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못살’, 너무 솔직한 이혼방정식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한집에 기거하며 서로 자기 자식 험담을 하는 동안에는 그렇게도 척척 죽이 잘 맞던 장모(박원숙)와 시어머니(김자옥) 사이가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내 자식 편을 들기 시작한 순간 단박에 금이 가고 만다. 결국 장모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시어머니는 돈을 갚으러 온 며느리 은재(최지우)에게 “우리 아들, 좀 더 여유 있는 여자 만났으면 자기 꿈 맘껏 펼치고 살았을 애야.”라며 속을 뒤집는가 하면, 장모는 그새 어디 계셨느냐며 찾아온 사위 형우(윤상현)에게 “우리 은재, 결혼하기 전에는 한 없이 빛났던 애야.“라며 서운함을 표한다.
결혼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고, 가족과 핏줄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아무리 살가운 며느리라도 내 아들보다는 귀할 리 없고, 아무리 듬직하니 의지가 되는 사위라 해도 내 딸 마음 고생시킨다면 미운 마음이 들기 마련이니까.
MBC <지고는 못살아>는 결혼한 남녀 사이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다툼과 반목, 오해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연애와 동거, 결혼이 어떻게 다른지, 왜 한때는 그토록 사랑했던 남녀가 이혼에 이를 수밖에 없는지, 두 사람의 대립을 통해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소한 어긋남이 쌓이다 못해 끝내는 법정에 섰던 연형우와 이은재는 집에 도둑이 든 사건을 계기로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차차 시간을 갖고 이해해볼 마음을 먹는다. 형우는 “너 사무실 비우고 혼자 있다 보니까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 보이더라. 니가 해준 배려 덕에 내 일 할 수 있었어. 사소한 거짓말, 은희수(이수경) 일, 무심하게 군 거, 다 잘 못했어. 밖에서만 착한 남편이라는 건 마음 아프네. 나 너 되게 소중한데. 이렇게 해. 넌 나에게 이혼이라는 문제를 냈어. 그럼 문제를 풀 시간을 줘야지.“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고, 은재는 ”나두 잘한 거 없어. 쌓인 거 풀다보니 말이나 행동, 다 함부로 나갔고. 나, 두툼한 지갑을 원한 게 아니야. 텅 빈 지갑이 싫었던 거지. 어머니 도움 받는 것도 싫어한 거, 알잖아. 내가 너무 쉽게 포기했나, 후회도 했어. 나만 힘든 건 아니었을 텐데.”하며 형우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화해 모드로 한발을 내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시어머니가 딴죽을 걸어온 것이다. ‘넉넉한 여자와 결혼했으면 내 아들이 맘고생도 안했을 것’이라는 소리로 대못을 박더니만 사돈 정난이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든다는 말까지 보태는 바람에 은재는 ‘어차피 이혼 소송 중이니 사돈 안 하시면 되겠다’라고 어깃장을 놓게 된다. 결국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건 좋은 교훈이다. 둘만 잘한다고, 둘만 사이좋다고 결혼 생활이 물 흐르듯 평탄할 수 있는 게 아닌 거다. 이처럼 결혼은 예측불허의 함정과 지뢰가 도처에 깔려있는 일종의 게임이다. 난이도 면에서야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순탄한 길만 펼쳐진 결혼이란 결코 없다고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그렇다면 결혼이라는 다사다난한 길을 어떻게 하면 ‘잘’ 걸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배우자는 그 흔한 주례사에 나오는 구절대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 같이 한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털어놓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존재여야 하고,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을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기쁠 때는 어땠을지 몰라도 슬픔은 공유하지 못했다. 형우는 동생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로 운전도 꺼릴 정도였지만 은재에게 아픈 과거사를 밝히지 않았고, 은재는 미혼모였던 엄마 정란이 자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병수발이 필요해진 아버지에게 돌아갔고 그 때문에 절연했다는 사실을 숨겼다.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 큰 상처이기에 다시 꺼내놓기가 두려워 감춘 것이다. 하지만 가슴에 묻어둔 비밀은 서로의 사이에 수많은 오해를 낳아 대화는 꼬여가고 결국엔 이혼으로 치닫게 되지 않았나. 형우는 둘째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와 동생을 대신해 수년 간 주고받은 메일로 인해 아내에게 의심을 받았으나 동생 이야기를 털어 놓지 않았고, 은재는 바텐더 태영(하석진)이 배다른 동생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아 남편에게 의심을 샀다.
둘 다 배우자를 믿고 의지하며 아픈 과거사를 속 시원히 털어 놓았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서로를 비난만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는 아니했으리라. 특히나 형우는 아내의 의심을 받으면서도 장모님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준 심지 깊은 사람이니까. 은재 또한 남편의 가슴 저린 가족사를 들으면 시어머니를 이해하고도 남을 착한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은재가 유일하게 속내를 얘기하는 영주(조미령)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남자들은 왜 자기 여자에게 그렇게 잘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영주의 한탄에 은재가 답했었다. “가족으로 엮였으니까요. 같은 우산을 잃어버려도 남들에겐 아깝겠다, 위로하면서 나한텐 칠칠맞다 흉보잖아.” 은재에게 묻고 싶다. 슬픔을 나누지 않는 사이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디 두 사람이 위기를 이겨내고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두 사람은 요즘 보기 드물게 좋은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니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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