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리네 민박’으로 다시 증명된 이효리라는 브랜드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이효리라는 브랜드, 여행이라는 트렌드, 제주라는 판타지, 이건 될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과연 <효리네 민박>은 오픈 전부터 수만 명의 지원자가 몰려들었고, 첫 방송은 JTBC 역대 예능 프로그램 첫 회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아직 객원멤버인 아이유도, 게스트도 도착하지 않은 채, 본격영업을 개시하기도 전인데 시청자와 언론의 반응도 호평이 대세다.

<삼분지계>의 세 평론가 역시 대체적으로 호의적 평가를 내렸다. 정석희 평론가는 때론 잔잔하고 때론 요동치는 우리네 삶을 닮은 프로그램의 매력에, 김선영 평론가는 어디서든 화면을 장악하는 이효리라는 스타의 힘에, 이승한 평론가는 관찰예능의 본질에 충실한 연출에 주목했다. 다음 주 영업을 더욱 기다리게 만드는 <효리네 민박>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본다.



◆ 우리네 삶을 닮은 프로그램의 매력

2008년 SBS <일요일이 좋다 - 체인지>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처럼 분장을 한 이효리를 알아보지 못한 지하철 승객들이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냈다. 마치 온라인에서 댓글을 달듯이 무심히, 별 생각 없이. ‘이젠 나이가 너무 많다’, ‘차라리 한동안 쉬는 게 낫다’, ‘아직도 이효리 좋아하는 사람 있나?’, 누구보다 당당하던 천하의 이효리도 그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불과 서른 살이었는데.



그리고 9년의 시간이 지났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젠 ‘나이’를 앞세운 공격 따위에는 끄떡 않을 자존감이 생겼다. 그간 깊은 성찰은 물론이고 남다른 노력이 있었지 싶다. 뭘 어떻게 한 거지? 궁금증은 JTBC <효리네 민박> 첫 회에 풀렸다. 탄탄한 자존감의 배경에는 조건 없는 사랑을 쏟는 남편 이상순과 반려 동물들이 있었다.

<효리네 민박>을 보며 누군가는 지루하다, 심심하다 한다. 또 손님들이 너무 부산스럽다며 불평하는 이들도 있다. 흐름을 깬다는 지적이다. <효리네 민박>이 영화가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잊었나 보다. 민박집은 손님을 취향대로 가려 받는 곳이 아니지 않나. 생각해보면 인생이 그렇다. 무난했다가 시끄러웠다가, 오락가락이 있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오늘은 편안했다가 내일은 요동치듯 심란해지고 또 며칠 지나 언제 그랬느냐 고요해지는 것이 우리 마음이 아닌가 말이다. 잔잔한 호수 같기만 하던 효리네 집에 생긴 변화.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이 자연친화적인 가족이 각양각색의 손님들과 어우러져 그려갈 그림이 기대된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뻔한 트렌디예능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이효리의 힘

<효리네 민박>이 이효리 단독샷으로 시작하는 건 필연적이다. 프로그램은 시작하자마자 ‘효리와 제주’라는 자막 하나 띄운 뒤, 별다른 배경음악도, 편집도, 연출도 없이 이효리가 바다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길게 비춘다. 구태여 화려한 기교를 동원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화면을 온전히 장악하는 스타가 몇이나 될까. 실제로 방송이 진행되는 내내 이효리의 장악력은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크다는 게 곳곳에서 느껴진다.

독특한 ‘효리네’ 집구조부터가 그렇다. 이효리가 직접 기획한, 화장실 문조차 없을 정도로 오픈된 공간은 이 프로그램의 의도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무엇보다 ‘이번 계기로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는 법, 친구 아닌 사람과 친구 되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이효리의 말은 그녀가 제주도 이주 이후 꾸준히 보여준 공존의 철학을 드러낸다. 요컨대 <효리네 민박>이 단순히 슬로우 라이프 예능이나 관찰 예능의 유행에 편승한 뻔한 프로그램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이효리의 힘이다.



문제는 <효리네 민박>이 이효리의 장악력을 벗어날 때다. 이미 연출과 편집, 객원멤버 활용 등에서 나영석 예능의 그림자가 엿보인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차별점으로 내세운 ‘제작진 개입 최소화’에서조차 같은 문제점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령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라는 이상한 명목으로 손님에 대한 정보를 전혀 주지 않는 것이나 굳이 정적인 분위기와 대조되는 ‘시끄러운 게스트’를 첫 손님으로 내세운 것처럼 제작진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들이 오히려 프로그램을 진부하게 만든다. 제작진이 ‘굳이 뭘 하고’ 싶어질 때마다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효리, 너만 믿고 방송하는 거’라던 이상순의 말이 아닐까.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굳이 뭘 하려고 하지 않는 심심함이 주는 깊이와 중독성

“내가 예능을 많이 했잖아. 그래 가지고 약간 카메라가 있으면….” “뭔가 해야 한다는?” “응, 사명감이 있지. 그게 나의 문제지.” “뭘 하려고 하지 마.” 오랜만에 예능에 출연한 이효리와 이상순의 밥상머리 대화는 ‘뭔가 하려고 하는 사명감’을 떨쳐 내려는 다짐으로 채워진다. 손님들이 제주에서 ‘심심함’을 즐기는 법을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장본인조차, 예능에서 사운드가 비면 안 된다는 강박을 버리는 건 쉽지 않다.

하긴, 이효리는 집을 내어주는 호스트가 아니라 집을 방문한 손님의 입장이었던 SBS <일요일이 좋다> ‘패밀리가 떴다’ 시절엔 어떻게든 사람을 웃기기 위해 끊임없이 망가져야 했고, 오랜만에 나간 MBC <무한도전>에선 제주에서 찾은 마음의 평화와 요가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얼굴에 밀가루를 찍는 슬랩스틱을 소화해야 했다. JTBC <효리네 민박>은 아마 자꾸 뭘 하려고 하는 옛날 예능의 자장에 익숙한 이효리에게도 새로운 도전일 것이다.



<효리네 민박> 첫 회는 본격적으로 손님을 받기 전, 평온하고 특별할 일 없는 부부의 일상으로 한 회분을 채웠다. 이효리가 요가를 다녀오고, 이상순이 이효리를 깨워 함께 밥을 먹고, 부부가 개와 고양이들과 어울려 놀고, 차를 끌고 장을 보러 나갔다 들어오는 내용으로만 한 회가 뚝딱이다. 그럼에도 빈자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가요와 예능 양쪽에서 대상을 수상한 시대의 아이콘 이효리가 주인공이라는 사실도 있겠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효리네 민박>은 이미 예능의 흐름이 출연자가 부산스레 무언가를 하는 만들어 내는 ‘출연자의 예술’에서,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편집실에서 PD가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연출자의 예술’로 전이하는 중이라는 걸 조용히 증명한다. 이효리와 이상순은 각을 잡고 앉아 제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설명하거나 제주에서 누리는 느릿한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호들갑스레 강조하는 대신 자신들의 삶을 통해 자연스레 보여주고, 연출자는 그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뭘 하려 하지 않아도,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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