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이상해’, 이 시대에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가

[엔터미디어=정덕현] 과연 이 시대에도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가. 한 때는 가족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의 근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이 같은 질문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를 말해준다. 이른바 ‘가족 해체 시대’가 아닌가. 물론 뿌리 깊은 가족주의의 틀은 여전하지만, 우리가 사는 삶의 양태는 1인 가구로 대변되는 ‘개인주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가족의 가치를 내세우는 가족드라마의 풍경들은 그래서 낯설거나 혹은 향수어린 추억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KBS 주말드라마는 그래도 이 가족드라마라는 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후의 보루다. 그래서 세상은 바뀌어도 여기 포진되는 가족드라마들은 기본이 시청률 30%라고 얘기될 정도로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 역시 가뿐히 30% 시청률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적인(?) 시청률이 그 드라마가 가진 가치의 바로미터가 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더 중요해진 건 반응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떤가. 괜찮은 시청률만큼 반응도 괜찮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데는 이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해체되어가고 있는 현 가족의 양태들을 다양하게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변혜영(이유리)과 차정환(류수영)의 혼전동거와 ‘결혼인턴제(?)’ 같은 것일 게다. 사실 변혜영과 차정환의 사랑이야기는 양가가 반대하는 전형적인 ‘혼사장애’의 클리셰를 가져왔지만, 그 안에서 이들이 대처하는 방식은 실로 도발적이다.



과거의 가족드라마였다면 아마도 혼전동거를 하다 들킨 자식들은 부모 앞에서 마치 죄인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변혜영은 부모를 힘겹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했다 말하지만, 자신이 혼전에 동거를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드러낸다. 사실상 동거는 가족주의의 틀을 깨는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 가족주의 시대에 동거는 금기시되던 면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 자체를 선택으로 보는 현 가족 해체의 시대에 동거는 정반대로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변혜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변혜영은 그래서 결혼을 하더라도 혼인신고를 늦추고 1년 정도의 인턴 기간을 갖자는 도발적인 제안을 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이상해>가 갖고 있는 가족주의와 가족 해체의 현실 사이의 어떤 타협점으로 보인다.

이런 지점은 이 드라마 도처에서 발견된다. 안중희(이준)와 변한수(김영철)의 관계가 그렇다. 어느 날 변한수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찾아온(사실은 변한수의 친구 아들인) 안중희를 변한수는 자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안중희가 홀로 버려져 아버지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변한수는 기꺼이 그와 늦게나마 해주려고 한다. 엄밀히 말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풍경은 가족 해체 시대에 대안적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점점 핏줄로부터 분리되고 있는 가족은 이제 타인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가고 있다.



가족이 만들어내는 때론 지지고 볶고 때론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 끈끈함은 여전하지만, 그들 각각이 처한 현실들이 어떤 면에서는 더 중요해진다. 이를테면 장남인 변준영(민진웅)이 처한 청년들의 취업문제가 그렇고, 나영실(김해숙)과 오복녀(송옥숙) 사이에 벌어지는 혼사갈등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갑을갈등이다. 가까스로 취업의 문을 넘은 변미영(정소민)은 가족이라는 틀로 갑자기 묶여진 과거 자신을 왕따시킨 김유주(이미도)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그녀에게 가족이라는 틀은 오히려 원치 않는 관계의 시작으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이상해>의 이야기는 그래서 가족을 그리곤 있지만 달라진 현실들이 드리워져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과거의 가족드라마가 그리던 풍경과 <아버지가 이상해>가 보여주는 풍경이 다르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이다. 거기에는 과거의 가족주의적 가치와 현재의 개인주의적 가치 사이의 부딪침이 보인다. 과거의 가족드라마는 세대가 갈등을 해도 가부장적 가치로 회귀하며 끝을 맺었다.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가족으로 다시 모여 잘 살게 되었다는 보수적인 가치관이 그것. 그렇다면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 여전히 가족주의의 가치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현 시대의 새로운 가치들을 보여줄 것인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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