고 국민이 권리입니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JTBC, SBS, 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