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영화, 액션과 대자본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엔터미디어=듀나의 낙서판] 스티븐 소더버그의 [컨테이젼]을 아이맥스관에서 상영한다는 걸 시사회 직전에 알았다. 처음에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아이맥스는 거대한 피사체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랜드 캐년이나 옵티머스 프라임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컨테이젼]의 주인공들은 현미경으로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바이러스들이다.

하지만 영화(찍기는 레드원MX와 레드 에픽으로 찍었단다. 검색해보니 레드 에픽은 해상도가 6K까지 가능하다. 블로우업 작업이 필요없는 것이다)가 시작되고 기네스 팰트로의 거대한 얼굴이 아이맥스관 스크린을 채웠을 때, 나는 이 영화에서 아이맥스 상영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화면 구성과 소재만 본다면 [컨테이젼]은 일반 32밀리 극영화와 특별히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 화면을 아이맥스로 볼 때 관객들의 반응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맥스는 화면의 모든 것들을 확대한다. 그 확대된 화면을 보는 동안, 관객들은 전엔 볼 수 없었던 작은 디테일들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 음료수를 마시는 컵, 재채기한 손으로 만지는 동전들, 얼굴을 만지는 손가락... 기타등등, 기타등등... 물론 여전히 바이러스는 안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부풀려진 이미지를 통해 바이러스가 서식하고 번식하는 환경과 감염 경로를 상상하고 그릴 수 있다. 기능성만 보았을 때, [컨테이젼]은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봤던 영화들 중 아이맥스 포맷의 가능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살린 영화였다.

여전히 상식적인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상식적인 것이 늘 맞기만 한 건 아니지 않는가? 때로는 정반대가 더 그럴싸하게 맞을 수도 있다.

비슷한 예로는 내가 종종 예로 드는 3D 영화가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이 포맷을 스케일이 큰 액션 영화에 쓰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거대한 배경에서 우리가 3D를 인식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이 포맷은 잉마르 베리만식 실내극에 더 잘 맞는다. 방 안과 같은 좁은 공간 안에서 우린 주변 물체들의 3차원성을 더 명백하게 인식하니까. 하지만 추가 제작비를 들여 여벌의 스펙터클이 필요 없는 이런 장르의 영화를 3D로 만들려는 제작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고로 3D로는 [샤크나이트 3D]와 같은 영화들이나 나오게 되고 관객들은 효과에 실망하게 된다.

우리가 영화적 재미를 위해 당연히 결합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들은 사실 그렇게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SF는 당연히 액션 장르와 결합해야 한다고 믿고, 이것은 대자본을 들여 만든 엄청난 특수효과(여기에 3D를 더하면 더욱 좋고)를 동원해 만든 남성적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만든 영화가 [트랜스포머 3]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주춤하게 된다. 해야 할 건 다 했는데, 어쩌다 이런 영화가 나왔지?

물론 영화 만드는 것도 사업이라, 당연히 관객들(이 경우는 변신로봇에 관심이 있는 남자애들)의 취향과 기대를 만족해야 하고 그 안에서 사고를 해야 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우디 앨런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혹시 누가 알겠는가. 우디 앨런의 [트랜스포머]가 더 재미있을지. 커피 탱크를 들고 맨해튼 거리를 걸어 다니며 메가트론과 실존적 고민을 나누는 옵티머스 프라임을 생각해보라. 물론 흥행에는 별 도움이 안 되겠지만.



그 정도까지 갈 필요는 없다. 최근 들어 나온 SF 영화들 중 가장 재미있는 부류들은 대부분 위에서 예를 든 기준에 맞지 않는다. [타임 코드]나 [더 문]과 같은 영화들은 할리우드 기준으로 보면 소품이나 다름없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특수효과 때문에 대자본 블록버스터로 구분되지만 정작 블록버스터용 액션 대신 드라마가 중심이다. 이 장르가 온전히 살아남으려면 액션과 대자본에 눈이 멀지 않은 영역이 일정 부분 필요하다. SF의 1차 존재 목적은 특수효과로 관객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SF 영화 장르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그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쪽엔 [제7광구], [괴물]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있고, 다른 한쪽엔 [에일리언 비키니]와 [불청객]와 같은 영화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좋은 작품도 있고, 나쁜 작품도 있으며, 그 질이 꼭 제작비에 비례하거나 반비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중간이 없다. 제작비에 시달리지 않고 액션이나 특수효과에 질식되지 않으면서 이야기와 주제를 펼칠 수 있는 영역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이 장르의 미래가 아직 어두컴컴하다는 증거이다.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한 단계, SF + 대자본 + 액션 + 남성성 + 특수효과라는 결합을 파괴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날이 언제나 되어야 올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컨테이젼’, ‘7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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