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2017’, 학교 시리즈의 명성은 어디로 사라졌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세기말에 시작해 2천 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KBS 드라마 <학교> 시리즈는 매번 새로운 세대의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이 드라마를 통해 쎄씨, 키키 같은 잡지의 N세대 모델이었던 배두나나 김민희 같은 신인배우들은 본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그려냈다. 배우 최강희가 오랜 기간 여고생 느낌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드라마 <학교>의 덕이 크다. 지금은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는 하지원이나 임수정, 수애, 이요원도 학교를 거쳐 갔다. <왔다, 장보리>를 시작으로 <아버지가 이상해>를 통해 완벽하게 주말극의 퀸으로 올라선 이유리도 그 시작은 <학교> 시리즈였다.

남자배우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연을 고루 맡는 장혁, 김래원, 조인성은 물론 올해 초 드라마 도깨비를 통해 다시 한 번 진가를 알린 공유와 이동욱 역시 <학교> 시리즈 출신이다. 이런 전통은 10년 만에 부활한 <학교 2013>에도 이어져서 김우빈, 이종석 같은 새로운 세대의 남자배우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드라마 <학교> 시리즈가 새로운 세대의 젊은 배우를 탄생시키는 드라마로서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학교>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던 건 학원물의 리얼리티와 10대들이 공감할 만한 아이덴티티를 함께 보여주어서였다.

<학교> 시리즈 전만해도 10대가 등장하는 학원물의 학생들은 착하고 생기발랄하고 유순했다. 하지만 <학교>는 그런 모습들을 걷어내고 10대의 어두운 삶과 학교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어른과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미묘한 감정의 싸움을 그대로 보여주려 애썼다. 동시에 10대의 감성에 맞는 학생들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단순히 말 잘 듣는 모범생이 아니라 배두나나 김민희, 이유리가 연기했던 인물들을 통해 학교에서는 겉도는 존재이지만 그 나잇대 특유의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을 학원물에 등장시켰다. 그 결과 2천 년대 이후 널리 퍼진 중2병에 기여한 바가 없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신선하고 인상적인 시도들이었다.



이런 <학교> 시리즈의 전통은 10년 만에 부활할 <학교 2013>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아니 어쩌면 <학교 2013>은 학교 시리즈의 업그레이드 최종판에 가까운 작품이다. 기간제교사 정인재(장나라)를 통해 학생만이 아닌 지금 이 시대 추락한 교권에 대한 문제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이 작품의 주인공 커플인 고남순(이종석)과 박흥수(김우빈)를 통해 지금의 10대가 갖고 있을 법한 감정의 어두운 면들을 상당히 리얼하게 잡아냈다. 학교폭력과 입시경쟁이란 사회문제와 10대의 우정이란 감성적인 플롯을 교묘하게 직조해낸 빼어난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후 장르물의 영향 하에 새로운 시도를 보인 <후아유-학교 2015>는 나쁘지도 대단하지도 않았다. 단 장르물의 영향 하에 기존의 학교 시리즈가 지닌 감성이나 현실감이 빛이 바랜 건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다.

그리고 최근 방영을 시작한 <학교 2017>이 있다. <학교 2017>은 스브스뉴스에서 보도했던 성적에 따른 차별급식 현장을 드라마의 첫 시작으로 떡하니 박아놓는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학교를 통해 이 사회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고발하겠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이야기에 자연스레 녹아들지는 않는다. 무언가 사회적 소재를 어설픈 이야기에 어설프게 욱여넣은 느낌이다. 더구나 인물들의 감수성은 지난 시절 귀여니의 인터넷소설에 등장할 법한 유치한 발랄함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다. 무게감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발랄함이 너무 안이해서 문제다. 기득권의 표상인 교장이나 부장교사 캐릭터 또한 너무 옛날 기득권 같은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이야기가 붕 떠 있고 갈피가 없으니 아무리 성적차별 급식이 등장한들 그냥 뜬금없는 이야기 안에 등장한 뜬금없는 소재처럼 느껴지기에 이른다. 당연이 이 드라마의 배경인 금도고 또한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디 달나라에 있는 학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작들에 비해 극을 끌어가는 주인공들의 연기도 썩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여주인공 라은호를 연기하는 김세정은 장면장면을 보여주기에 급급할 뿐 드라마를 끌어가는 주인공으로는 아직 힘이 부족하다. 이사장의 아들 금수저 현태운을 연기하는 김정현은 그냥 교복을 입은 무사 같다. JTBC <솔로몬의 위증>에 이어 한 번 더 비밀스러운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장동윤은 교복이 잘 어울리는 로봇처럼 움직인다. 다행히 전작에 비해 조금은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다.

다만 <학교 2017>이 아직 이야기의 시작점에 놓여 있기 드라마이기는 하다. 뒷이야기는 좀 더 흥미진진해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너무 뜬금없는 장면들에 웃음이 터지는 게 전부다. 그러니까 교장의 얼굴사진을 붙인 드론이 훈시하는 교장 앞에서 날아다니며 교장을 조롱하는 장면 같은 것들. 만약 그 뜬금없음에 매력을 느끼는 시청자라면 <학교 2017>을 계속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학교 시리즈에 애정을 느꼈던 시청자라면 <학교 2017>은 고이 접는 것이 아름다운 추억을 보관하는 현명한 선택일 것도 같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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