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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랑’, 부디 신성혁씨가 웃는 일 더 많아지길
기사입력 :[ 2017-05-16 10:50 ]


‘휴먼다큐 사랑’, 신성혁이 전한 함께여서 행복한 가족의 의미

[엔터미디어=정덕현] 40년 만에 만난 엄마와 아들은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말이 필요하진 않았다. 엄마는 “미안해”라며 계속해서 아들의 얼굴을 매만졌다. 마치 자신 앞에 있는 아들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들은 엄마의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가 한 첫 마디는 “엄마”였다.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 40년의 세월을 이국땅에서 입양됐다 파양되고 또 입양됐다 갖은 학대를 당했고 그러다 길바닥에 버려졌으며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해가며 살아왔던 그였다. 그리고 그렇게 버티고 버틴 결과는 허망하게도 강제추방명령. 아담 크랩서라는 낯선 이름은 그래서 신성혁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엄마 품에서 “엄마”라고 말했을 때 그 세월을 지워져 버렸다. 마흔 살을 훌쩍 넘긴 아들은 이제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처럼 모든 게 시작점에 서 있었다.

MBC <휴먼다큐 사랑>이 첫 번째 사연의 주인공으로 신성혁이라는 비운의 삶을 산 인물의 이야기를 전하게 된 건 그 고통의 삶 끝에서 그가 어떻게 다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는가에 대한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입양을 결정했고 아들이라도 배곯지 않고 살라며 외국으로 보냈지만 그렇게 40년이 지난 그들은 여전히 가난했다. 하지만 다시 만난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가난해도 함께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위해 엄마는 잡채를 버무리고 갈치를 굽고 수육을 삶았다. 새로운 이부자리를 준비하고는 매일 매만졌다. 하지만 아들을 만난 그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엄마는 자신이 그런 준비를 했었던 기억을 잃어버렸다. 아마도 너무 미안했고 또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기억조차 스스로 지워버렸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 엄마를 오히려 아들이 챙겼다.



모처럼 만난 외사촌누나는 밥을 먹는 성혁의 밥 숟가락에 반찬을 하나하나 올려주었다. 성혁의 그 밥 먹는 모습은 마치 아이 같았다. 아들은 밥을 떠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엄마에게 먹여주었다. 그 풍경은 이제 가족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이게 됐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했다. 그들은 식구였다.

다음날 성혁은 엄마와 함께 자신이 태어났던 곳을 방문했다. 너무나 어렵게 살아왔던 엄마의 삶을 아들은 그 공간의 비천함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엄마는 시장 통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아들을 자랑하고 다녔다. 다리가 불편한 엄마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아들과 장난을 쳤다. 엄마가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이 무거웠던 그들의 삶을 한층 가볍게 만들었다.

아들은 엄마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 혼자 서려 했다. 그래서 서울에 임시거처를 마련해두고 한국말을 배우며 일자리도 찾아다녔다. 서울에 얻게 된 임시거처에 들어간 그는 살림살이들이 자신의 키에 딱 맞는다며 좋아했다. 미국에서 살 때는 모든 게 자신보다 컸다고 했다. 아마도 그의 삶은 이제 하나하나 자신의 키를 찾아갈 것이다.

엄마와 아들은 뭐가 좋은지 만나기만 하면 까르르 웃었다. 안 통하는 말을 배우는 데도 까르르, 아들이 엄마 머리를 해주며 터번처럼 씌운 천을 보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라고 말하며 깔깔깔 웃었다. 물론 그 긴 시간을 타지에서 살아온 성혁이 이 곳에서 적응해나가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그는 3주간 2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 지난 2년 간 제대로 잔 적이 별로 없던 그였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맞는 생일날. 엄마는 서울에 사는 아들 집을 찾아가기 위해 갖가지 음식들을 준비했다. 엄청나게 큰 솥단지에 불고기며 미역국을 끓였다. 그런 엄마를 맞이하기 위해 아들은 그 비좁은 집에 몸이 불편한 엄마를 위한 사려 깊은 준비들을 했다. 화장실에 낮은 위치의 양동이를 놓고 부모님을 위한 이불과 베개를 새로 사두었다.

엄마가 준비하고 아들도 준비해서 생일상은 풍족했다. 한때는 자신이 왜 태어났을까 원망도 했던 생일날이라고 했다. 생일 축하 노래를 하고 케이크에 불을 켜고 미역국 한 그릇 먹는 것이 남다른 행복감으로 다가왔다.

음식을 할 때면 보이는 엄마의 남다른 ‘큰 손’은 그녀가 베푸는 걸 너무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때 아들이 업어준다고 해도 손사래를 치는 엄마는 남의 도움을 받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있었다. 하도 구박을 많이 받아서라고 했다. 아들의 등에 업혀 계단을 내려온 엄마는 그 작은 일에도 자신이 아들을 힘들게 했다며 미안하다고 울었다.

하지만 성혁의 가족은 이제 우는 일보다 웃는 일이 더 많아졌다. 운전면허를 따고 한국어 강좌를 들으며 말을 배우고, 배운 말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었다. “먼 훗날 가면 해피할거여.” 엄마는 아들에게 그렇게 말했고 아들은 엄마에게 “사랑해”라고 말했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가족. <휴먼다큐 사랑>이 전해준 신성혁씨의 사연이 전한 건 바로 그것이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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