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의 흥행 부진이 안타까운 이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불한당>의 흥행에 빨간 불이 켜졌다. 설경구, 임시완 주연의 느와르로 개봉 전부터 관심을 모았지만, 감독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영화를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평점 테러를 가하면서 뜻밖의 흥행부진을 겪고 있다. 영화 외적인 이유로 영화가 관객들과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만듦새는 굉장히 뛰어나며, 칸 영화제의 초청을 받을 만큼 스타일리시한 화면을 뽐낸다.



◆ 참으로 고품질인 만듦새

일단 촬영의 질감을 보라. 바닷가의 황혼 장면이나, 새벽의 하늘빛이 파스르름 하게 살아있는 가운데 자동차 조명만 빨갛게 빛나던 장면은 촬영의 미학을 보여준다. 음악도 나무랄 데가 없다.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심장을 뛰게 하던 음악은 특별한 감흥을 지닌다.

무엇보다 칭찬할만한 것은 편집이다. <불한당>은 다시 볼수록 빈틈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다. 재치 있고 예술적인 편집 덕분이다. 첫째 수미쌍관. 첫 장면에서 생선눈알과 죄의식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과 댓구를 이룬다. 죄의식을 덜기 위해 대상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는 말의 반명제로 맨손으로 입과 코를 눌러 죽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죄의식을 피하지 않고, 그의 마지막 숨결을 손바닥에 상흔으로 새기며 살겠다는 뜻이다. 그 다음 장면의 빨간 스포츠카에 누워있는 장면도 완벽한 댓구를 이룬다. 첫 장면에서 느긋하게 누운 재호(설경구)가 출소하는 현수(임시완)를 맞는다. 마지막 장면에 현수가 재호를 보낸 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누워있다. 시작과 끝. 만남과 이별.

둘째 연결의 묘미. 천팀장(전혜진)이 재호 일행에게 “어차피 빵에 가면 벽보고 딸딸이나 칠 것”이라 말하는 장면에 바로 이어 3년 전 교도소에서 재호가 현수와 처음 만나던 장면이 붙는다. 천팀장의 악담에 ‘과연 그럴까?’ 하고 천연덕스럽게 묻는 듯하다. 교도소에서 재호가 어땠느냐는 고회장의 질문에 현수가 대통령 임기 운운하며 김성한(허준호)의 출연을 보여준다. 고회장이 재호를 죽이기 위해 보낸 김성한을 보여주며, ‘어땠을 것 같니?’라는 교묘한 반문처럼 배치하는 것이다. 감옥 안에서 재호가 예수처럼 최후의 만찬을 하는 장면과 바깥에서 회식하는 장면을 동일한 구도로 이어붙이거나, 교도소 벤치에서 나른한 햇빛을 받으며 엄마가 곧 수술 받을 거란 다행감에 젖어있는 현수의 옆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엄마의 피가 번지는 화면구성과 편집은 절묘하다.



셋째 배열. 3년간의 시간차, 교도소 안과 밖을 아우르며 교차되는 편집에 의해 진실게임처럼 장면들이 배치되어 속임의 방향이 뒤집힌다. 처음에는 현수와 고회장이 재호를 속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재호가 현수와 고회장을 속이고 천팀장이 현수를 속이는 식으로 나간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현수가 천팀장과 재호를 속인다. 누가 누구의 비밀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가 편집의 묘수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데, 이는 결국 잘 짜인 플롯을 제공해준다.

언더커버 물에 있어서 누가 누구의 비밀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서사를 끌고나가는 핵심이 된다. 그런데 <불한당>에서 현수가 경찰이라는 사실은 전반부에 밝혀진다. 그것도 자신의 입을 통해서. 이것은 굉장한 파격이자, 기존의 언더커버 물을 뛰어넘으며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컨대 <불한당>에서 현수가 경찰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그보다 현수와 재호가 매순간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중요해진다.



◆ 감정의 흐름, 캐릭터

<불한당>은 언더커버물의 외양을 띄고 있지만, 그보다 핵심적인 것은 인물들 사이의 감정이다. 이를테면 교도소에서 나가면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하는 재호에게 “형 나 경찰이야....” 라고 털어놓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재호는 무슨 생각으로 듣고 있는가?

영화는 처음부터 교도소에 나타난 현수를 보며 즐거워하는 재호를 보여준다. 하품을 하며 짝짝이대회를 관람하던 재호는 현수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똘끼와 패기가 충만한 예쁜이의 출연. 그날 밤 친히 현수의 방에 가서 “넌 멍도 예쁘게 든다”며 얼굴을 만지려던 재호. 그러나 김성한의 출연으로 재호는 위기에 몰리고, 현수의 도움으로 재호가 다시 교도소를 휘어잡는다. “X알 두 쪽처럼 붙어서” 보안계장을 협박하던 재호와 현수. 이 장면에서 재호는 보안계장이 현수를 때리자 곧바로 주먹을 날릴 만큼 현수를 각별히 아낀다. 김성한을 죽이는 장면에서 재호는 현수에게 “자기는 나가 있어”라며 배려한다. 병갑(김희원)을 통해 현수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재호는 해사한 그의 얼굴과 똑똑함을 떠올리며 “죽이기엔 아까우니, 내 쪽으로 감아보겠다”고 말한다. 그리곤 현수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현수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죽인다.



재호에게는 가족애가 없고, 일생 누구도 믿어본 적이 없다. 그는 죄의식도 없이 상대와 눈을 맞춘 채 살인을 하고,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머니를 죽일 만큼 잔혹한 소시오패쓰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미친 듯이 오열하는 현수를 보고 약간의 미안함을 느낀다. 심리적 위기 때 잘 대해준 재호에게 현수가 경찰임을 털어놓자, 재호는 기쁨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현수가 마음을 연 이유에 대해 재호는 “착해서 그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죽었다 깨나도 알지 못하는”이라 말한다. 현수를 통해 재호의 마음에 인간의 심성을 향한 동경이 깃든 것이다.

한편 현수는 착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다. 맑고 투명하지만, 대단히 맹랑하고 도발적인 인물이다. 그는 현장 적응력이 뛰어나고, 순발력과 담력이 세다. 특히 말갛고 차분한 얼굴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모습이 일품이다. “저를 말리셨잖아요” “근데 이거 진짜 총 맞아요?” “형이 나한테 총을 쐈는데, 내가 괜찮을 리가 있겠어요?” “내가 다 망쳐버렸네” 심드렁하지만 교묘하게 상대의 감정을 낚아채어 교란시키는 현수의 말투는 팜므 파탈을 연상시킨다.



처음 김성한을 고문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던 현수는 경찰을 따돌리고 재호와 함께 일하면서 잔혹함을 체화해나간다. 시계를 감은 주먹으로 최선장의 얼굴을 짓이길 때 폭력의 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경찰이 현수를 납치하여 죽음의 시험을 가할 때, “너 경찰이라며. 한재호가 다 말했다”는 협박에 현수는 “한재호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말한다. 경찰들은 현수가 한재호에게 신분을 노출하지 않았다고 믿고 풀어주지만, 사실 그 말은 한재호에 대한 현수의 믿음을 드러낸다. 재호가 자신의 신분을 까발려서 죽일 리 없다고 믿는 것이다. “형에게 나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을게요. 그런데 난 형 믿어요.” 라는 현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재호의 의심과 몸수색, 진심으로 믿었지만 엄마를 죽인 원수라는 배신감, 그를 잡으려는 나의 부름에 달려와 준 재호를 끝내 살리고픈 현수. 현수의 부름이 의심스러웠지만 그냥 믿고 싶어서 달려온 재호. 자신을 죽이고 도망가라는 현수의 말에 미안함 때문에 차마 죽이지 못하는 재호. 나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고 현수의 손에 조용히 죽는 재호. 이런 목숨을 건 비극적 사랑이라니! 이토록 농밀하고 곡진한 순애보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최근작 중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작품으로는 <무뢰한>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 남-남 순애보가 뭐 어때서?

<불한당>은 교도소를 장악한 흉포한 중년남자가 청신하고 아름다운 청년을 만나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에 빠져들다 파국을 맞는 영화이다.

남자들이 우르르 등장하여 우정과 의리와 배신을 나누며 죽고 죽이는 느와르를 관통하는 정서는 남성들 간의 파토스이다. 그 정념은 보통 동성사회적인 (homo-social) 유대감이지만, 동성애적 (homo-sexual) 감정을 넘나든다. 우정이라기보다는 사랑이라고 불릴 만한 감정이 오가는 것이다. 가령 <신세계>에서 정청이 이자성을 ‘브라더’라고 부르며, 끝까지 믿는 것을 단지 형제애로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동성애에 대한 금기는 동성애를 오로지 성관계에 초점을 맞춰 성애적인 감정으로 축소시킨다. 그 결과 동성간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부인되고, 동성사회적인 감정인 우정이나 의리로 돌려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살면서 드물지 않게 경함하는 감정을 그 자체로 기술하지 못하고, 일단 ‘동성애가 아니다’라는 부정(Denial)을 내세우며 ‘브로맨스’니, ‘남-남 케미’니 하는 복잡한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간이든 동성간이든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고 간명하게 받아들이면, 그냥 ‘사랑’이라는 말로 모든 상황이 쉽게 설명된다. 재호는 현수를 처음 본 순간 사랑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던 그가 현수를 믿게 되고, 그로 인해 파멸한다. 현수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들이 많았겠지만 그때까지 자신을 이성애자로 알고 있었고 ("제가 그쪽 취항이 아니라서") 동성 간의 사랑이 가능한지 잘 몰랐기 때문에 재호가 자신에게 주었던 깊은 사랑이나 자신이 느낀 감정의 실체를 뒤늦게 깨달았을 수 있다. 감독은 딱 그 지점에 맞추어 디렉팅을 한 것이고, 따라서 배우들과의 소통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불한당>은 남자들이 단체로 등장하는 느와르 물이 품고 있는 정서가 사실 남성들 간의 사랑임을 누설한다는 점에서, 장르의 자기실현이라 할만하다. <신세계>가 흥행할 당시, 팬들 사이에서 영화의 주인공들을 재료 삼아 퀴어 로맨스를 2차로 창작하며 즐기는 하위문화가 존재하였다. 이러한 하위문화의 측면에서 보자면 <불한당>은 인물의 설정이 최적화된 작품이다.

실제 영화에는 몸수색이나 어깨동무 이상의 스킨십이 등장하지 않지만, 강력한 퀴어 로맨스의 정서를 품고 있기에 영화를 퀴어적으로 재전유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호모포비아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배우에 대한 성희롱’ 운운하는 것은 하위문화에 대한 몰이해이다. 상업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감독의 신중하지 못한 SNS 사용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디렉팅에 대한 오도된 비판이나, 하위문화에 대한 몰이해, 거기에 감독이 심상정 후보 지지자였다는 정치적 성향에 대한 반감 등이 어우러져 부당한 공격이 행해진 것은 안타깝다. 영화 내적인 면을 보았을 때, 이처럼 관객의 외면을 받을 영화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불한당>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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