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남자’의 성패, 최민수에게 달렸다

[엔터미디어=정덕현] MBC 수목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가 첫 회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건 단연 최민수다.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이름도 낯선 보두안티아 공화국의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 장달구. 1970년대 중동 붐이 일었을 때 그 곳에 갔다가 실종 처리된 인물이다. 하지만 석유재벌로 억만장자가 된 그는 왕국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며 살아간다. 공주와 결혼시키려는 왕을 피해 경찰들과 추격전을 벌일 때 모래폭풍을 뚫는 스포츠카의 질주는 이 인물의 비현실성을 잘 보여준다. 도대체 한국인으로서 이런 인물이 실제로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판타지란 현실성이 더 없어지는 지점에서 더 강렬해지기 마련이다. 이 엄청난 부호가 공주와 결혼을 피하기 위해서는 뒤늦게 알게 된 자신의 딸 이지영을 데려 와야 한다.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이지영A(강예원)와 이지영B(이소연)은 너무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이지영A는 시댁에 얹혀 지내는 구박덩어리 며느리 아줌마다. 물론 드라마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지만 남편 강호림(신성록)은 물론이고 시댁 식구들은 그녀를 마치 하녀처럼 무시하고 부리기 일쑤다. 반면 이지영B는 이지영A가 그토록 꿈꾸는 드라마 제작사의 커리어우먼이다.



이지영A와 이지영B는 그래서 이 드라마의 중요한 비교점이 된다. 이 둘 사이에 석유재벌 장달구와 강호림이 서 있다. 장달구는 이지영B를 자신의 딸로 착각하고 강호림 역시 갑자기 나타난 장달구의 이야기를 믿게 된다. 결코 자신의 아내인 이지영A가 그런 아버지를 두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구도를 통해 보면 <죽어야 사는 남자>의 스토리 구조는 단순하다. 결국 이지영A가 본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이고,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이지영B와 강호림은 이 과정에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깨달아갈 것이다.

그런데 원하는 건 뭐든 가질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진 장달구와, 가지고 싶어도 아무 것도 제 손에 쥘 수 없는 강호림은 구 세대와 현 세대를 대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장달구는 어쨌든 개발시대 중동의 모래사막에서 목숨을 건 노동의 현장을 보낸 인물이다. 그는 현재 엄청난 부호가 되었지만 그런 성공은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사막의 태양만큼 뜨거운 열정과 노력의 결과라는 것.



하지만 은행에서 동기로 들어온 병태(차순배)가 은행장의 딸과 결혼하면서 지점장이 되어 있는 반면, 강호림은 그 친구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평범한 과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굉장한 노력을 통해 성공을 꿈꾸는 것 같지 않다. 대신 자신은 왜 아무 것도 없는 이지영A와 결혼했는가를 한탄한다. 노력보다는 로또를 사서 긁는 것이 그가 성공을 위해 하는 일이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장달구가 이지영B를 자신의 딸로 착각하고 그래서 그를 사위라 여기게 된 걸 알면서도 그는 그걸 부인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인생을 바꿔보고 싶은 게다.

여기서 미묘한 문제의식이 교차된다. 드라마는 그러면 장달구가 살아온 그 삶을 통해 일확천금만을 꿈꾸는 현 세대의 삶을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가당한 일일까. 겉으로 보기에는 강호림이 한심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그의 탓이라고 보기 어렵다. 제 아무리 노력하고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이 사회에서 자신의 계층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을 잘하던가 아니면 로또에 당첨되던가 하는 것 정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죽어야 사는 남자>의 장달구 같은 인물에 대한 판타지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판타지가 크다는 건 그래서 저 강호림이 그러하듯이 우리네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이 그만큼 공고하다는 뜻이다. 시청자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지영A가 그래서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를 원하게 되지만, 만일 그것이 장달구 같은 판타지적 인물의 도움을 통해 얻어진다면(물론 그 판타지가 크겠지만) 그만큼 허탈한 일도 없을 것이다. 결국 세상은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걸 확인시키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장달구라는 캐릭터가 권위를 가진 인물이라기보다는 바람기 가득하고 현실을 잘 모르는 그런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적어도 딸에 대한 마음만큼은 어떤 진심을 담고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이 드라마가 어떤 공감대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장달구가 그 구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해 현 세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 세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의 성장담은 이지영들과 강호림 같은 젊은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 성패에 있어 오히려 장달구의 성장에 더 중요한 방점이 찍혀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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