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말’이 권력의 자중지란을 통해 속삭여준 것

[엔터미디어=정덕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종영이다. 아마도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이 가진 특징 중 가장 단적인 것이 바로 이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게 아닐까. 시작하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반전의 반전이 한 회 분량 속에서도 여러 차례 터지던 것이 바로 <귓속말>이다. 그래서 그 정신없이 전개되는 이야기들을 빠져서 보다보면 훌쩍 한 시간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런 속도감은 이제 마지막회에 도달하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역시 박경수 작가표 드라마의 묘미가 이것이 아닐까.

<귓속말>은 협박에 못 이겨 단 한 번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내린 판사 이동준(이상윤)이 그 죄를 되돌리는 과정을 담았다. 그런 판결을 내리게 만들었던 대형로펌 태백의 최일환(김갑수) 대표의 딸과 정략결혼하게 된 이동준은 그러나 이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사망한 신영주(이보영)의 아버지의 무고를 풀어준다. 그 과정에서 태백의 최일환과 그의 딸 최수연(박세영) 그리고 그와 한때는 연인이었으나 후에는 원수지간이 된 강정일(권율)과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결이 이어진다.



<귓속말>의 몰입감은 바로 이 대결의 팽팽함에서 생겨났다. 박경수 작가의 <펀치>가 그랬듯이 이 작품에서도 인물들은 저마다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한 방씩을 먹이고 받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서는 한 때 적이었던 사이도 동지 관계로 되돌리는 복마전을 보여준다.

사실 너무나 이 관계가 급변하고,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다 보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한 회만 놓쳐도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함을 보였다. 바로 이 점은 <귓속말>이 가진 가장 큰 취약점이 되었다. ‘사람은 믿을 수 없고 다만 상황만 믿을 수 있는’ 그런 관계들의 연속. 그 거미줄처럼 마구 뒤엉킨 관계들의 역전은 시청자들이 피곤함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어쩌면 <귓속말>이 하려는 이야기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급변하는 관계와 서로가 서로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것이 가능해지는 이유는 이 태백이라는 대형로펌으로 표징되는 부패한 권력의 중심부가 너무나 많은 비리들을 갖고 있는데다 또 이익을 위해서는 동료는 물론이고 친구, 선후배 심지어 가족까지 등을 지는 비정함을 속성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귓속말>의 결말에 이르러 태백이 무너지게 된 건 외부의 공격이라기보다는 내부에서 벌어진 ‘자중지란’의 결과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결국 부패한 권력은 그 비리와 약점과 비정함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진다는 걸 <귓속말>은 그래서 우리의 귓전에 속삭여준다. 그리고 저들의 욕망이 결국 저들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이 메시지는 그저 통상적인 얘기가 아니다. 최근 우리가 겪은 국정농단 사태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위태롭게 유지되던 그들의 관계는 작은 도미노 하나가 쓰러지면서 그 허약함을 드러내며 무너져 내렸다.

<귓속말>은 그 완급 조절에 있어서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담으려 했던 현실에 대한 날선 비판의식이나 반전의 반전을 이어가는 이야기 전개는 역시 박경수 작가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의 풍부함과 압축이라면 장편으로 풀어내도 충분할만한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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