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이 깨준 인문학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엔터미디어=정덕현] 이제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 마지막 여행에 즈음해 새삼 느끼는 건 놀라움이다. 누구나 제 아무리 나영석 사단이라고 해도 인문학이라는 소재가 과연 예능에 적합할까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편견이고 선입견이었다는 걸 <알쓸신잡>은 보기 좋게 증명해주었다. 첫 회 5%대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은 최고 7.1%(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했고, 매회 이들이 나눈 지식수다들은 화제가 되었다. 그 어떤 오락 예능들도 하지 못한 성과를 어떻게 <알쓸신잡>은 거둘 수 있었던 걸까.

가장 주효한 것은 역시 출연자들이었다. 만일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이 아닌 다른 인물들이 들어왔다면 이만한 성과를 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 JTBC <썰전>으로 방송가에서도 가장 뜨거운 인물이 된 유시민 작가가 그 중심을 잡아주었고, 여기에 여행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에 남다른 역사와 맛에 대한 지식을 더해주었던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수다에 훌륭한 양념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지식들을 섭렵하고 있는 김영하 소설가와 엉뚱한 것에서조차 과학적 해석을 해내 과학적 상상력의 차원을 넓혀준 정재승 박사가 있었다. 똑같은 강연을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다르듯, <알쓸신잡>의 남다른 맛은 그 출연자들의 매력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 출연자들이 여타의 다른 프로그램에서와는 또 다른 맛을 보여준 데는 <알쓸신잡>만의 형식 또한 중요했다고 여겨진다. 유시민 작가가 독서량에 대해 왜 그렇게 대중들이 강박을 갖는가 하는 질문에 “지식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운을 띄운 김영하 소설가는 그 지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알쓸신잡>이 사랑받았던 이유가 ‘넘쳐나는 지식 수다들’ 때문이 아니라 “지식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점이라고 들었다.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저희 제목이 잡학사전 이렇게 되어 있어서 많은 분들이 우리가 지식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시지만 제가 지난 8회를 돌아보면 저도 많이 배운 게 지식을 얘기하는 것보다는 여기 계신 분들이 지식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저기 안내문이 이렇게 있다면 그 안내문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 것. 음식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그것을 믿지 않는 태도. 이런 것들을 계속 하고 있어서 우리가 제공한 지식이라는 것이 거의 없어요.”



이것이 가능했던 건 <알쓸신잡>이라는 제목이 정해지면서 가졌을 일정한 지식에 대한 이 프로그램의 접근방식 때문이었다. 알아두면 별 쓸모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신비하고 흥미로운 잡다한 지식에 대한 이야기. 어찌 보면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하면 그게 실제 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느끼는 그 정서를 이 프로그램은 정확히 꿰뚫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수다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이며, 상상력이라는 것이 쓸데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쓸모가 있는 것이라는 걸 드러내줄 수 있었다.

정답이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내 생각과 달라도 큰 무리가 없으면 일리 있다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그런 것이 본래 인문학의 본질이라는 걸 <알쓸신잡>은 은근슬쩍 드러내줬다. 마치 삶의 진리와 정답을 찾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착각해왔던 것을 깨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귀박사가 될 뻔한 정재승 박사의 방귀에 불을 붙이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것이고, 이방원과 정몽주의 ‘하여가’와 ‘단심가’를 <쇼미더머니>식의 랩배틀로 해석하는 김영하 소설가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것이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이 일리일 뿐이거든요. 그저 하나의 이치일 뿐인 것이죠. 그 안의 어떤 지식이 진리일 수 없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것 외에 다양한 일리들도 존재한다. 반대된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냥 일리로 무리하지 않으면 일리로 받아들이는 그 태도가 중요한 거죠.”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점을 콕 집어내고 있었다.

어떻게 세상의 모든 지식을 우리가 알 수 있을까. 그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유시민 작가가 마지막으로 남긴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알쓸신잡>이라는 시청자들과 함께 한 지식 여행의 긴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우리가 오늘 전주를 왔어요. 그러면 우리가 내일 가서 전주를 안다고 할 수 있나요? 어느 정도는 안다고 할 수 있죠. 북한산에 하루 등산을 갔다 와서 내가 북한산을 갔다 왔다고 할 순 있어도 내가 북한산을 안다고 말하긴 어렵겠죠. 책도 그와 비슷해서 어떤 책을 누가 읽었다고 그러면 다 북한산에 갔다 온 거 같죠. 안 그래요. 어떤 사람은 인수봉 꼭대기까지 갔다 온 사람도 있지만요. 어떤 사람은 둘레길만 돌고 오기도 해요. 책을 많이 읽는데 집착하지 말자는 거예요. 책을 읽을 때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것. 그게 인문학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