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랑 사이, ‘쌈마이’의 마이웨이를 기대하는 까닭

[엔터미디어=정덕현] 일을 선택할 것인가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사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가 종영에 임박해 던지는 이런 질문은 조금 구시대적이다. 마치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할 것처럼 여겨져 그 부딪침을 갈등으로 드러내던 옛 멜로드라마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고동만(박서준)이 자칫 잘못되면 영영 청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이야기에 최애라(김지원)는 격투기를 그만두지 않으면 자신과는 이별이라고 통보했다. 어부인 아버지 때문에 평생을 가슴 졸이며 살았던 할머니의 삶을 보며 자신은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

이별의 이유로서 그것이 공감할만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지만 그래도 이들이 드러내는 일과 사랑 사이의 갈등은 조금은 절절한 면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청력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을 계속 하게 내버려두기는 어려운 일이고, 그걸 그대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청력을 잃을 수도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이 고동만이라는 청춘이 더 두려워하는 건 영영 링을 떠나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삶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삶이 그 어떤 것보다 괴롭고 힘들다는 그의 이야기는, 꿈을 꾸기는커녕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는 울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런 상황 속에서 결국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다. 일과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 일을 선택하자니 사랑을 버려야 하는 그 잔인한 상황은 그래서 최애라의 엄마 황복희(진희경)가 과거에도 겪은 일이다. 에로배우였던 그녀는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숨겼고 그래서 아이와 생이별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녀가 미혼모라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그녀는 일도 사랑도 모두 잃게 되는 산송장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녀의 선택은 일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게 된 것이었지만 그 결과는 잔인하게도 모두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커플인 김주만(안재홍)과 백설희(송하윤) 역시 일과 사랑 사이에서 빚어진 갈등으로 이별하게 되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둘은 6년째 사실혼 관계로 살아왔던 커플이었지만, 회사 내에서는 그 관계를 숨겼다. 백설희는 김주만이 일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며 뒷바라지만을 해왔고, 김주만은 그런 백설희가 너무나 안쓰러워 더 빨리 성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결국 사랑은 일과 얽혀지면서 변화했고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부모 세대들은 그저 살기 위해 꿈을 버렸거나(고동만의 아버지 고형식), 일을 하기 위해 사랑을 잃었다(최애라의 어머니 황복희). 그런데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들에게 부과한 짐이었다. 미혼모가 무슨 큰 잘못인가. 에로배우는 배우가 아닌가. 애초에 파일럿이 꿈이었지만 이제는 자식이 꿈이 되어버린 건 과연 그런 선택을 한 사람의 잘못인가. 그저 삶이 고단하고, 그런 삶을 더 힘들게 만드는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들이 만든 결과들이다.



고동만은 어째서 위험한 상황에서도 저토록 격투기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절절함을 보이게 된 걸까. 그건 어쩌면 할 수 있는 하나를 포기하면 다른 건 도무지 시도할 수조차 없는 선택지가 일천한 우리네 사회의 문제는 아닐까. 일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버텨내야할 어떤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좋아할 수 있는 일이라야 버텨낼 수 있는 현실 때문은 아닐까.

황복희의 시대에 있었던 일과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이 그 자식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건 그 한 세대 동안의 세월이 지나면서도 여전히 세상은 힘들고 척박하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그래도 이 시대의 청춘들이 과거 세대들의 선택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일 게다. <쌈마이웨이>의 청춘들이 과거 세대와는 달리 마이웨이를 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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