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900회 논란, 결국은 제작진의 책임이 크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KBS <개그콘서트> 900회 특집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종철이 애초에 제기한 서운함은 대부분이 공감할만한 것이었다. <개그콘서트>에서 그만큼 많은 히트 코너를 하고 또 유행어를 남긴 개그맨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900회 특집에서 그가 배제되었다는 점은 그 스스로도 또 시청자들도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종철의 글에 덧붙인 임혁필의 댓글에서 ‘유재석’이라는 이름이 거론되면서 논란의 불씨는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동자야 이런 게 하루 이틀이냐. ‘개콘’이랑 아무 상관없는 유재석만 나오고.” 이 글은 마치 유재석의 출연을 탐탁찮게 여기는 뉘앙스를 풍겼다. 사실 부적절한 지적이었다. 유재석 역시 <개그콘서트> 900회 특집을 도와주기 위해 그 자리에 선 것뿐이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임혁필은 물론이고 정종철까지 사과를 했지만, 임혁필이 남긴 사과문은 또 그 뉘앙스가 비아냥을 담고 있는 것 아니냐며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졌다. 사실 그것이 비아냥의 뉘앙스가 있는 것인지 아닌 지는 정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직접 대면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글로 전달되는 이야기는 극도로 조심스럽게 적어내지 않으면 다양한 각도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읽는 이의 감정이 섞여 있는 상황이면 글은 다른 뉘앙스로도 읽힌다.

중요한 건 이런 논란의 연속 속에서 자칫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종철이 제기한 <개그콘서트>의 문제는 ‘왜 개그맨들이 <개그콘서트>를 떠나는가’에 대한 것이고, 그것이 ‘자의’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종철의 문제제기처럼 <개그콘서트>는 개그맨들의 산실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입지를 마련하게 되면 그 무대를 떠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박준형과 정종철은 한창 잘 나가던 시절 <개그콘서트>를 떠났다. 타 방송사에 자리를 잡으려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결국 <개그콘서트>라는 텃밭을 잃어버렸고, 나아가 방송을 할 수 있는 기회들마저 사라져버렸다.

왜 그들이 <개그콘서트>를 나왔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다만 <개그콘서트>가 갖고 있는 경쟁 시스템 속에서 제작진과 그들이 갈등한 부분은 분명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정종철이 이번에 쓴 글귀에서도 “<개그콘서트>는 제작진들만이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한 대목은 개그맨들의 입장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개그콘서트>는 개그맨들과 제작진 사이의 긴장감 속에서 그 시스템이 작동한다.

개그맨들은 저마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코너들을 짜고 연기를 해내지만, 그것이 모두 선택되는 건 아니다. 제작진에 의해 여러 차례 필터링이 되고 편집이 되며 때론 다른 코너와 이종결합이 되어 최종 결과물이 나온다. 그러니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개그콘서트>가 그래도 다 죽어가던 콩트 코미디를 되살리고 개그맨들의 산실이 될 수 있었던 건 이런 경쟁 시스템 덕분이었다.

하지만 경쟁은 과하면 독이 된다. 경쟁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소통의 물꼬는 제작진이 항상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칫 경쟁하면서도 동료로서 공존해야 하는 개그맨들 사이에 균열이 만들어질 수 있고 그것은 결국 시스템 자체를 와해시켜버릴 수 있다. 여기서 결국 중요해지는 건 배려와 소통이다.

이번 논란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그건 정종철과 임혁필이 문제를 제기하고 사과하는 등 목소리를 냈고, 여기에 대해 대중들도 때론 비판에 찬성하고 때론 비판을 제기하는 자세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와중에도 <개그콘서트> 제작진은 가타부타 아무런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모든 문제는 제작진의 부족했던 배려에서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다. 900회 특집이었다면 지금의 <개그콘서트>를 만드는데 일조했던 개그맨들에 대한 예우가 있었어야 했다. 나아가 그 작은 배려와 소통하는 자세는 사실상 <개그콘서트>라는 결코 쉽지 않은 경쟁시스템이 개그맨들을 보듬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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