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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무서워하지 않는 지렁이?
기사입력 :[ 2011-09-22 15:05 ]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비 오는 날 길을 걷다보면 발치에서 지렁이를 발견하곤 한다. 지렁이는 비가 내리면 땅 속을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온다. 지렁이는 공기 중의 산소를 피부로 호흡하는데, 땅 속에 물이 차면 호흡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희한한 현상은 비가 갠 다음에 보인다. 아직 바닥이 촉촉할 때 기어서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면 되련만, 상당수 지렁이는 어찌 된 일인지 길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급기야 쨍쨍 내리쪼이는 햇볕 아래 몸을 뒤틀다 생을 마감한다. 오늘 아침에도 미이라가 된 지렁이가 몇 구 눈에 띄었다.

길에서 흙까지는 거리가 불과 몇 발짝에 불과한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아무리 하등동물이지만 조금만 몸을 꿈틀거리면 살 길, 아니 살 구덩이가 보이는데 왜 저럴까. 이런 의문을 품은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어떤 사람은 궁금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틀리는 걸 감수하고 가설을 세운다. 나도 그런 부류다. 그래서 ‘지렁이의 슬픈 운명에 관한 진화생물학적인 고찰’에 이르렀다.

우선 내 가설을 정황적으로 뒷받침하는 기존 연구 결과를 세 가지 소개한다.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쥐가 있다. 톡소포자충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그렇게 된다. 감염된 쥐는 잘 움직이지 않고 고양이를 봐도 달아나지 않는다.

어떤 달팽이는 이름도 길고 희한한 ‘류코클로리디움 파라독섬’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된다. 이 기생충을 먹여 살리는 달팽이는 달팽이 세계의 상식에 반하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어둡고 으슥한 곳이 아닌 밝고 트인 곳으로 기어간다. 그리곤 계속 그런 곳에 머문다. 저를 잡아먹는 새의 눈에 뜨이고 싶어 안달하는 모양새다. 그런 달팽이는 실제로 새의 먹이가 되기 쉽다.

개구리도 소아마비 같은 병에 걸린다. 그 병은 리베이로이아라는 기생충이 일으킨다. 이 기생충에 감염된 올챙이는 다리가 제대로 생기지 않거나 기형이 된다. 소아마비 개구리는 잘 뛰지 못한다. 역시 새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더 노출된다.

쥐와 달팽이, 개구리의 이상한 행동은 모두 기생충 탓이다. 여러 기생충은 1개에서 3개까지 중간 숙주를 거친다. 숙주 갈아타기를 한 번 이상 세 번까지 한다는 말이다. 톡소포자충에게는 쥐가, 류코클로리디움 파라독섬에게는 달팽이가, 리베이로이아에게는 개구리가 중간 숙주다. 톡소포자충의 최종 숙주는 고양이다. 나머지 둘은 새를 최종 숙주로 삼는다.

기생충은 최종 숙주로 이르지 못하면 더 성장하지 못하거나 짝짓기를 하지 못한다. 최종 숙주의 몸 속에 들어가려면 중간 숙주가 최종 숙주에게 잡아먹혀야 한다. 그래서 이들 기생충은 중간 숙주를 ‘미치게’ 만들어 움직인다.

비가 그친 뒤에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 지렁이 역시 기생충에 걸린 게 아닐까. 기생충은 지렁이가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머물다 새의 먹이가 되도록 조종하는 게 아닐까.

참 톡소포자충은 사람 몸 속에서도 기생한다. 쥐에게 죽음을 불사하는 만용을 주는 이 기생충은 사람의 정신을 망치기도 한다. 연구 결과 톡소포자충은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적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오늘 퇴근 길에 종합구충제를 한 알 복용할까나.


참고자료
<우리 몸은 석기시대>, 중앙북스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후마니타스


칼럼니스트 백우진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 cobalt@joongang.co.kr


[사진=동미지렁이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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