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밴드' 우승해도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없다”

[엔터미디어=TV남녀공감백서] 이런 무심한 듯 시크한 밴드라니!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KBS2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이하 <톱밴드>)에서 일찌감치 4강에 올라 다음 공연을 준비 중인 ‘게이트 플라워즈’를 만났다. 짐작과는 달리 유머러스하고 소신 있게, 예상답변과는 거리가 먼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들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는 듯 보였다.
대담: 게이트 플라워즈(박근홍 (보컬), 염승식(기타), 유재인(베이스)), 정석희 칼럼니스트, 정덕현 칼럼니스트 정리: 최정은 기자

정덕현: ‘게이트 플라워즈’의 팬 층은 주 연령대가 어떻게 되나요? 제 또래인 지금 40대는 젊은 날 ‘레드 제플린’을 듣던 세대예요. 그 당시 ‘도어즈’같은 락카페에 주기적으로 다니던 친구들이 그 나이가 된 겁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분명히 가지고 있거든요.

박근홍: 저희 팬분들은 30세 전후가 가장 많지만 의외로 40대 이상의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도 90년대 초반 음악을 들었던 분들이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우리는 복고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만들고 보니 복고적인 느낌도 있고요. 어제는 50대이신 어떤 분이 114를 통해 전화번호를 알았다며 출판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와 공연일정을 알려 달라고 하시더군요. 인터넷을 하지 않는 분들도 저희 음악을 좋아하신다는 거죠.

정석희: ‘게이트 플라워즈’는 잊고 있던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어요. 8강전 때 롤링 스톤즈의 ‘Pain it black’을 들고 나와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죠. 김종서 씨의 ‘음악 자체를 못 즐기고 이렇게 돋보기를 들이대야 하는 부분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심사평, 공감이 가더군요. 반면 봄여름가을겨울의 점수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더라고요. 지난번에는 보컬이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했던 적이 있죠? 같은 맥락에서 Poe에게도 낮은 점수를 준 건지도 모르겠네요.

정덕현: 아마도 취향의 문제겠죠. 저 같은 사람에게는 '게이트 플라워즈'의 음악이 참 맛있게 들리거든요.

정석희: 예선 때 음향 사고가 있었잖아요. 염승식 씨가 다소 까칠했던 장면 말이에요. 그런데 그조차 편집에는 쿨하게 나오더군요. 대단히 당황스러웠을 순간인데요.

염승식: 사실은 그 때 상황이 전혀 쿨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망신만 당하고 끝나면 어떡하나 싶어 제작진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어요. 본래 침착한 성격은 아닌데 순간 냉정해지더라고요.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제 기타 소리로 인해 벌어진 일이잖아요. 다른 멤버들은 지레 포기하려고 했지만 제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재도전 기회를 얻어내야만 했어요. 100 중에 50이라도 보여줬으면 다행이겠는데 저는 마이너스 100 상태로 내려왔으니 답답할 밖에요. 그러나 제가 아무리 이의를 제기해봤자 결정은 심사위원분들이 하시는 거니까요. 예심 때 남궁연 코치님이나 신대철 코치님이 크게 칭찬을 해주신 덕에 살아났지 싶습니다.

박근홍: 쟤는 분명히 화가 난 건데 우리는 ‘쟤 왜 저래?’ 하고 있었어요. (웃음) 카메라가 와서 저래도 되겠느냐고 물을 정도였죠.

유재인: 전 어느 쪽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고였던지라 일종의 천재지변쯤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도전은 어쨌거나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니까 어필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는데 조이엄(염승식)의 경우는 본인 일이잖아요? 충분히 이해가 가요. 저라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염승식: 그 날 햇빛이 너무 세서 얼굴이 찡그려 졌던 거예요. 일부러 건방진 모습을 보이려 한 게 아니고요. 뭐 하긴 그 덕에 이름도 좀 알렸죠. (웃음)

정석희: ‘게이트 플라워즈’ 공연을 보면서 뭔가 그림이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조이엄 씨가 왼손잡이여서 그랬던 거였어요. 왼손잡이 기타리스트는 처음 본 것 같은데, 뭐 봤어도 관심 없이 스쳤겠죠?

염승식: 저는 부모님들께서 굳이 고치려 하지 않고 왼손잡이로 길러주셨어요. 초등학교 때 첼로를 배웠는데 왼손잡이여서인지 진도가 통 안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기타는 애당초 왼손잡이 기타를 구해서 시작했죠. 왼손잡이 기타가 드문 건 당연하고 가격도 더 비싸요. 그러니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분들은 많이 만져보고 소리도 많이 들어보고 구입하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소리에 집착하는 편도 아니고요.

정덕현: 생활인으로서의 ‘게이트 플라워즈’를 보여 준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출판사에 다니지 않고 음악만 하고 싶지는 않나요?

박근홍: 3년째 근무 중입니다. ‘한울’이라는 출판사인데요. 일을 접고 음악만 한다는 건 불가능하지 싶어요. 6개월 정도는 또 모르지만. 하지만 나이가 있어 재취업도 어려울 텐데요. 안정된 직장을 나오기란 우승을 한다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웃음)



정석희: 4강 진출, 다들 가족들이 좋아하시죠?

박근홍: 아직 집에서 모르세요. 집에 TV가 아예 없거든요. 흔히들 딴따라라고 하죠? 집에 음악 하는 분들이 계서서인지 어머님이 제가 음악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어요. 그러나 눈치 챈 친척들도 있어요. 10년 이상 연락이 끊겼던 친척들이 E-Mail로 잘 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해오기도 하죠. 어머님께는 절대 말씀드리지 말라고 했어요.

유재인: <톱밴드>에 나가는 거, 부끄럽기도 하고 좀 민망해서 가족들한테 얘기 안했어요. 8강 때 우연히 보시고 어머님께서 축하한다고 전화 주셨습니다. 마침 외할아버님께서 집에 와계셨는데 함께 보셨던 모양이에요. 아버님은 음악 하는 거 많이 반대하시지만 어머님은 좋아해주세요.

염승식: 저는 부모님께서 믿어주시는 부분이 있어요. 일단 유학도 보내주셨으니 믿고 지원을 해주시는 거죠? 군대 문제라든지 뭐 이런저런 사정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특목고 학원에서 토플 가르쳤어요. 지금은 입학 제도가 달라져서 그만뒀지만요.

정석희: 박근홍 씨는 그러면 만약 우승을 해서 홈 씨어터 시스템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박근홍: 우리 집은 방 두개를 다 터도 홈 씨어터를 볼 수 있는 거리가 안 나와요. 만약 타게 되면 필요한 친구를 주던가 해야겠죠. 물론 적절한 가격에 양도를. 하하. 어차피 600만 원짜리를 일시불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니까요. 만약 상금을 탄다면 n 분의 1 할 예정입니다. 그 후 각출해서 작업실 에어컨도 좀 바꾸고요. 그래서 어머님이 아시면 더 안 되는 겁니다. 집에 알려지면 제 수중에 남을 돈이 얼마 없어서죠. (웃음)

정덕현: <톱밴드>에서 음악적으로 제일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박근홍: 방송은 4분 안에 곡이 끝나야 하는데 우리는 곡이 길어요. 평균 5분내지 6분 정도 되거든요. 단순히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멜로디나 코드를 편집해야 되는 것이 가장 어렵죠.

정석희: 기사를 보니 ‘POE’의 베이시스트가 음악적 성향이 안 맞는다며 팀을 나갔더군요. 경연 중인 멤버가 중간에 탈퇴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추구하는 음악성이 다르기 때문이라면 이해 못할 것도 없잖아요?

박근홍: 예의가 아니긴 한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톱밴드>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훨씬 자유로운 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경연 준비를 하며 느끼는 압박감이나 스트레스가 엄청나거든요.

정석희: <슈퍼스타 K 3>(이하 <슈스케 3>)의 '예리 밴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합주 미션 자체가 불합리한 것 아니었나요? 리더가 처음부터 못하겠다고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박근홍: 안타깝죠. 유명해지기도 전에 안 좋은 이미지가 붙어버리면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런 일은 우리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염승식: <슈스케 3>에서 밴드 참가를 허용한다는 얘기가 돌았을 때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톱밴드>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여기 나가면 <슈스케 3>처럼 되는 거 아냐?” 했는데 실제로 나와 보니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판을 깔아주는 프로그램이라 만족합니다. 솔직히 록밴드 입장에서는 오디션에 나오는 거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거든요. 이번에 참여하지 않은 밴드들도 다 그래서 안 나왔을 거예요. 이번에 우리를 보고 ‘이게 되는 구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덕현: 사실 밴드들에게는 방송 출연 자체가 낯선 일이었을 거예요. 물론 편집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겠지만.

유재인: 근홍이 형이 공고를 보고 제안을 했는데 사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편집에 희생물이 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왜곡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 전혀 안합니다. 어떤 밴드가 한 말이 있어요. 몇 년 동안 못 얻었던 경험을 <톱밴드> 몇 달 만에 얻었다고요.

정석희: 신대철 코치와의 궁합은 어떤가요? 제자들에게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계시던데요.

박근홍: 신대철 코치는 미주알고주알 간섭하는 스타일이 아니세요. 최종 컨펌만 하시죠. 우리가 좋다는 것을 대부분 수용해주십니다. 밴드를 하시는 동안 보컬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그래서 너무 완벽주의자가 아닐까 싶었는데 직접 뵈니까 전혀 그렇지 않아서 좋았어요.

정덕현: 신대철씨가 누굽니까. 저는 젊었을 때 신대철씨 이름보고 신중현씨가 아들 이름 하나는 정말 잘 지었다 생각했죠. 대철이란 이름의 뉘앙스가 '헤비메탈'하게 느껴지더라구요.(웃음)

유재인: 일단 믿기지 않는 일이었어요. 신대철 코치와 사제지간이라니. 처음에 자리를 함께 했을 때 마침 제가 옆에 앉았거든요. 저도 말이 없는 편이지만 코치님도 말씀이 없으신 편이더라고요. 그래도 궁금했던 것들, 이를테면 시나위 멤버들에 대한 질문, 보컬 중에 누가 제일 멋있는지, 연주는 어땠는지, 그런 것들을 여쭤봤죠. 요즘은 처음과 달리 많이 편해졌어요. 사실 저희는 스승으로 모시고 있지만 정작 코치님은 동료로 인정해주십니다. 저희로서는 정말, 정말 감사한 일이죠.

염승식: 어휴, 카리스마가 굉장하세요. 처음에는 눈을 못 마주치겠어서 아예 안 봤을 정도에요. 정도를 중시하시는 분이시고요. 노래가 가장 중요하다든지, 경연은 노래니까. 너무 과하거나 너무 실험적이거나 너무 엇나가는 경우가 아니면 저희 생각을 인정해주십니다. 예술성이 대단한 분이시지만 <톱밴드>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경연이니까 그 점을 염두에 둔 편곡을 하길 바라세요.

정석희: 신대철 씨 의견에 ‘싫습니다’라고 할 수 있나요?

염승식: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이건 아닌 거 같은데요.” 정도로는 얘기 합니다. 그러면 코치가 조목조목 문제점들을 짚어주고 따라서 합의점을 찾게 되죠.

정덕현: 그 분들, 옛날에는 누구 말을 들을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웃음)

박근홍: 신대철 코치는 기본적으로 우리를 인정하고 좋아해 주니까 다른 분들의 관계보다는 편안했습니다. 프로그램 안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연주 쪽은 전혀 간섭을 하지 않으시고요. “좀 더 뭘 해도 될 것 같은데” 정도로만 조언을 하시죠. 오히려 우리보다 대중적인 부분도 있으셔서 좋습니다.

정덕현: 다시해도 신대철 코치와 하고 싶나요?

박근홍: 물론 다시 해도 신대철 코치님과 하고 싶죠. 하지만 이 경연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 과정 자체가 진이 빠지는 일이라서요.

정석희: 재미삼아 묻자면, 프로그램 안에서 기타 실력으로 등수는 어느 정도인 것 같아요?

염승식: (망설이며) 기술적으로는 제가 다른 팀들 기타리스트보다 많이 못합니다.

정석희: 설마요. 지난번 심사위원 유영석 씨에게 “기타 참 잘 치시네요.”라는 칭찬을 받았잖아요? ’블루니어마더’의 한준희 씨도 심사위원에게 칭찬을 받았었죠? 두 분의 연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문외한인 저에게도 차이가 느껴지던데요.

염승식: 한준희 씨, 기타 잘 치시죠. 연주는 물론 소리를 잘 만드는 기타리스트세요. 저는 잘 친다고 하기보다 좀 다르게 친다는 말이 맞겠죠. 기회가 닿는다면 김종진 씨와 한번 연주해보고 싶습니다. 방송 중에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웃음)신대철 코치님과 연주해볼 기회가 있다면 그 또한 영광이겠죠.

정덕현: 다르게 치는 것. 그게 잘 치는 거죠. 김도균 씨 기타 치는 것을 보면 잘 치는 것 같지 않아도 그 감이 굉장하잖아요. ‘속주’ 이런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박근홍: 이게 자기가 만든 음악을 하는 거라 순위 매기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팔아먹으려면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하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요.

정덕현: 연습은 주로 언제 하나요?

박근홍: 저희 밴드도 그렇지만, <톱밴드>에 나온 밴드들의 경우 아직 학생인 톡식을 빼고는 다들 생업이 따로 있어 퇴근 후에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석희: 친해진 밴드는 없나요? ‘POE’ 보컬이 ‘게이트 플라워즈’ 팬이라던데 물렁곈, 어떤가요?

염승식: 방송에 보이는 대로 친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자친구로는……. (웃음) 동료애를 느끼고 있습니다. ‘하비누아주’도 친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전화번호 교환은 했는데 서로 만날 시간이 없는 거죠.

유재인: 처음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24강쯤 가니까 주변의 밴드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멋진, 잘 하는 친구들인데 왜 아직까지 몰랐지? 하게 됐죠. 저희가 시청자 마인드가 되어서 다른 밴드들을 감탄하며 지켜보게 되는 거예요.

정석희: 클럽 공연은 잘 되고 있나요? 이제 찾는 분들이 많아졌겠어요.

박근홍: 춤추는 클럽과 록밴드 클럽은 달라요. 록밴드 클럽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저 “와주시면 고맙습니다”인 상황입니다. 우리도 홍대 앞 ‘빵’이라는 데서 고정 공연을 하는 데요, 클럽에 그때그때 공지하니 보러와 주세요. 저희는 나이도 안 따집니다.

염승식: 사, 오십대 분들이 중학생 자녀들과 함께 오시는 분들도 계셔요. 그러니까 저희 공연에 오시면 고등학생부터 고등학생 어머님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는 거죠.

정덕현: 요즘 홍대 쪽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죠?

박근홍: 많은 클럽들이 망했다 생겼다 하는데요, 밴드 클럽에 가자는 문화가 없어 대부분 보험 영업 하듯이 해요. “와라, 와라”하면서요. (웃음) 평일에 열 명 정도 모여지면 주말에 설 수 있고요, 주말에 몇 십 명씩 모이면 페스티벌에 설 수 있죠.

정덕현: 혹시 록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본 적이 없었나요? 그쪽도 진입 문턱이 높나요?

염승식: 사실 인디씬 내부에서도 우리는 아웃사이더에요. (웃음)

박근홍: 인디 쪽에서 인기가 없던 우리들인데, <톱밴드>에서 많은 문자 투표를 받고는 우리도 놀라는 중입니다. 원래 홍대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 음악을 그다지 반기지 않거든요. 굳이 따지자면 ‘톡식’이나 ‘아이씨 사이다’가 주말에 설 수 있는 팀이고요. 우리는 주말은 언감생심, 보러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정덕현: 저도 처음에 보고는 매력은 있는데 ‘이런 음악이 통할까, 끝까지 갈 수 있을까’ 했어요.

염승식: 우리가 대중 음악상을 두 개나 받았는데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런데 주말, 공중파 방송의 위력은 확실히 굉장하더군요. 10년 전에 했던 음악까지 다 찾아서 들으시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정덕현: 시청률이 낮다고 하지만 <톱밴드>는 봐야 할 사람들은 다 봤습니다. 새로 유입된 사람들은 재미로 보고, 음악 관계자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보거든요. 생각보다 음악이 나쁘지 않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좋다는 말이에요.

정석희: <톱밴드> 이후 미래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지 싶은데요.

유재인: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아졌다는 건 반갑습니다. 감사하죠. 하지만 이로 인해 뭔가 장밋빛 미래가 열리리라고는 기대 안 해요. 사람 일을 알 수가 없는 거라서 뭐라 장담은 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기본 소신은 변함이 없어요. 그냥 살아온 대로 쭉 열심히 살 생각입니다.

염승식: 많은 분들에게 알려졌고 기회를 얻었고 또 돌려드리는 것도 중요하죠. 함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게 가장 큰 의미가 있어요. 유행을 타는 음악이 아닌 유행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정덕현: 이제는 많이 알려져서 음악에만 몰두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박근홍: 생업을 포기하고 음악에 뛰어 드는 것은 모험입니다. 음악이 아무리 좋아도 먹고는 살아야죠. (웃음) 그런데 <톱밴드>로 그 지평이 바뀌었어요. 부추긴 거죠. “할 수 있어”라고요. 저희 클럽 회원 수만 봐도 250명이었던 것이 3400명이 되었거든요.



정덕현: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박근홍: 원래 고등학교, 대학교 때 스쿨밴드를 하기는 했었어요. 그러나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요. 그러다 군대에서 힘들게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당시 들었던 게 ‘펄잼’이나 '사운드 가든' 같은 90년대 초반의 얼터너티브 록 이었는데 많은 의지가 되었죠. 노래가 ‘너 힘든 것 다 안다’는 식으로 들리더군요. 그래서 2001년 군 제대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음악, 안 들었어요.

정석희: 군대에서 얼터너티브 록으로 힘을 얻었어요? 우리 아들은 반대로 그런 음악만 들었던 애인데 군대 가서는 소녀시대에 깜빡 넘어가던데요. 어쩐지 배신감이 들더군요. (일동 웃음)

유재인: 저는 교회에서 시작했습니다. 교회 밴드에서 기타를 치다가 우연히 베이스를 하게 되었죠. 교회에서는 록을 하는데 한계가 있어 홍대 쪽 밴드를 알아보다가 형들을 만났죠.

박근홍: 염승식과 드럼의 양종은은 원래부터 친구였어요. 언젠가 딱 하루 같이 공연을 했는데 잘 하는 거예요. 뭔지 설명은 못하겠는데 굉장히 특이하고 잘 하는 느낌? 그냥 그런 느낌만 가지고 있었는데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2005년 게이트 플라워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했죠. 권태기를 극복하지 못해서.(웃음) 원래 있던 베이시스트가 결혼을 하고 연봉 3000만원의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바람에 그만두게 되어 2008년, 마지막으로 유재인이 합류했습니다. 사실은 2009년에도 권태기가 왔었는데요, 마침 양종은이 우리도 모르게 EBS <스페이스 공감>의 ‘헬로루키’에 지원을 했고 뜻밖에 상을 타는 바람에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성취감도 생기고 다시 의욕이 생기더군요. 그 동안은 게이트 플라워즈, 염승식 솔로 포함 모든 경연에서 죄다 떨어졌었거든요. 원래 밴드가 비주류인데 밴드에서도 우리는 비주류였으니까요. 음악적으로 자신은 있었는데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던 끝에 <톱밴드>로 다시 태어났죠.

정덕현: 삼국지 도원결의를 기대했는데 사랑과 전쟁이었네요. 하하.

정석희: 염승식 씨는 솔로 앨범을 냈어요?

염승식: 솔로 음반 ‘흐르른다’는 제가 만들고 싶은 노래를 만든 거예요. ‘게이트 플라워즈’에
서는 제가 멜로디와 가사는 안 쓰거든요. 솔로 음반은 제가 노래도 불러요.

정덕현: 게이트 플라워즈는 사실 이전부터 음반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톱밴드> 출연을 통해 보니 역시 첫 등장부터 묵직하더군요.

박근홍: 처음에는 <톱밴드>에 나온다고 했으면서도 부끄러운 게 있었어요. 그래서 KBS에 와서도 계단 구석에 숨어 있었어요. 민망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무도 우리를 몰라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그 전 날 같이 공연 했던 팀을 만난 거예요. 공연을 마치면서 “내일 영혼 팔러 갑니다.”했는데 “아, 이쪽도 영혼 팔러 오셨구나!”했어요. (웃음)

정석희: 결승에 오르게 된다면 어떤 팀과 만나고 싶나요?

염승식: 저희가 오르던 안 오르던, 결승에 ‘라떼라떼’가 올라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 다 떨어졌다며 이럴 거면 차라리 인원수가 많은‘ 라떼라떼’를 밀어야겠다는 의견들이 있더군요.' 600만 원짜리 홈 씨어터가 그 쪽으로 쏟아지는 장관을 보고 싶다고요. (웃음)

epilogue
<톱밴드>로 우승하면 음악으로 전업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 보컬 박근홍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2011년 한국 대중 음악상 ‘올해의 신인상’과 ‘최우수 록 노래’ 부문의 수상을 했음에도 기쁨은 아주 잠깐, 밴드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덧붙여 <톱밴드>이후 팔리지 않던 EP가 완판 되는 것을 보며 꼭 게이트 플라워즈가 아니더라도 <톱밴드>로 밴드 음악의 맛을 본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아 밴드 음악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주말 밤, 공중파의 한 자리를 내어 준 KBS2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에 감사하다.


정석희 칼럼니스트, 정덕현 칼럼니스트, 정리: 최정은 기자, 사진: 정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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