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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감독은 과연 유리천장을 완전히 깬 걸까
기사입력 :[ 2017-06-03 09:19 ]


‘원더우먼’, 기념비적인 영화로 남을 자격 충분하지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요새 미국에서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가 열리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인다면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냉전이 한창일 때 소련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등 먹고 돌아온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이며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지금 준결승까지 갔는데, 리스트를 보면 동양인이 2/3나 된다. 여기에 속한 한국인들의 수도 만만치 않고.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흔한 광경이다. 요샌 이런 말도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네가 아무리 잘 해도 너보다 더 잘 하는 아시아인이 있어."

몇 십 년 전만 해도 이건 당연하지 않았다. 훌륭한 동양인 연주자가 서구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때마다 이런 질문이 따랐다. "테크닉은 좋아. 하지만 저 아시아인이 바흐나 모차르트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그냥 원숭이처럼 따라만 하는 게 아니고?" 지금 들으면 어이가 없는 소리인데, 옛날엔 정말 그랬다. 저런 헛소리를 극복하려고 몇 십 년이 낭비됐다.

‘누구누구는 할 수 없는 것. 할 수 있는 것 같아도 여전히 할 수 없는 것’의 고집 센 편견은 넓고 깊다. 영화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맡는 여성 감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업계 사람들이 그걸 여자들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들을 메릴 스트립 주연의 섬세한 심리물을 찍을 수는 있어도 특수효과가 잔뜩 들어간 폭력적인 액션 영화는 만들 수 없다는 믿음. 그렇다면 왜 남자들은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이번 주에 개봉된 패티 젠킨스의 <원더우먼>은 그런 의미에서 기념비적인 영화이다. 여성 감독이 만든 첫 번째 코믹북 여성 수퍼히어로 영화. 코믹북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여성감독 영화인 <탱크걸>, 남성 수퍼히어로가 주인공인 여성감독영화인 <퍼니셔: 워 존>, 여성 수퍼히어로가 주인공이고 여성감독이 만들었지만 코믹북 원작은 아닌 <언더월드: 블러드 워>와 같은 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완성도, 의미, 스케일을 고려해보면 ‘기념비’란 말이 어울린다. 그러나 여기서 진짜로 중요한 건 ‘최초의’, ‘기념비적인’과 같은 타이틀이 아니라 <원더우먼>이 멀쩡하게 잘 기능하는 액션 영화이며 블록버스터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영화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패티 젠킨스는 이미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고 주연배우에게 아카데미상을 준 영화를 감독했다. 비판자들은 젠킨스에게 대형 영화의 경력이 없지 않냐고 따졌는데, <라스트 제다이>의 라이언 존슨, <쥬라기 월드>의 콜린 트러보로, <가디언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제임스 건은 전에 경험이 있었나? 경력만을 본다면 젠킨스가 더 유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킨스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앞에 언급된 남성감독보다 훨씬 오래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원더우먼> 영화만은 당연히 여성감독에게 맡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다.



<원더우먼>으로 젠킨스가 유리천장을 깨트렸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유리천장은 그런 게 아니다. 유리의 비유에서 사람들은 얇고 깨지기 쉬운 이미지만을 선택해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돌에서부터 기자에 이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몇몇 성공담을 보고 그렇게 쉽게 말을 꺼내는 것이겠지. 하지만 유리천장의 비유는 투명함에 대한 것이지 강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비유가 강도에 대한 것이었다면 우린 지금 아이다 루피노, 아녜스 바르다, 제인 캠피언, 리나 베르트뮬러의 훨씬 많은 후배들을 보고 있을 것이다. 주변을 보라. 정말 갑자기 천장이 없어지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는가?

물론 <원더우먼>의 성공은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의 분위기는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목소리를 내는 여성감독들이 점점 늘어났고 가시적인 성과도 늘어간다. 하지만 이것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끝나지 않는 힘겨운 투쟁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나로서는 그들의 투쟁을 너무 가볍게 보지 말기를, 그들의 언어를 너무 가볍게 쓰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원더우먼>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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