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즘 김희선 보는 재미에 산다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제목도 모르던 노래를 며칠 째 흥얼거린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물색없이 ‘가지마세요, 가지마세요, 나를 두고 가지마세요’가 튀어나는 통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이게 다 김희선 때문이다. JTBC 금토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에 등장한 김희선의 난데없는 댄스 공격에 무장해제가 된 나. 수시로 영상을 들여다보며 피식대다 보니 아예 가사가 입에 붙은 모양이다. 이래저래 불쾌지수가 다락 같이 치솟는 요즘 이만한 청량제가 또 어디 있을까.

때와 격에 맞는 옷차림 보는 재미도 있고 바람 난 남편 안재석(정상훈) 일로 눈물을 흘릴 때면 ‘맞지, 맞지. 김희선이 눈물 연기는 동급 최강이었지!’ 혼잣말도 중얼거려 본다. 부디 딸에게서 아빠를 빼앗지 말아달라며 윤성희(이태임)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이 어찌나 처연하던지.

그러고 보니 MBC <세상 끝까지>(1998)며 <안녕 내 사랑>(1999)을 보며 김희선을 따라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딸 지후(이채미)에게는 다정다감한 엄마지만 목적을 가지고 집안에 들어온 박복자(김선아)와 대적할 때는 서릿발 같은 성정도 엿보이고, 돈과 권력을 손에 쥔 갤러리 대표(전수경)를 다룰 때면 여우 너덧은 들어앉은 얼굴이다. 그런가하면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는 한 없이 순수하면서도 서글픈 표정. 어쨌거나 화려하면서 단호하고, 상냥하면서도 자기 실속 차릴 줄 아는 재벌가 둘째 며느리 ‘우아진’. 김희선이 아닌 ‘우아진’은 상상이 아니 된다.



그리고 월요일 밤에는 tvN 예능 프로그램 <섬총사>를 통해 ‘우아진’을 걷어낸 연예인 김희선을 만난다. 물론 이 또한 어느 정도 설정이 들어간 ‘김희선’이겠지만. 얼마 전 tvN <인생술집>에서 신동엽이 최고의 여성 예능인으로 김원희, 김희선, 이효리, 채정안을 꼽은 바 있다. 김원희 하나만 SBS <자기야>, TV조선 <만물상>으로 쉼 없이 활동을 해왔고 셋은 최근 들어 남다른 예능감을 발휘하며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데 김희선의 경우 이번 <섬총사>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동엽신’일지라도 동의하기 어려웠을 게다.

2013년 모처럼 MC에 도전했던 SBS <화신 - 마음을 지배하는 자>가 별 성과 없이 1년을 못 채우고 막을 내리지 않았나. 심지어 <화신>에 이효리가 초대된 적도 있었으나 용호상박, 불꽃 튀는 토크 접전을 기대했던 많은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평타 수준에 그쳤었다.

사실 이제와 돌아보면 당시 김희선도, <화신>도 크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것은 애매모호한 프로그램 콘셉트가 원인이었다. 특정 주제에 대한 시청자의 순위를 맞추는 포맷이었는데 토크쇼라는 제한된 틀과 주제에 갇힌, 한 마디로 김희선의 매력이 잘 드러날 수 있는 구성이 아니었던 것.



그와 달리 섬 주민과의 유대감이 관건인 <섬총사>는 김희선에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이다. 발군의 친화력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섬 주민들과 격의 없는 소통이 가능한가하면 태항호, 김뢰하 등 예능을 낯설어하는 게스트들과도 바로 친구가 된다. 타고난 천성 덕도 있겠지만 아마 아이 엄마로서의 삶이 여러모로 그를 성장시켰지 싶다. 그런가하면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예능에서도 빛을 발하는 패션 감각. 농어촌이 무대인 예능이라면 빠지지 않는 꽃무늬 고무줄 바지 없이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적당히 예쁜 모습이 아닌가.

사람에게는 누구나 때라는 것이 있다. 대운이 들었다 표현하기도 한다. 김희선에게는 지금이 때가 아닐까?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한 인기 가도를 달렸던 지난 날, 그러나 아마 그 시절에는 일을 즐기며 하지 못했을 게다. 세상을 돌고 돌아 뭘 좀 알게 된 지금은 일을 재밌어하는 게 눈에 보인다. 그게 바로 진정성이기도 하고. 그 물 오른 진정성 덕에 시청자는 즐겁다. 나 요즘 김희선 보는 재미에 산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JTBC,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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