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당’이 준 대리만족의 로망은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여름 기분을 앞당겨 선사한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이 실제 여름의 문턱에서 마무리됐다. 어느 봄날 인도네시아 발리의 평온한 섬에서 보내온 여름 이야기는 쉼(여유)의 공감과 떠나고픈 로망을 동시에 건드리며 열렬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덕분에 나라 전체가 바쁘고 역동적으로 흐르던 정치의 시대에 TV를 보는 것만으로도 잠시 복잡한 현실을 잊고 여유와 평화를 즐길 수 있었다. <윤식당>은 마음 속 휴양지와 같았다.

호화 캐스팅과 매력적인 설정 덕분에 기대가 크긴 했지만 반응과 호평은 그 이상이었다. 사실상 정유미 외에 새로운 점은 없었다. 일본 영화에서 본 듯한 설정과 가치관, 여행과 슬로우 라이프, 그리고 함께하고 싶은 식구라는 나영석 사단의 세계관 등 이들이 무엇을 보여줄지, 무엇을 잘 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반복되는 일상을 다루다보니 기존 시리즈에 비해 스토리와 볼거리는 단조로웠다. 하지만 <윤식당>은 통했다. 아니 통하는 것을 넘어서서 더욱 더 시청자들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다.



“왜, 왜, 왜 인기가 있는 거야?” <윤식당>의 성공 비결에 대해 오너셰프 윤여정은 이렇게 자문한 뒤 ‘사람들(손님들)의 이야기’에서 그 답을 찾았다. 실행력과 배려심, 학벌과 어학능력까지 갖춘 멀티툴이자 베테랑 출연자인 이서진은 보다 더 정확하게 성공한 이유를 짚어냈다. 우선 식당을 꾸려가는 과정에 몰입하는 감정이입이 첫 번째고, 알아서 재미의 반을 책임져준 손님들을 두 번째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손님들의 대화는 제작진도 예상치 못한 재미였다. 휴가를 즐기던 다국적 손님들의 대화는 마치 옆 테이블 이야기에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실제로 휴가를 즐기는 다른 나라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는 잘 없다. 한식을 즐기고 우리나라를 알아주는 것도 반갑지만, 휴양지를 찾은 누군가를 만나고 이들의 여유로운 태도 자체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쫓기듯 살던 많은 시청자들에게 마음속의 짐을 내려놓는 대리만족이자 생각할 거리가 되는 문화 체험이었다.



주문이 밀려들어올 때 마치 홀 매니저의 심정으로 초조하게 주방을 바라보며 때로는 답답해하던 시청자들은 손님들의 느긋한 태도에 천천히 이완됐다. 몸 속 깊이 스며든 강박과 스트레스의 정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도 모르게 올라간 심박수를 낮추고 평온을 찾는 기회였다. 현실에서는 잊고 살았던 여유의 회복이다.

사회 경제구조상 비정상적으로 자영업자가 많고, 그중 다수가 요식업에 종사하는 우리나라에서 식당 이야기로 대중의 로망을 자극했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리섬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유미는 마지막 방송에서 ‘오늘에 집중해서 열심히 산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가장 좋았다고 했다. <윤식당>에는 미래를 위한 걱정과 불안 속에 불만족스런 하루를 보내며 쳇바퀴에 갇힌 듯 살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출연자들부터 손님들까지 오늘의 삶에 온전히 집중하고 하루하루를 느끼며 사는 삶의 즐거움을 뿜어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걱정 없이 하루하루에 집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 이 많은 사람들이 윤식당의 창업기에 몰입하고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이서진 또한 일과대로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기쁨을 <윤식당>을 촬영하면서 좋았던 점으로 꼽았다. 우리 대부분이 직장이나 학교를 나가는 등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거기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서진은 ‘계획적인 일과’가 있는 삶에 매우 만족하고 충실하게 임했다. <윤식당>은 이 차이를 짚어내고 캠페인을 하는 대신 대리만족적인 로망으로 우리가 현실에서 놓치는 부분을 일깨워주고 부족분을 채워줬다.

끝으로 <윤식당>이 품은 로망이 한 가지 더 있다. 제작진은 여러 인터뷰에서 윤여정을 내세운 것에 대해 은퇴 후 여유로운 노년의 삶을 보여주며 대리만족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의도도 의도대로 성공했지만 그 덕분에 ‘남녀 관계’가 아닌 ‘세대’에 포커스를 둔 구성이 가능했고, 함께하는 삶, 가족이 주는 든든한 울타리를 담아낼 수 있었다. 점점 더 가족관계가 파편화되고 세대 간의 단절이 심화되는 시대에 여러 세대가 함께하며 얻게 되는 장점과 행복한 모습을 나누는 또 하나의 로망을 자극했다. 30대부터 80대까지 여러 세대의 배우들이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며 지내는 것은 새로운 볼거리였다.



이처럼 의도했든 안 했든 <윤식당>은 가슴이 뻥 뚫리는 휴양지의 여유 속에, 삶을 살아가는 지향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우리가 갈증을 느끼거나 잊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떠올리고 바라보는 마음을 담은 엽서 같다. 내용은 길지 않지만, 보기만 하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까닭에 이 엽서는 각기 자기 자리에서 고군분투 중인 많은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왔다. <윤식당>의 소소한 이야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행복으로 화답을 한 이유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신구의 말처럼 잠깐 꿈을 꿨나 싶을 정도로 점점 아득해지겠지만, <윤식당>이 준 대리만족의 로망은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예능이지만 사람이 사는 이야기고, 결국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바람과 생각을 건네는 일종의 독서에 가까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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