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진은 왜 ‘문단의 아이돌’이라는 설정을 좋아할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를 1회부터 보고 있는데, 그렇게 즐거운 경험은 아니다. 남자 주인공의 언어와 태도, 행동의 무례함에 대한 불평은 전에도 했다. 이런 건 개성도 매력도 뭐도 아니고 그냥 불쾌한 행동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에 가깝다고 본다. 좋게 봐줄 이유가 없다. 드라마 스토리는 발동이 걸렸지만 캐릭터는 여전히 달라진 건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과잉보호하는 작가가 내 새끼 오구오구 우쭈쭈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 그만큼이나 신경 쓰이는 것은 작가라는 직업을 다루는 방식이다. 작가라고 해서 한 부류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어차피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드라마도 아니지만 이건 여러 모로 좀 심각하다.

가장 웃겼던 건 남자주인공 세주를 ‘한국의 스티븐 킹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영어권을 포함한 수많은 나라에 책이 번역되고 시카고 같은 곳에서 사인회를 하면 독자들이 구름처럼 모이는 모양인데 어떻게든 남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작은 나라 사람들의 촌스러운 콤플렉스가 그대로 드러나 참고 볼 수가 없다. 이건 스토리와도 잘 맞지 않는다. 그런 작가가 한국에 있다는 것부터가 SF적인 설정이지만 그런 위치에 있는 작가가 아무리 원소스 멀티 유즈가 얽혀 있다고 해도 카카오 스토리 연재 때문에 그런 난관에 빠지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작가의 슬럼프 묘사도 엉터리인 것은 마찬가지. 스타일이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었을 것이 분명한 작가가 겨우 며칠 글이 안 나와 애를 먹는다고 주변 사람들이 즉석으로 유령작가를 권하는 스토리를 과연 믿어야 할까?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들의 두뇌를 이용하는 방법은 넘친다. 물론 ‘유령작가가 진짜로 유령이었다!’라는, 이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아이디어를 고수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끌어들였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럴듯해 보이기라도 해야지.

무엇보다 세주의 이야기에는 창작자의 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책을 잘 읽는 것 같지도 않고 (간접광고인 게 너무나도 노골적인 에세이집을 읽으며 감동 받는 장면에선 신음이 나온다) 스토리텔링의 재미와 고통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지도 않다. 주변 사람들과의 경쟁과 갈등은 마치 스포츠 만화처럼 그려지고 ‘문단의 아이돌’이라는 이상한 이미지만 남는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지적했지만 왜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은 ‘문단의 아이돌’이라는 설정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조인성이 인기 추리작가 겸 DJ로 나오는 모 드라마에서도 어이가 없었는데. 하여간 이 드라마에서 책과 소설이란 천장 높은 집에 쌓아놓는 소품 정도에 불과하며 등장인물들은 이 물건과 아무런 접점이 없다.



모든 직업이 사실적으로 그려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다른 직업들을 보자. 과연 <시카고 타자기>가 소설가를 그리는 것처럼 다른 직업들을 그린다면 무슨 소리를 들을까.

한 가지 논리가 떠오른다. 한국 사람들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이상할 정도로 서툴다. 드라마나 영화, 심지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책이나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보더라도 그냥 스치듯 지나갈 뿐 삶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오로지 순수하게 자신의 경험으로만 구성된 삶을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삶은 대부분 빈약하거나 허구이다. 그리고 이야기꾼들이 그 허구에 지나치게 익숙해진다면 심지어 자신의 직업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사람들의 일을 그리는 동안에도 이런 공허한 판타지를 남발하게 되는 게 아닐까. 이런 것도 다른 사람들이 다져놓은 전통이 필요한 법이니까.

<시카고 타자기>는 초반부터 너무 이상한 방향으로 나간 드라마라 이후에 대한 기대는 없다. 그래도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과 글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보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기대 정도는 품어도 될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지만 지금 우리는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과 그 글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늘어난 세상을 살고 있다. 당연히 이들로 구성된 세계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적어도 ‘문단의 아이돌’과 사생팬으로 구성된 <시카고 타자기>의 세계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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