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 마이웨이’, 오랜만에 맛보는 현실적인 ‘웃픈’ 연애담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월화드라마 <쌈, 마이웨이> 1, 2회를 봤을 때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는 했다. 과연 이 드라마, 2017년에 통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세공된 보석처럼 예쁜 로맨스, 아니면 주인공 중 한 명이 유령이나 왕족이어야 더 그럴 듯한 판타지 로맨스가 판치는 지금 <쌈, 마이웨이>는 환상이 없는 날 것의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오랜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해가는 남녀의 어색어색하면서 콩닥콩닥한 감정선들. 오랜 연인 사이라 가족 같아진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 거기다가 명치가 턱 막힐 것 같은 답답한 청춘들의 삶이 겹쳐진다. 과연 이걸 누가 보고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쌈, 마이웨이>는 별다른 전략 없이 드라마의 정공법으로 승부를 본다. 그 정공법 역시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그냥 보는 이를 웃기고, 울리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페이소스를 극화시킬 따름이다. 4부작 <백희가 돌아왔다>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긴 글 솜씨를 자랑한 작가는 <쌈, 마이웨이>에서 다시 한 번 그 역량을 보여준다.



그 결과 오랜만에 웃기면서도 울컥한, 로맨스물이 탄생한 것이다. 달짝지근한 양념은 없다. 지나치게 플레이팅에 신경 쓴 흔적 따위 없다. 그런데 무심히 지켜보다보면 오랜 친구인 네 명의 남녀가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쌈, 마이웨이>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매력은 특히 여주인공 최애라(김지원)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왕자가 백마 타고 집 앞에 데려다 주는 게 참 싫다.” (최애라)

최애라는 임상춘 작가 특유의 여주인공들이 그렇듯 얼굴은 예쁜데 힘은 세고, 욱하는 성격이지만 호감 가는 남자 앞에서 여우짓은 잘 못하고 소심해져서 이래저래 손해 보는 인물이다. 거기다 은근히 속이 깊은데 이걸 또 티내지 않으려고 사람들 앞에서 틱틱거린다.



이런 애라의 모습은 친밀하면서도 사랑스럽다. 그녀는 로맨스물의 멋진 남자와 연을 맺기 위해 만들어진 캔디형 캐릭터가 아니다. 애라 안에는 우리의 기억 안에 저장된 좋은 동성친구, 잊지 못하는 옛 여자친구, 한번쯤 짝사랑했던 여자의 모습들이 남아 있다. 작가가 애라를 통해 현실적인 이십대 후반 여성의 감정들을 조금은 코믹하면서도 생생하게 살려내서다. 그 결과 <쌈, 마이웨이>는 여주인공 애라를 중심으로 누구나 공감할 법한 서른을 앞둔 이십대 후반 남녀의 연애담을 추억하게 만든다.

여주인공과 친구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해가는 고동만(박서준) 역시 현실감이 충만하다. 그는 여자 앞에서 쓸데없이 달콤하거나 쓸데없이 멋있는 드라마적 인물이 아니다. 그는 그냥 남자애다. 고뇌하는 건 싫어한다. 울컥하고, 강한 척하고, 허세도 있다. 그래도 이 녀석이 쓸 만한 남자애구나, 싶은 건 책임감 있고 옵션으로 몸도 좋고 얼굴도 나쁘지 않아서다.

그리고 <쌈마이>는 이 두 사람이 과거의 나쁜 연인들로부터 벗어나 서로에게 점점 끌리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처신 똑바로 해. 소심한 촌년 여러 생각하게 하지 말라고. 죽는다 진짜.” (최애라)

친구 이상의 감정이 없던 두 사람은 이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자신들의 감정을 부정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은 우정에서 사랑 쪽으로 움직여간다. 이처럼 <쌈, 마이웨이>에는 점점 쌓여가는 사랑이 있는 반면 무너지지 않게 조심하는 사랑도 있다. 바로 <쌈, 마이웨이>의 또 다른 커플인 김주만(안재홍)과 백설희(송하윤)의 사랑이 그러하다. 각각 동만과 애라의 절친이고, 이 둘 때문에 알게 됐지만 두 사람은 동만과 애라의 경우와 달리 보자마자 불꽃이 튄 경우다. 다만 그 화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

대학생 커플에서 사내연애로 이어진 오랜 연인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무언가 아쉬운 기류가 흐른다. 설희는 주만과의 결혼으로 연애의 완성을 꿈꾸지만 그 전에 그를 놓칠 것 같아 불안하다. 주만은 설희가 자신에게 엄마처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당당해지기를 바란다. 여기에 회사 내에 주만에게 반한 부유한 인턴 여직원이 끼어든다.



<쌈, 마이웨이>는 흔들릴 듯 말 듯한 주만과 설희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결혼을 앞두고 흔들리는 오랜 연인 사이에서 흐르는 불편하고, 서운하며, 그러면서도 서로를 의지하는 감정들을 이토록 깊이 있게 들여다본 드라마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쌈, 마이웨이>는 현실감 있는 로맨스의 분량을 알뜰하게 챙기지만 마냥 달콤한 드라마는 아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십대 후반의 절망감을 포착하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아서다. 다만 보는 이를 울컥하게 하면서도 특유의 유머감각만은 절대 잃지 않는다.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도 웃음만은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태도다. 동만과 애라가 옥상 평상에 누워 꿈에 대해 말하는 장면은 이런 센스가 빛나는 장면이자 그런 ‘웃픈’ 장면 중 하나다.



“야, 우리 어렸을 때 맨날 장래희망 적어내라고 그러면서 그랬잖아. 너희들은 다 뭐든 될 수 있다고. 근데 커서 보니까……” (최애라)

“어른들이 뭘 모르는 애들한테 참 사기 많이 쳤지.”(고동만)

“난 그때 미스코리아부터 대통령까지 아주 다방면으로 김칫국 마셨는데.” (최애라)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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