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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교양의 도발, 늙어가는 지상파 예능 떨고 있나
기사입력 :[ 2017-05-08 16:47 ]


흥미로운 교양 프로그램의 대변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상파 예능이 계속 늙어가고, 종편과 케이블 예능이 인문학(강연과 시사 예능)을 끌어안을 때, 다큐와 교양을 표방하는 EBS와 KBS1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동안 예능이 다큐와 드라마의 영역까지 발을 넓히면서 외연을 확장했다면, 이번엔 거꾸로 교양 다큐 프로그램이 예능의 기법과 방식을 가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KBS1은 최근 전통적인 콘텐츠인 역사와 책읽기 프로그램의 엄숙하고 진지한 경향을 경량화하고 있다. <서가 식당>은 독서 콘텐츠를 쿡방, 먹방 코드와 연결했고, 전통의 역사다큐 <역사 저널 그날>은 동갑 친구인 인기 국사강사 최태성와 개그맨 이윤석이 함께 여행하는 스핀오프 <역사기행 그곳>을 내놓았다. 캐스팅 또한 달라졌다. 한은정, 이윤석처럼 그동안 교양‧다큐에서 잘 볼 수 없던 대중적인 방송인들이 대거 등장하는 추세다. 올해 초 방영한 도서 프로그램 <노홍철X장강명 책번개>는 A급 예능인 노홍철을 내세운 바 있다. 아예 교양 콘텐츠에는 전문가가 등장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깬 프로그램도 있다. 출연자들이 스스로 공부해 역사 유물을 소개하는 <천상의 컬렉션>은 역사 전문가 없이 서경석, 이현우, 김수로, 최여진 등의 유명 방송인들이 만들어간다.



지난 3월 대대적인 개편을 한 EBS1의 변신은 더 흥미롭다. EBS는 이번 개편을 온 가족이 함께 향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가족 지식 버라이어티라 설명했다. 다소 모호한 말이긴 한데 방점은 버라이어티에 찍혀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가족이란 온가족 콘텐츠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만족할 만한 콘텐츠를 마련하겠다는 뜻인 듯하다.

이번 개편으로 등장한 프로그램들을 보면 틀 안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KBS1보다 전위적이다. 교육 콘텐츠라는 범주의 울타리부터 부수고,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 밀착형 소재와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번 개편 이후 가장 먼저 대중의 눈에 띈 프로그램은 성차별, 겨드랑이 털 제모 문제, 피임 등의 문제를 가감 없이 나누는 토크쇼 <까칠 남녀>지만, 지상파 최초의 낚시 전문방송 <성난 물고기>와 김국진, 손연재, 그리고 자연다큐가 어색한 동거를 이루는 <이것이 야생이다>가 더욱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

이 두 프로그램은 EBS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영유아 시청자들이 아닌 중장년층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라는 공통점이 있다. 도시의 삶과 무거운 일상에서 벗어난 볼거리를 제공하며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윤식당>, <집시맨> 등과 접근 방식이 비슷하다. 잠시 떠나거나 속도를 늦추면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감정과 깨달음을 통해 시청자의 마음속을 파고든다. 또한 이세창, 이계인, 이하늘, 김국진, 손연재 등 인기 연예인이 등장하고 정서적 접근을 중시하는 오늘날 예능 문법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두 프로그램은 닮아 있다.



<성난 물고기>는 대상어종에 따른 낚시 장비와 팁, 포인트별 특징 등 낚시 관련 지식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런 지식을 알아가는 것보다 더 큰 재미는 낚시하는 모습을 그저 보는 것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낚시라는 매개를 통해 또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낚시의 매력과 문화를 소개하면서 떠나고 싶은 로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계인, 이세창, 개그맨 전환규, 심지어 DJ DOC의 이하늘과 정재용의 사는 이야기를 EBS 다큐에서 만나는 생경함도 신선하다.

사실 낚시는 얼마 전까지 대표적인 ‘아재 취미’였다. 전 세계적인 캠핑열풍과 욜로라는 단어가 생기기 수십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전문 방송과 관련 잡지가 있을 만큼 가장 대표적인 아버지들의 레저였다. 그런데 자연과 슬로우라이프가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낚시의 이미지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성별, 세대를 불문하고 라이프스타일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성난 물고기>는 바로 이 지점에 낚싯대를 드리운다. 지상파 최초의 낚시 방송이 지금 이 시기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해석해볼 의미가 있다.

<이것이 야생이다>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과 달리 굉장히 고요한 프로그램이다. 전통적인 자연다큐에 김국진과 손연재가 오지에 머물며 미션을 수행하는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융합형 다큐다. 기본 바탕은 다큐인데 나영석 PD의 예능처럼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가 카메라 앞에 등장하고 제작진과 출연자간의 약간의 긴장 관계도 존재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다큐라면 출연자가 나레이터나 해설자 같은 관찰자의 시선이 될 것이고, 일반적인 예능이라면 김국진과 손연재의 활동이 극의 중심이 되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 둘 다 취하지 않는다. 느슨하게 이원화되어 있다. 김국진과 손연재가 미션으로 부여받은 수리부엉이의 집을 찾아다니는 동안, 한편에서는 딱새, 원앙, 하늘 다람쥐, 큰오색딱따구리 등 지금 시기에 만날 수 있는 동식물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준다.

목표는 있지만 각본은 없다. 대상이 자연이다 보니 열심히 한다고 그 결과를 장담할 수도 없다. 말 그대로 자연이 선사하는 볼거리를 만나러 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따라서 리얼버라이어티의 문법을 띄고 있지만 핵심은 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신비와 같은 정서적 만족이다. 그래서 그냥 지켜만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이른바 슬로우라이프 콘텐츠다.

흥미로운 것은 <성난 물고기>(금요일 밤 11시 35분)와 <이것이 야생이다>(일요일 밤 9시 5분)를 포함해 지금까지 언급한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주말 블록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주말 밤에 새로운 형태의 교양과 다큐가 집중 편성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오늘날은 각자도생에 지치고, 현실 문제를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들여다보는 시대다. 그런 만큼 정신없이 살아도 채워지지 않는 문제의 이유와 잊고 잃어버렸던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목마름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런 이 때 지식과 품위, 교육의 가치를 앞세우던 EBS와 KBS1이 정서적 위안을 담은 다양한 이야기들과 변화한 콘텐츠로 주말 밤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 교양과 다큐는 우리 시대를 어떻게 진단하고, 시청자들과 조우하려 하는가. 그 기대와 궁금증에 대해 답변이 하나둘 시작되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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