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회 맞은 ‘개콘’, 캐릭터+연기+현실 공감의 동력 살려야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900회를 맞아 ‘레전드 19’ 특집을 방영했다. 1999년부터 19년 간 방영된 <개콘>의 레전드 코너들을 재조명한 것. <개콘>의 존재감을 알린 심현섭의 ‘사바나의 아침’부터 항상 마무리를 담당했던 ‘봉숭아 학당’, 그리고 만드는 코너마다 화제가 되며 <개콘>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갈갈이 패밀리 박준형, 정종철의 ‘마빡이’, 김병만이 아니면 절대 대체 불가였던 최장수 코너 ‘달인’, 공감개그라는 새로운 코미디 영역을 열었던 최효종의 ‘애정남’ 등등...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히트 코너들이 짧게나마 편집되어 소개되었다.

한참 지난 코너들이지만 지금 봐도 충분히 웃음이 터지는 코너들. 하지만 <개콘>의 현재를 걱정하는 개그맨들이라면 이런 코너들을 그저 편안히 웃으며 즐길 수는 없었을 게다. 한때 주말 예능의 최강자로 시청률에서나 화제성에서 단연 최고의 위치에 있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개콘>은 위기라는 걸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방영된 <개콘>을 들여다보면 새로 생겨난 코너들과 중심을 잡아주는 코너들 사이에 균형이 깨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새 코너에서 그나마 참신한 웃음을 주는 코너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감정을 하나로 연기해내야 하는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창과 방패’, AI라는 새로운 트렌드에 노동의 문제를 살짝 풍자해낸 ‘봇말려’, 연기자들의 발연기를 소재로 웃음을 주는 ‘연기돌’ 정도다. ‘누가복음’이나 ‘수호천사’ 같은 코너들은 어디서 웃어야할지 포인트를 찾기가 쉽지 않고, ‘아무말 대잔치’는 만담형 개그이지만 말장난 개그가 갖는 한계인 한 방이 없는 느낌이다.



새로 들어온 코너들보다 더 심각한 건 <개콘>의 지속적인 시청자의 관심을 이끌어야 하는 중심을 잡아 주는 코너들이 일천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남아있는 코너들 중 그래도 오래 지속한 코너는 ‘세젤예’, ‘사랑이 Large’, ‘사랑 참 어렵다’ 정도다. 하지만 이 코너들이 과거 <개콘>의 중심을 잡아주던 ‘달인’이나 ‘마빡이’, ‘비상대책위원회’, ‘애정남’ 같은 코너들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옛것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도 했던가. 900회 특집으로 방영된 ‘레전드 19’는 그래서 현재의 <개콘> 코너들이 어떤 부분에서 취약한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그 첫 번째는 <개콘>하면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확실한 캐릭터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사실 코너들 하나하나를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캐릭터는 확실히 각인되는 면이 있다. 코너를 짜는 개그맨들도 또 대본을 만드는 작가들도 개그맨들이 가진 특성들을 캐릭터로 부각시키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겠지만 개그맨 개개인들이 어떤 웃음에 강점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개콘>의 기둥을 세우는 일이 되지 않을까.

두 번째는 연기력이다. 사실 똑같은 코너를 해도 어떤 개그맨은 그걸 200% 살려내는 반면, 어떤 개그맨은 평이하게 보여주는 차이를 보이곤 한다. 개그맨은 그저 웃기는 장기를 가진 직업군이 아니다. 코미디언으로서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도 연기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중요한 자질이다. 대사 한 마디를 던져도 어떤 방식으로 연기를 해내느냐에 따라 유행어가 되느냐 그저 대사가 되느냐의 차이가 생겨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은 현실 공감이다. <개콘>은 물론 개그라는 영역으로 특화되어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자칫 그 안에만 파다보면 같은 이야기와 틀에 묶여버릴 수 있다. 벌써 900회를 맞는 <개콘>에서 완전히 새로운 코너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다. 그래서 더욱 중요해지는 점이 바로 현재의 현실을 반영해내는 일이다. 똑같은 틀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현실 공감의 틀은 트렌디한 면을 다시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개그맨들만큼 고생하고 노력하는 이들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어떤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것에 집중하고 어떤 것을 부각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선택이 중요해진다. 웃을 일 없는 현실에 웃음을 주는 귀한 존재들인 개그맨들의 산실인 <개콘>. 현재의 위기를 발판삼아 900회를 넘어 1000회 그 이상으로 계속 이어지며 우리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으로 남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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