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아니라 시선이 문제인 ‘남원상사’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XTM 예능 프로그램 <남원상사>가 방송 4회 만에 토요일 밤 12시 20분에서 목요일 오후 9시 20분으로 편성을 바꿨다. 편성 변경 이유를 명확히 밝히진 않지만 기대만큼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쇼는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로망의 실현부터 고민 해결까지 남자들의 원기를 북돋아주는 것을 목표로 신동엽, 김준호, 장동민과 쇼호스트 이민웅, 배우 김기두가 출연하는 XTM의 새로운 간판 예능이다. 그런 만큼 1% 미만의 시청률은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기대는 컸다. 남자들을 위한 방송이라는 채널 정체성을 그대로 살린 데다, 호평을 받았던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을 잇는 남자들의 로망과 병맛 코드, 신동엽을 MC로 내세운 캐스팅, 아재 개그의 시대의 도래 등 야심을 품을 만한 요소가 다분했다. 그러나 너무 야심한 밤에 편성되어 그런지 실적도, 남성 커뮤니티 등에서의 입소문도, 모두 기대에 못 미쳤다. 오히려 방송 3회 만에 방통위로부터 ‘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참고로 경고를 받은 이유는 ‘왜 남자들은 자꾸 팬티에 손을 넣을까’라는 주제로 방송 내내 남자의 성기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이를 묘사했기 때문이다.

사실, <남원상사>는 시작 전부터 ‘여성에게 복수하고 싶은 남자’를 찾는다는 공고문 등의 문제로 젠더 감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실제 방송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 쇼는 남녀관계와 역할을 스테레오타입화하고 남녀를 구분 짓고 편 가르기 하면서 동조와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예를 들자면, 남자들에게 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해 낯선 미녀가 운전을 잘 못한다며 주차를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남자의 도움을 받은 후 연락처까지 묻는 몰카 상황극이 그렇다. 운전을 잘 못하는 여자와 운전에 능숙한 남자라는 구도가 당연히 깔린다. 이런 점이 고루한 성 인식을 반영한다는 지적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예능이 꼭 젠더 감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깃이 구체적인 경우 풍자를 목적으로 젠더 이슈를 고의로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스탠딩코미디의 절반 이상이 인종과 섹스에 관한 이야기인 이유다. 하지만 <남원상사>의 경우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문제이자 한계는 남자의 로망과 봉인된 본능을 오로지 여자와의 관계, 남녀 구분 짓기와 대립에서 찾는 데 있다.



이번 주 개그맨 김재우가 게스트로 출연해 남자들의 비상금과 그것을 어디에 숨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안 그래도 예능에서 부부간의 비자금 관련 주제는 식상한 메뉴다. 차라리 종편의 ‘떼 토크쇼’처럼 아내와 남편 진영이 나뉘어서 서로의 입장에서 티격태격했으면 그나마 입씨름하는 재미라도 있었을 텐데, 아내에게 걸리지 않을 장소, 그럼에도 알아차리는 무서운 아내 등의 이야기를 하며 또 한 번의 의미 없는 남녀 편 가르기에 빠지다보니 김재우의 말대로 아무것도 얻어가는 것 없는 공허함만 남겼다.

뒤를 이었던 MC들이 사연 신청남의 기를 살려주는 설계를 하는 몰카 상황극 파트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동업 중인 세 친구가 그때 그 시절처럼 가족을 잠시 잊고 자기들끼리 질펀하게 놀고 싶다는 ‘로망’을 돕기 위해 아이와 부인들을 제주도로 여행을 보내고 자유 시간을 만들어 길을 나섰다. 그런데 짧게나마 본 영상에는 동업을 하며 매일 붙어 있는 세 친구보다 잔칫집에서 밥 먹을 때도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부인들이 더 자유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사연 신청자도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영상편지를 통해 미안함과 가족의 소중함이 더욱 커졌다고 전했다.

남녀를 구분 짓고 편 가르는 것은 ‘남자’를 내세운 프로그램들이 손쉽게 빠지는 패착이다. 남자의 적이 여자도 아니고, 남자의 로망과 꿈의 장애물이 모두 여자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공동 육아와 같은 성장에 따른 책임을 간과하면서 자꾸 성장이 유예된 남자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도 다소 유치하거나 뻔하게 느껴진다. 이 자체가 남자답지 못한 모습인데다, 여성을 자꾸 대립하는 존재로 규정짓는 까닭에 남성 시청자들의 로망과도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고, 여성 시청자들은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굳이 젠더 감성이란 프레임으로 보지 않더라도, <남원상사>의 근간이 되는 남녀를 규정하고 선을 긋는 시선 자체가 제한적인 설정을 야기한다. 그렇다보니 <남원상사>의 기획 의도와 이를 풀어내는 방식에 시청자들이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억지스럽다. 감성이 B급이라서 뜨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남자의 로망과 그 장애물을 여자로 보는 접근 방법 때문에 오늘날 시청자들에게 크게 와 닿지 못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X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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