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타자기’, 전생과 현생으로 그려낸 역사의 기억, 기록

[엔터미디어=정덕현] 과연 일제강점기 경성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이야기의 관심은 온통 이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독립운동을 하는 청년단체의 수장 휘영(유아인)과 그의 절친 신율(고경표) 그리고 그 신율에 의해 저격수로 키워진 수현(임수정)은 알 수 없는 인연의 고리로 묶여져 있다. 함께 독립운동을 했고, 수현은 휘영을 그리고 신율은 수현을 사랑했지만 무슨 일인지 수현이 휘영과 신율 중 누군가에 총을 쏘았다.

이 전생의 인연은 현생으로 이어져 수현은 전설(임수정)이 되어 베스트셀러 작가 세주(유아인)와 다시 사랑으로 얽히고 갑자기 유령이 되어 나타난 신율(현생에서는 유진오, 고경표)은 세주와 함께 그 전생의 기억들을 소설로 써나간다. 한세주와 유진오가 소설로 과거를 기억하고 기록한다면, 전설은 그 소설을 읽으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다.

사실 전생과 현생을 잇는 사랑이야기를 할 것이었다면 <시카고 타자기>가 굳이 일제강점기까지 시간을 되돌려 그 때를 전생의 시점으로 삼을 이유는 별로 없었을 게다. 그리고 그들이 독립운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비극적인 어떤 사건을 겪었다는 것을 드라마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을 이유도 없지 않았을까. 어떤 식으로든 <시카고 타자기>의 이야기가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시점과 당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시간의 장벽 같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간헐적으로 전생의 부분들이 떠오르지만 그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유령인 유진오 역시 그들 인연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걸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시간과 기억이 만들어내는 장벽. 그래서 이들은 그 기억을 되찾아가는 여행을 소설이라는 방법의 틀을 통해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시카고 타자기>의 초반 이야기들은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를 중심으로 그가 겪는 창작의 고통과 가족인 줄 알았던 백태민(곽시양) 가족으로부터의 배신 같은 개인사 그리고 무엇보다 유령이 깃든 시카고 타자기와 그가 얽히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전생과 연관된 현생의 이야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전개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것이 이 본격적인 전생과 현생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시카고 타자기>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전생과 현생, 그것도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지점을 끌어온 것일까. 이런 질문을 통해 떠오르는 건, 이 드라마가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되는가를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전생처럼 지워져버린 일제강점기의 기억들. 그래서 사료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교과서에 박제된 것이거나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들로 채워져 있는 기록들. <시카고 타자기>는 그것을 소설 혹은 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생생한 살아있는 역사로 담아내려는 노력 자체를 이야기의 모티브로 쓰고 있다.



그것은 한세주와 전설 그리고 유진오가 얽혀진 개인적인 사랑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우리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기억을 유예시킨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역사적인 시간들이었으면 전생처럼 지워버린 기억으로나 남게 되었을까. 게다가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당대의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이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는 아픈 현실은 당대의 역사가 우리 손으로 왜곡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전설처럼 전생을 기억하는 그녀의 어머니는 20년 만에 그녀 앞에 나타나 세주와 엮여 전생의 비극을 반복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자 전설은 자신은 “어머니처럼 전생이 두려워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것을 직시하고 극복하겠다는 뜻이다. 세주와 유진오가 기억을 되새겨 다시 쓰는 일제강점기의 기록과 그것을 읽으며 전생의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전설의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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