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리네 민박’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는 하반기 신규 예능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상반기 예능가는 암울했다. 신규 프로그램은 tvN <윤식당>, JTBC <효리네 민박> 등 몇몇 대형화제작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작품이 거의 없었고, 장수 프로그램은 종영하거나 고전했다. 절치부심한 방송가는 하반기를 맞아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신규 예능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다.

<삼분지계>에서는 그 중 제일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인 tvN과 SBS의 신규 예능 프로그램을 먼저 살펴보았다. tvN에서는 MBC에서 이적해온 스타 PD들의 신작 두 편 <수상한 가수>와 <둥지탈출>을, SBS에서는 최근 정규편성을 확정지은 <싱글 와이프>에 이어 파일럿 프로그램의 선전을 보여주는 <미안하다 사랑하지 않는다 - 남사친 여사친>을 골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 평론가들의 평가는 유보 하나, 유감 둘이다. 어떤 이유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나왔는지 직접 확인해보시기를.



◆ <남사친 여사친>, 화제몰이는 성공, ‘썸’은 글쎄

SBS 3부작 파일럿 예능 <미안하다 사랑하지 않는다 - 남사친 여사친>은 남녀 사이의 우정이 사랑으로 바뀔 수 있는지 현실에 판타지를 더해 가늠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신지와 김종민, 정준영과 고은아, 예지원과 이재윤, 허정민. 17년차에서 2년차까지, 끈끈한 동지애를 발휘해온 커플도 있고, 누가 봐도 그냥 친구인 조합도 있고, 가능성이 살짝 열려 있는 관계도 있다.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아. 나에겐 친구가 너밖에 없거든.“ 드라마에서 오랜 친구의 사랑 고백을 거절할 때 흔히 나오는 대사다. 사랑이 변해 오랜 우정마저 사라질까 두렵다는 건데 실제로 돌같이 단단하던 우정이 불같은 사랑으로 바뀌는 예가 꽤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동종업계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은 사랑이 끝난 다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빠 동생 사이로, 친구 사이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라고들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쉽겠는가. 특히 2000년 김종민이 코요태에 합류한 이래 찰떡같은 의리로 서로를 끌고 받쳐온 신지와 김종민 같은 경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신지 없이는 지금의 김종민도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그간 여러 예능을 통해 끝없는 독려와 격려로 김종민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신지가 아닌가. 겉으로는 마냥 ‘신바’(신나는 바보)지만 속내가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결단력이 있는지 조목조목 시청자에게 알려준 사람이 바로 신지니까. 이른 아침 걸려온 전화 한 통에 한달음으로 달려왔던 KBS2 <해피선데이-1박2일> 강원도 철원 편 기상미션을 비롯해 떠오르는 장면이 한 둘이 아니다. 지난 주 <남사친 여사친> 1회가 방송된 후 두 사람이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반응도 있었고 결사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건 둘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이야깃거리, 논쟁거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성공했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둥지탈출>, 지겨운 '품 안의 자식' 서사

<둥지탈출>은 방영 전부터 MBC <아빠! 어디가?>, SBS <미운 우리 새끼>와 비교됐다. 전자는 <둥지탈출>에 앞선 김유곤 PD의 대표작이자 자녀들의 성장 관찰기라는 점에서, <미운 우리 새끼>는 자식들을 스튜디오의 부모들이 지켜보는 액자식 구성이라는 점에서 비교선상에 오르내린다. 제작진 역시 이를 의식한 듯 두 프로그램과의 차별화를 선언한 바 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본 첫 회는 자녀 세대 연령대만 다를 뿐, 앞선 프로그램들로부터의 발전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프로그램은 대부분 20대에 들어선 청년들을, <미운 우리 새끼> 부모의 시선으로, <아빠! 어디가?>의 아동처럼 바라본다.



특히 <미운 우리 새끼>의 영향이 좀 더 심각하다. 기껏 ‘청춘독립선언’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고 정작 그들의 이야기는 부모의 시선 아래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부모의 기준에 의해 분석되고 평가당하며, 방송은 부모들의 리액션에 초점을 맞춘다. 청년들이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김피디’를 소환하는 부모들의 반응은 흡사 어린이집 CCTV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교사에게 항의 문자를 보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스튜디오에 부모들이 모이자 ‘학부모 모임’이라고 표현한 박미선의 농담은 사실 이 방송의 성격을 정확히 짚은 것이다.

스튜디오를 벗어나 청년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 흥미로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춘 서사 자체가 귀한 방송가에서 젊은이들이 서로 연대하며 무언가에 도전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일정한 감동을 준다. 하지만 이 감동조차도 결국은 부모 시선의 액자식 구성에 발목 잡힌다. 네팔의 저렴한 여행자숙소를 고른 젊은이들이 ‘거지 같은 방’에서 잘까봐 과도하게 걱정하는 연예인 부모들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평범한 청춘’을 대변하기 어려운 그들의 위치를 떠올리게 만든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수상한 가수>, 주객이 전도된 식상함, 그리고 붐까지

tvN <수상한 가수> 첫 방송 이후 쏟아지는 칭찬은 죄다 무명가수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준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그 간절함은 사실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나 JTBC <히든싱어>, 그리고 민철기 PD의 전작인 MBC <복면가왕>이 모두 공유하는 덕목이다. 꼭 <수상한 가수>만의 매력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간절함’이라는 이 보편적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복제가수’라는 이름으로 대신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유명인들이 무명가수 당사자가 된 것처럼 간절함을 호소하는 장면들은 분명 흥미롭다.

하지만 동시에 정작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어야 했던 무명가수들은 투표에서 져서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 때까지는 제 입으로 직접 소감을 말하거나 제 몸짓으로 무대 위에서 호소할 기회가 없다는 점은 주객전도처럼 보인다. 앞서 언급한 3개의 유사 프로그램 모두 노래하는 이에게 이보다는 더 많은 노출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흥미를 위해 정작 주인공이 되어야 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에 인색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너무 예상되는 그림만 보여주는 패널 조합도 그리 좋은 신호는 아니다. 강호동-이수근 조합의 식상함이나, <복면가왕>에 출연했던 김형석, KBS <노래싸움 승부>나 SBS <신의 목소리> 등 각종 음악예능의 단골 패널로 나왔던 허영지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강호동-붐 조합은 이 둘이 함께 했던 SBS <스타킹>이나 SBS <강심장>을 떠올리게 만들어 쇼를 낡아 보이게 만든다.

쇼 비즈니스 내 정치적 공정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가 점점 커져가는 최근의 흐름을 생각하면, 끊임없이 복제가수들에게 무례한 장난을 걸고 여성 게스트가 나오면 치근대는 식의 붐의 유머는 놀랄 만큼 시대착오적이다. 아무리 익숙한 감동을 팔더라도 첫 출발은 산뜻해야 하는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들의 연속인 쇼가 주인공은 뒷전으로 하고 중간중간 감동을 깎아 먹는 불쾌함을 고명처럼 올려놓았다. 불안하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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