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타자기’ 유아인이 그려낸 또 다른 청춘의 초상

[엔터미디어=정덕현] 일제강점기, 거사를 앞두고 청년들은 저마다 해방된 조국에서 꿈꾸는 행복에 대해 말한다. 일제에 빼앗긴 논마지기를 찾아 시골에 계신 노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게 행복이라고 말하고, 순사가 꿈인 아들이 일본의 순사가 아니라 조선의 경찰이 되는 게 소원이라 말한다. 누군가는 어릴 적 첫사랑을 만나 신나게 연애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이제 막 딸아이의 아빠가 된 청춘은 그렇기 때문에 하루빨리 해방된 조국이 되어야 하기에 거사를 위해 달려왔다고 말한다.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의 전생으로 그려지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청춘들이 말하는 해방된 조국에서 꾸는 꿈은 실로 너무나 소소하고 조촐하다. 목숨을 거는 그들이지만 꿈이란 것들은 대부분 그저 평범한 일상을 자유롭게 누리고 싶은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보는 이 청년조직의 수장 휘영(유아인)은 거사를 앞두고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들을 사지로 내보내야 하고 그들 중 대부분은 돌아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휘영의 동지인 신율(고경표)이 그에게 묻는다. 해방된 조국에서 아니 다시 환생해 태어난다면 무엇이 하고 싶냐고. 휘영은 말한다. “낚시나 함께 갈까?” 물론 그건 그의 진짜 소원이 아니다. 그는 수연(임수정) 앞에서도 속내를 숨긴다.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무수한 동지들의 수장으로서 그는 그런 사적인 감정이 사치라 생각한다. 그런 그의 냉랭함 앞에서 수연 역시 마음을 접었다고 말한다. 조국을 상대로 투기를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고.

대신 그녀는 다음 생을 이야기한다. 해방된 조국에 다시 태어나면 그때는 자신을 여자로 봐달라고. “괜히 망설이지 말고. 철벽치지도 말고. 거짓말 하지도 말고 혼자 아프지도 말고 나한테 솔직하게 다 말해 달라고요. 이번 생에 못해준 거 다 해준다고 약속해.” 자꾸만 다음 생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에 휘영은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음의 표현을 수장의 목소리로 말한다. “꼭 살아 돌아와. 수장의 명령이야.”



거사를 앞둔 이 청춘들이 현생에서의 꿈과 소원이 아니라 다음 생에서의 그것을 얘기하는 부분은 아마도 <시카고 타자기>가 전생과 현생을 넘나드는 판타지로 그려지게 된 모티브가 아니었을까. 그들은 당장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그 생에서의 찬란한 청춘의 행복을 유예하고 있었다. 그저 옆에 있는 사람과 마음껏 사랑하고 싶은 마음마저 철벽을 치며 살아가야 했고 그렇게 산화해야 했던 청춘들. 그들은 그래서 다음 생 해방된 조국에서 행복을 맞이했을까. <시카고 타자기>는 이 전생과 현생으로 이어지는 두 부류의 청춘들의 현실을 더듬는다.

<시카고 타자기>라는 낯선 제목은 그래서 일제강점기의 휘영 같은 청춘들을 설명하는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마치 타자치는 소리 같다고 해서 붙었다는 톰프슨 기관총의 별칭으로 불린 ‘시카고 타자기’. 글을 쓰는 지식인이지만 그 글은 또한 톰프슨 기관총 같은 무장투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글과 총을 동시에 들었어야 했던 당대 청춘들의 초상이 그래서 ‘시카고 타자기’가 아닐까.



그리고 이 일제강점기 청춘들이 해방된 조국의 다음 생에서 했으면 했던 소망과 꿈들은 고스란히 현생의 청춘들의 삶을 되묻게 한다. 과연 지금의 청춘들은 그들이 유예했던 그 소망과 꿈들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어쩌면 조국은 해방되었어도 여전히 그 현실의 많은 무게들을 청춘들에게 부담지운 채, 그 현재의 행복들을 유예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카르페 디엠’이라는 당대의 카페 이름에 담긴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의미는 그래서 그 때나 지금이나 슬픈 정조를 담고 있다. 미래를 꿈꿀 수 없기에 지금 현 순간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전생의 독립운동을 하던 청춘인 휘영과 현생의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한세주라는 두 청춘을 연기하는 배우가 유아인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유아인은 유독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청춘의 자화상을 그려냈던 배우다. <밀회>에서의 이선재라는 청춘이 그랬고, 영화 <사도>에서의 사도세자라는 청춘이 그랬으며, <육룡이 나르샤>에서의 이방원이란 청춘도 그랬다. 그래서 <시카고 타자기>에서 유아인이 그려내는 전생과 현생의 두 청춘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현재를 유예하지 않고 미래를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그런 청춘들의 시대는 언제나 올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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