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대신 무명배우들이 전한 ‘백상’의 진심

[엔터미디어=정덕현] 시상식의 축하공연이라고 하면 늘 떠올리는 그림이 있다. 그건 아이돌의 무대다. 화려해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시상식과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저 유흥을 돋우는 무대인 경우, 무대에 오른 아이돌도 또 시상식에 참석한 연예인들도 또 그걸 바라보는 관객과 시청자들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3일 열린 제53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는 아이돌의 무대는 없었다. 대신 축하공연 무대에 오른 이들은 아직까지는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무명 배우 33인이었다. 가수들처럼 노래를 잘 부르지도 또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저 담담히 무대 위에 올라 자신들의 꿈을 노래하는 이들의 무대는 이 날 시상식의 백미였다.

암전이 된 상황에서 “나는 꿈을 꾼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 무대에 영화 <아가씨>의 독회 손님 역할을 연기했던 한창현이 노래를 시작했고, <또 오해영> 김주영, <아가씨> 정신병원 간호사 박신혜, <럭키>의 여고생 역할을 한 김정연이 목소리를 맞췄다. 이들이 노래하는 그 순간, 한쪽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에 앉아 그 무대를 보는 스타 배우들의 눈은 촉촉이 젖어들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자신들과 함께 온몸을 던져 작품을 함께 해온 배우들이 아닌가. 하지만 주인공들이 작품을 통해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것과 달리, 그들은 똑같이 고생하면서도 그 작품에 있었는지조차 기억에 남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니 스타 배우들 입장에서는 무대에 오른 ‘아직은’ 무명인 그들을 보는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금광산, 김단비, 김득겸, 김민지, 김비비, 김영희, 김유정, 김정연, 김태우, 김현정, 박병철, 박종범, 배영해, 백인권, 송하율, 이윤희, 이재은, 이주원, 이진권, 임수현, 전영, 조미녀, 차수미, 최나무, 하민, 한성수, 핲기, 홍대영, 홍성호, 황재필 등 33명이 함께 한 무대. 그들은 각자 자신에게 배우란 어떤 의미인가를 말했다. 그들은 배우가 “꿈”이라고 했고, “가족”이라고 했으며 “가장 듣고 싶은 말”이라고도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일을 향해 나는 꿈을 꾼다. 행복한 꿈을 꾼다.” 무대는 그렇게 끝을 맺었지만 그 감동은 백상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국내외 팬들이 직접 뽑은 스타센추리 인기상을 받은 김유정은 수상소감에서 그 무대를 언급했다. 그 무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는 그녀는 “무언가를 담지 않더라도 그릇 자체로 빛나는 성실한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시상자로 나온 김혜수는 그 무대에 대해, “너무 감동적이었고 사실은 앉아서 반성을 많이 했다”고 말했고, 영화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송강호는 이 무대를 언급하며 “영화 <밀정>에서도 뛰어난 연기에도 부득이하게 편집돼서 한 장면도 나오지 못한 배우들이 있다”며 “오늘 이 영광을 어린 배우들께 바치겠다”고 했다. <덕혜옹주>로 영화 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손예진도 “1부 마지막에서 연기자를 꿈꾸는 분들을 보고 많이 울컥했다”며 감동을 전했다.

드라마 한 편,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무수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과 성을 다하는 이들의 노력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상식이 주로 비추는 곳은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마련인 주인공들인 경우가 많다. <백상>이 33인의 ‘아직은’ 무명인 배우들의 무대를 통해 전한 건 그들에 대한 진심어린 헌사였다. 이번 <백상>의 진짜 주인공은 아직은 더 알려진 그들이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